[Project 당신] 지나치게 평범하게 살고 싶은 내가 아마 그러할 너에게

발신자 ‘정 씨’, 수신자 ‘ ’
글 입력 2022.04.3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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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를 읽고 있었어. 그러다 서간문을 쓰는 프로젝트에 지원받는다고 연락이 왔지. 그 매력에 흠뻑 빠지던 중에 기회를 제공해준다니 덥석 물어버릴 수밖에.


이슬아 작가가 그러더라. 하필 이 사람을 만나서 하게 되는 얘기가 서간의 묘미가 아니겠냐고. 수신자가 중요하구나. 그럼 난 누구한테 쓸까 생각해봤어. 다행히 몇몇 생각나는 이들이 있었지. 막연히 내용을 구상해보고 있는데, 문득 내가 누구에게든 비슷한 말을 쓰겠구나 싶은 거야. 개인적인 견해지만 난 누구에게나 자기 얘기를 잘 꺼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하더라도 ‘나’는 드러내지 않는 거지. 그렇기에 누구를 향하든 우리의 서간문은 숨어버린 ‘정 씨’를 알아내는 데에도 의미가 크지 않을까 싶었어. 수신자는 미지수 내용은 고정. 이거.. 내 얘기만 잔뜩 하고 싶다는 핑계일까?


사실 난 이 서간문 보다 이후 주고받게 될 말에 관심이 많아. 서간이란 건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 한순간에 온 힘을 다해 마음을 전달하는. 그 갈고 닦은 마음에 강력한 힘이 있음이 분명하지만, 지금은 왠지 잔잔히 계속 흘러가는, 부담 없는 부력 같은 것이 더 끌려. 이 서간이 우리의 대화가 계속 흘러갈 수 있는 잔잔한 물길을 트는 작업이 되길 바라. 무엇인가 막혀있는 듯한 그 지점에 균열을 낼 수 있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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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봤어. 왜 난 날 꺼내 놓지 않을까? 지금까지 생각해봤던 걸 말해보면, 우선 듣는 게 좋아. 듣는 걸 잘한다고도 생각한 것 같아.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의 말이 정말 재밌기도 해서 자꾸 들었고, 들어주고 싶다는 의무 아닌 의무감도 조금은 있었고. 대부분이 다 너무 멋있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숙연해지기도 했지. 이런 걸 보면 스스로 밑천이 없다고, 그걸 들키기 싫다고 생각했다는 걸 인정해야겠네. 자기 구린 면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잖아? 난 그 구린 면이 다소 끔찍해. 경솔하고 상처 주는 것들로 가득하지. 그것들이 튀어나오는 것이 싫어서 자꾸만 막고 있는 것 같아. 그냥 구린 나를 맘 놓고 보여주고 싶다가도 우선 내가 싫고, 그것에 질겁한 사람들을 볼 자신도 없어. 그렇게 항시 긴장하고 있으니까 편하게 말이 나오지 않나 봐. 그렇다고 항상 구리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말야.

 

갑자기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내가 본 너는 사소한 대화에서도 구린 면이 많이 없었는데 나처럼 온 힘을 다해 막고 있는 거야? 아니면 제일 구린 모습마저 썩 괜찮은 거야? 할 말 안 할 말의 구분이 이미 다 되어 있는 거야? 어떤 얘기를 해도 된다는 일종의 믿음이 있는 거야? 불안감을 다스릴 줄 아는 거야? 아니 말하는데 이런 생각이 필요하지 않은 걸까?

 

요즘 깨달은 것도 있어. 난 정말 할 말이 없는 사람인 거야. 다들 가족이나 친구한테 일상 얘기를 세세하게 하는 걸 보고 많이 놀랐어. 내 가족은 내 친구 중에 이름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 내가 어디를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을 본 적도 없고 뭘 하고 놀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해. 내가 말을 안 하거든. 그걸 말한다는 게 너무 이상하고 어색해. 실은 그게 삶의 대부분인데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할 얘기가 없어. 갑자기 책에 대해서, 영화에 대해서 사회의 현안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잖아? 난 뭘 얘기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인 거야.


그게 나의 세상을 지키려는 노력이었던 것 같기도 해. 말을 하면 곧이곧대로 앞에 있는 대상에게 가닿지 않잖아. 긍정과 함께 몇 마디의 말이 덤으로 돌아오지. 보통 그 말들은 평가를 담고 있어. 나의 몇 마디만으로 내 애정의 대상은 저울질을 당하게 돼. 난 그게 참 싫어.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 내 세상을 부정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그렇지 않아도 거슬리기 마련이지. 그렇다면 나는 그 얘기를 굳이 꺼낼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냥 내 안에서만 삼키는 거야. 그저 느낌으로만.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기억하지 않아도 되지. 그렇게 휘발되는 거야. 감정들은 그 순간에만 머문 채. 정말 회피형인 게 여실히 드러나는구나. 누구에게든 꺼내 보이면 안 될 것 같은 이 불안감의 기저는 어디에 있는 걸까. 어쩌면 좋아. 스스로 별로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사실은 남을 무조건적인 불신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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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20대 중반의 언저리. 벌써 사회적인 자리를 잡고 있거나 얼추 잡아가고 있는 친구들도 많고, 뭘 해나가야 할지 가늠도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주변엔 많아. 나는 아직 후자에 속하지. 어느 곳을 통과하고 있든 우리 모두 뭔가를 해도 안 해도 초조함만 느끼는 애매한 시기에 아주 지독하게 걸려버렸어. 그럼에도 난 겉으론 편한 휴학을 즐기고 있어. 집에서 논다고 대놓고 부담을 주지도 않고, 당장 돈이 궁해서 매시간 아르바이트하지 않아도 돼. 일주일마다 글도 쓰고 있어서 주기적으로 생각을 한데 모을 수도 있지. 그러다 보니까 좋아하는 것들이 꽤 쌓였어. 책, 방, 기타, 보드, 여러 소품, 사람, 생각, 사상.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이 어떤 건지 좀 알 것 같아. 그런데 요즘엔 문득 커다랗게 쌓인 것들이 날 무섭게 해. 이 사회에선 돈이 필요하잖아. 사랑도 예외가 되기는 힘든 것 같아. 사랑을 지키려면 아무래도 돈이 필요해 보여. 돈을 벌지 않는 내게 사랑이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아.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사랑을 망설여.


결국 노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 노동해야 하는 이유가 삶의 목표와는 별개로 내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 책임감이 될 수도 있겠다고 느껴. 이제 그걸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아무것도 몰라서 문제지만 말이야. 난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겠어. 그 걸음을 떼고 있는 네가 참 대단해. 너는 어떤 이유로 노동 앞에 서게 됐을까? 어디로 갈 줄 알고 그 발을 옮겼을까? 그 노동이 잘 맞을까? 네가 지키고 싶은 것은 뭘 까? 어찌어찌 사는 방법이 대체 뭘 까? 출발선 뒤에 있는 혹은 이미 출발한 너는 어떤 감정과 어떤 생각과 계획이 있을까? 두려움에 잠식당할 때 무엇이 너희를 위로해줄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길로도 가지 못한단 걸 알고 있으면서도 글로만 걱정하는 건 아직 절박함이 없어서인 것 같기도 해. 종일 유튜브에 빠져 살고 밤에는 넷플릭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말이야. 최근에 <나의 해방일지>를 봤어. 김지원 배우가 나오는데 1화 내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더라. 난 눈빛과 표정으로 누구보다 많은 말을 지어내고 삼키는 그녀를 봤어. 마지막에 몇 줄의 네레이션을 말하는데, 그냥 눈물이 찔끔 났어. 저 몇 마디 말을 내뱉기 위한 품을 좀 알 것 같아서. 저 사람의 침묵은 언제 왜 어떻게 시작된 건지. 그 침묵을 깨는 존재는 누가 될 수 있을지 참 궁금해. 나와 그 사람을 동일시하고 봤는데 주변을 보니 회사에 다니는, 일하는 너도 떠올랐어.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잘 맞는 사람도, 나를 파괴해버리는 사람도 있겠지.

 

삶의 계단에서는 편안한 지점을 찾기 힘들단 걸 느껴. 우리 모두 위로가 필요하겠어. 난 위로하고 싶기도, 위로받고 싶기도 한데, 위로받는 건 포기하는 중이야. 위로가 얼마나 섬세하고 때론 터무니없게 거친지 공감하니? 난 아직도 위로는 본인만이 허락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 그 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건 타인의 역할이 구 할이지만. 그래서 요즘 위로보단 대화를 원해. 옛날에 어떤 대화는 공허했어.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공허한 대화마저 텅 빈 인생을 채워주는 조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충만하게 차오르는 대화, 어디든 빈 곳을 채워주는 대화. 뭐든 내 마음이 가난할 때 도움이 되곤 해. 그래서 요즘 난 그냥 말하고 싶어. 말하면서 나에게든 너에게든 스스로 위로를 허락할 수 있는 열쇠를 건네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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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쉽지 않지. 신체와 정신의 체력이 부족해서 연락이 부쩍 줄어든 걸 체감하고 있어. 어느 날 에너지가 좀 넘친다 싶은 날이면 미뤄왔던 일들을 하기 바빠. 연락은 또 뒷전이 되지. 이런 게 반복되니까 이젠 내가 말을 할 의지와 마음이 없는 건지 체력이 없는 건지 삶이 나쁜 건지 헷갈리게 돼. 내 마음을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좀 서글퍼. 마음이 멀어지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적절하고 편하게 관계가 무르익었는데 양질의 대화는 줄어들고 있어. 근데 우리가 대화하고 싶다는 걸 알아. 그러길 바란다는 걸 알아. 다만 그 마음에 켜켜이 무언가가 쌓여서 알아보지 못하게 된 거야. 예전엔 우리의 마음이 공명하는 때가 많았는데 말이야. 이제는 같이 파동을 그려 나가는 그 시기가 참 맞아떨어지지 않아. 그 사실이 공허하고 슬퍼. 점점 접촉의 순간이 줄어들지 않을까.

 

이렇게 보면 스스로 고된 삶을 자처하는 것 같아. 아니 인생 자체가 손해 보는 장사 아닐까. 희망을 발판 삼아야 기분이라도 좋은데, 이젠 어느 곳이든 그에 맞는 고통이 자리 잡고 있단 걸 알아버린 것 같아. 고통이 있음을 알면서도 한껏 힘을 다해 뛰어 들어가야만 하는 이 삶이란 대체 뭐냐는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그 속에서 나를 살리는 작은 조각을 발견해나가는 게 결국 살아가는 것이겠지. 오히려 아니까,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으니까 더 초연하게 되어가는 거겠지.


어쨌든, 모두가 흔들리는 삶을 살잖아. 너와 내가 매 순간은 아니지만 다 잃어버린 것 같았을 때 생각나는 최후의 보루 속에 존재하기를 바라. 항상 따뜻하기란 불가능하니까. 항상 사랑받겠다는 욕심은 버릴게. 무엇보다 내가 제일 못하는 거인 걸. 그냥, 문득 서 있는 한 사람으로 있어도 그게 더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할게. 우리가 자신을 채워낼 수 있는 방법을 하나하나 조금씩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랄게. 나중에 이 글을 보고 ‘당연한 걸 왜 이렇게 궁시렁궁시렁 거렸어?’라고 과거를 조금이라도 비웃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랄게.



- 마음과 온갖 변명을 끌어 담아 정 씨가 보냄 -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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