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허한 신의 말대로 - 연극 Is God Is

글 입력 2022.04.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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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신이라고 할 수 있겠네!



어릴 적 화재 사고로 화상을 입고, 폭력적인 위탁 가정을 전전하다 종이 공장 창고에서 육체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흑인 여성들이자 쌍둥이 자매인 아나이아와 러신. 러신은 목 뒤쪽에, 아나이아는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었다. 그들은 화재 사고로 어머니가 죽었다고 알고 살아왔으나 어느 날 친모로부터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의 내용인즉슨, 그날의 사고 이후로 평생 요양원에 기거하던 어머니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서 딸들이 자신을 보러 오길 바란다는 것. 러신은 아나이아에게 편지를 보여주고 말한다.

 

-그런데 말야, 우리를 낳은 거라면 우리를 만든 거니까, 엄마는 신이라고 할 수 있겠네!

-그…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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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부터 러신과 아나이아

 

 

쌍둥이가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요양원, 쌍둥이의 어머니이자 신이 있는 곳에 자매가 도착한다. 친모가 간호사에게 부탁해 써 놓은 환영 팻말에는 아나이아의 이름 철자가 틀려 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어머니는 그간 자식들의 앞에 나타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너희 앞에 나타나겠니. 이렇게 온몸이 악어 꼴이 되었는데..


친모의 온몸이 ‘악어 꼴’이 된 것은 그의 전남편이자 쌍둥이의 친부인 남자가 그의 몸 위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려와 생모가 불타는 모습을 보게 했다. 극도로 잔인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아나이아는 불에 타며 몸을 뒤틀고 괴로워하던 엄마를 보고 불을 더 적극적으로 끄려고 했기 때문에 러신보다 더 큰 화상을 입게 되었다.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라 어린아이였던 쌍둥이는 기억에서 그 사건을 삭제하여 무의식 너머로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사건은 아나이아의 꿈에서 불을 입고 춤추는 여자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쌍둥이를 창조한 신은 딸들을 부른 진짜 이유를 말한다. 죽여, 그 남자를 죽여! 그리고 일종의 전리품으로 그 남자의 신체 일부를 가져오라고 덧붙인다. 그의 분노는 이해가 간다.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도 집에 몰래 들어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이려 했고 평생의 후유증을 갖고 살게 만든 남자. 죽이고 싶은 마음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들었으리라. 그러나 그것이 꼭 딸들이 행해야 할 복수가 되는 걸까. 갑자기 쌍둥이의 인생에 나타나 천인공노할 범죄자라 해도 딸들에게 살부(殺父)의 죄를 범하라 명하는 친모의 말이 야멸차다. 윤리적이고 내면적인 고민까지 가지 않더라도, 살인을 들킬 경우 쫓기게 될 딸들의 신세는 어떡하란 말인가? 그러나 러신이 그러했듯 생모를 신으로 정체화하면 그의 말은 신탁이 될 따름이다. 신탁은 곧 따라야 할 말이다. 아나이아는 고민하지만 러신은 엉겁결에 답해 버린다. 그럴게요!

 

아나이아와 러신은 신의 말대로 남자를 죽이기 위해 당시 사건은 맡아 그가 법망에서 빠져나가게 도운 변호사를 찾아간다. 그 남자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다. 이미 인생에 몇 방 맞은 듯 자포자기하여 고주망태가 된 변호사는 위협적으로 굴다가 이내 나불나불 전 고객의 행방과 새 가족 구성원에 대해 알려준다. 높은 언덕 위의 집에, 새로운 아내와 함께 아들 쌍둥이를 두고 살고 있다고. 그리고 쌍둥이가 오기 전부터 술과 함께 퍼먹었던 약 때문에 죽는다. 러신은 변호사의 식지 않은 시체를 보고 말한다. 신이 말했던 거, 여기 있네. 양말 한쪽에 넣은 돌로 변호사의 시신을 내리친다. 불이 꺼지고 관객은 아마도 러신이 온 힘을 다해 그의 머리를 내려치고 있는 듯한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쾅, 쾅, 쾅!

 

러신은 신을 위한 전리품 하나를 변호사의 시신에서 떼어냈다.

 

그 남자를 향해 가는 길에 쌍둥이의 범죄 행각은 변호사의 시신 훼손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그 남자의 새 아내 앤지는 안 그래도 쌍둥이, 특히 러신에게 ‘자기들의 어머니가 누렸어야 할 것을 대신 누린 사람’으로 낙인찍혀 악감정을 가득 받고 있었는데, 앤지가 그들의 신에 대고 멸시에 찬 말을 해 버린다. 또 다시 러신이 쾅, 쾅, 쾅! 전리품을 또 하나 떼어냈다. 그리고 그다음은 높은 언덕 위의 집에 사는 남자 쌍둥이. 쌍둥이와 쌍둥이의 대면에는 앞선 두 명의 살인보다 좀 더 복잡한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은 아나이아마저 살인을 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그 남자와의 대면.

 

 


남자와의 조우



이복형제이기도 한 남자 쌍둥이들을 한 명씩 죽인 러신과 아나이아. 그리고 남자 쌍둥이 중 첫째의 공격에 당하고 쓰러진 러신. 아수라장이 된 집. 문 열리는 소리에 아나이아는 축 늘어진 러신의 몸과 함께 숨는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그 남자가 집으로 들어온다.

 

귀가 후 자식들이 살해당한 광경을 본 남자의 반응은 수틀린 상황에 대한 귀찮음과 그로 인한 분노로 보인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도, 바닥에 피 흘리고 누운 아들의 시신에 달려가 맥박을 짚어보지도 않는다. 다만 굉장히 화가 난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돌릴 뿐이다. 그리고 그는 집 어딘가에 숨어 있는 미지의 살인자의 존재에도 떨지 않고 언덕 위에서 만나자고 말한다.

 

러신이 들고 있던 돌팔매. 양말 한쪽에 돌을 넣고 급조하더니 러신이 카인의 아벨 살해를 언급했던 그 돌팔매.(그러고 보면 이미 여기서 동생 쌍둥이들의 죽음은 예견되었다) 그것을 들고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 된 아나이아가 남자의 앞에 나타난다. 남자는 아나이아를 알아본다. 그리고 말한다. 예쁘다고는 못하겠구나. 아나이아가 얼굴에 입은 화상은 오로지 그의 방화, 살인미수 탓인데도 뻔뻔스레 그런 말을 한다.

 

그는 속으로 분노로 들끓고 있지만 아나이아가 임신 중인 것을 알자 다시 가족이 되자고 회유한다. 물론 아나이아가 공격 의사를 잃자 남자는 바로 아나이아를 공격한다. 뱃속의 아이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죽여버렸을 거라면서. 핏줄에 대한 애정보다는, 그의 기준에서 ‘멀쩡한 자식’으로는 남은 사람이 아나이아 뱃속의 아이밖에 없어서 다시 가족이 되자고 말한 것임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이때 죽은 줄 알았던 러신이 돌아오고 전세는 역전된다. 쌍둥이는 그가 자신들의 신에게 했던 것처럼 남자의 몸에 불을 지른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온몸에 불이 붙은 남자가 달려들어 러신을 잡아챈다. 러신이 도와달라며 ‘쌍둥아!’를 외치는 동안 아나이아는 배를 부둥켜안고 자신은 도울 수 없다며 러신의 외침을 괴롭게 외면한다. 혹여라도 아이가 다칠까봐 불구덩이에 뛰어들 수 없는 것이다. 복수의 화마에 끌려들어간 러신은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신에게로 돌아가서


 

모든 복수를 끝내고, 러신을 잃은 채 신에게로 돌아온 아나이아. 신은 아나이아가 바친 공물-살해당한 사람들의 일부-을 받고 개수를 세어본다. 자신이 생각한 개수와 맞아떨어지자 신은 만족한다. 해냈구나.

 

러신의 죽음에 별다른 반응이 없는 신을 보고 아나이아는 다시 말한다. 엄마, 러신이 죽었어요. 그것에 신은 이렇게 반응한다. 네가 돌아올 줄은 몰랐단다. ‘악어 꼴’이 되었다며 온몸의 화상을 비관하던 엄마와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은 아나이아를 두고 너는 신과 꼭 닮았다며 묘한 부러움을 내비치던 러신이었고, 그 닮지 못함을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상쇄하기라도 하려는 듯 신의 명령을 그 누구보다 잘 수행한 러신인데도. 그리고 어릴 적 엄마의 몸에 붙은 불을 더 적극적으로 끄려 했고, 끝내 살아 돌아온 아나이아인데도. 쌍둥이 모두의 입장에서 말할 수 없는 허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신은 딸들이 마련해 온 ‘공물’을 손에 쥐고 마침내 내면의 평화를 찾는다.

 

아나이아는 신에게 묻는다. 이 모든 일들을 제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죠? 신은 답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 의지가 없다. 이제 모든 짐과 저주와 고민은 아나이아가 물려받게 되고, 신은 죽음 너머로 가버린다. 복수만을 원했던 신에게 바친 쌍둥이의 복종은 공허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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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끝나고 난 뒤-연극을 소화하며 든 소감과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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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의 두 가지 면모

 

 
아나이아와 남자가 대면했을 때, 엄마에게 왜 그랬냐는 아나이아의 물음에 남자는 ‘기 좀 펴고 살고 싶었어’라고 답한다.
 

 

사랑과 자애의 신과 군림하는 신이 하나의 신 안에 존재하는 경우는 여러 신화와 종교 속에서 볼 수 있다. 가령 이집트 신화에서 사랑과 미, 풍요를 주관하는 여신 하토르는 평소에는 더없이 아름다움이 넘치는 신이었다가 징벌의 순간 세크메트라는 신으로 변해 피에 굶주린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 미술 도상 중에서 예수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만물의 주관자 (판토크라토르, Pantocrator)’ 도상이 있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대속하는 성자(聖子)이며, 그런 의미에서 인간과 성부(聖父) 사이의 영원한 중보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물의 주관자’ 예수는 한 손에 복음서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축복을 내리고 있으며, 얼굴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고 두 눈을 부릅뜬 모습이다. 여기서는 자애로운 중보자의 기운보다 전능한 군주이자 심판자의 기운과 단호함, 냉철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인간이 신에게 바라는 것은 크게 사랑과 자애, 그리고 혼돈에서 인간을 지켜줄 질서다. 이에 인간이 신을 찬미하고 경외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신이 가진 신성한 힘과 심판의 능력 때문이다.

 

연극 'Is God Is'의 신-쌍둥이의 엄마-에게는 분명 미국 흑인 사회에서 거대하고 확고한 틀인 기독교의 맥락이 묻어 있지만, 쌍둥이의 신이 꼭 예수나 하나님을 대체한 무언가는 아니라고 여겨진다. 혹은 기독교의 신만을 타겟으로 두고 비틀어 만들어낸 신도 아닌 듯하다. 부친살해의 모티프는 그리스 비극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이 연극을 만들고 있는 씨실과 날실이 기독교 문화만은 아님을 알려준다. 또한 연극의 제목 자체에 그런 함의가 들어 있다. 연극 제목은 둘로 쪼갤 수 있다. Is God은 ‘신은?’이라는 질문이 되고 God Is는 ‘신은’이라는 대답이 된다. ‘신은?’이라는 질문에서 이미 관객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신을, 혹은 무교인 경우 평소 신에 대해 가진 이미지나 생각을 떠올리게 되고 자기 나름의 ‘신은’이라는 답을 찾게 되는 것이다.

 

다시 자애 넘치는 신과 심판의 신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이야기를 연극 Is God Is의 신에 결부시켜 보자. 남자는 쌍둥이의 엄마에게 ‘기를 펴고’ 살고 싶었고 그녀가 그를 ‘안아주길’ 바랐지만 정작 그가 그녀에게 한 짓을 생각해보면, 신에게 있을 사랑과 자애를 모두 불태워버린 건 남자 본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걸 보면 그전부터 폭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사랑과 자애의 신을 서서히 죽여놓고 아내 탓을 하는 남자의 모습이 참으로 낯 두껍고 아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쌍둥이의 엄마는 얼토당토않은 복수의 불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저주와 독-복수심이라는 독-을 품은 신이 되었다.

 

그렇다면 신은 남자의 파괴적 행위로 인해 복수의 신으로 변해버린 수동적인 존재로 봐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은 연극 초반의 장면 때문이다. 남자를 죽이라는 생모의 말에 쌍둥이의 첫 반응은 ‘그래도 죽음이 다가오는 마당에 다 용서하고 편안해지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신은 자기 입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답한다. 물론 인간으로서 너무나 커다란 트라우마를 입어 용서가 힘들 수밖에 없지만, 그를 신으로 보면 이 대답은 달리 보인다. 이 장면은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결국 쌍둥이의 생모가 자신을 복수와 폭력의 신으로 선택하고 정체화하는 부분이다.

  

 

2. 번역극이 보이는 사회문화적 맥락의 탈락


번안극과 번역극의 의미에 대해 찾아보았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번안극은 ‘외국의 희곡을 원안으로 하되 풍속, 인명, 지명 따위를 자기 나라에 맞게 고치어 공연하는 연극’이고, 번역극은 ‘외국의 희곡을 그대로 자기 나라의 말로 바꾸어 공연하는 연극’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연극은 번역극에 해당한다. 미국의 신진 극작가 앨리샤 해리스의 극을 한국의 극장에 옮긴 것이다.

 

본 연극의 무대 연출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극의 특성상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사회문화적 맥락의 탈락이다. 외국 원안의 상황을 현지 상황에 맞게 바꾸는 것과 달리 번역극은 배경이 외국 원안의 시간과 장소 그대로이다. 그래서 극 안의 요소들이 자연스러운 한편 그 사회배경을 모르면 풍부한 이해가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내 경우 러신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개 같은 남부!’를 외쳐대는 것이나 남자 쌍둥이 중 형이 북부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는 등의 상황이 반은 외국어처럼 들렸다. 그 대사에 담긴 지리 감각도 문화 감각도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더 큰 차원으로는 미국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흑인 자매가 처했을 사회적 위치, 그 남자로 대표되는 아프리칸 아메리칸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압제, 그리고 그런 아프리칸 아메리칸 가부장에게 쏟아졌을 또 다른 압제에 대해 피부로 느낄 수 없어 연극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미국, 특히 미국 내 흑인 사회에서 기독교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잘 알았다면 더 풍성한 감상 및 해석을 가졌으리란 아쉬움도 든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연극 안에서 해설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선 연극의 주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는 번역극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여겨진다.

 

 

3.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든 소소한 의문과 소감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내용을 곱씹으며 몇 가지 의문과 소감이 생겼다. 우선 극 후반에서 아나이아의 임신이 갑자기 밝혀져서 의아했다. 내가 이 연극의 어디서 아나이아의 임신을 알아챌 수 있었나…? 만나는 남자가 있다는 말 하나로 임신에 대한 복선까지 알아차릴 수 있나? 돌이켜보니 아나이아가 신에게 과거 얘기를 듣고 꿈인 줄만 알았던 강렬한 이미지가 실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이 죽은 걸 봤을 때 계속 토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긴 했다. 그러나 이건 임산부가 아니어도 충분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연극을 보는 당시에 아나이아가 남자와 대면하는 장면에서 임신 얘기를 하는데, 그게 상당히 갑작스럽고 생뚱맞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로 인해 아나이아가 러신을 외면하는 장면에서 임신 자체가 극 중에서 반신 같았던 쌍둥이를 외면하기 위해 급히 붙은 설정처럼 느껴져 아쉬움이 생겼다.

 

한편 지문을 말로 읽는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중년 배우들의 관록 있는 연기가 자연스럽게 반짝였다. 지문과 대사를 넘나드는 연기 톤으로 인해 문학책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재미가 있었다. 소극장에서 지혜롭게 절제된 소품과 동선, 배우들의 박진감 넘치는 연기, 무대 위로 영사하여 분위기를 조성하는 영상, 장면과 장면 사이를 전환하는 방법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후 연극을 보는 당시 예감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러신의 처절한 비명에 집에 가서 악몽을 꿀 것 같다고 느꼈던 일이다. 그날 밤 나는 현실과는 다르지만 가족을 소재로 한 악몽을 꿨다. 직접적으로 몸과 몸이 부딪히는 폭력 장면이 나오진 않았지만 충분히 폭력을 나타내는 장면들은 수없이 나오기 때문에, 그리고 방화와 살인, 폭력과 복수라는 소재 때문에 심약한 사람들은 연극을 보기 전에 한 번 재고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미국 흑인 사회의 가부장제라는 압제, 그것을 덮는 더 큰 사회적 압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연극이며, 부자지간에 일어나는 부친살해의 모티프가 딸들의 손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참신하고 전복적인 지점이 있는 연극이었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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