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던 이, 스메르쟈코프 [공연]

글 입력 2022.04.20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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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르쟈코프] 메인포스터.jpg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창작뮤지컬로 탄생시킨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의 스핀오프로 제작된 스메르쟈코프는 필자와 같이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관람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원작 소설이나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 대한 경험이 없는 글을 읽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와 '스메르쟈코프'의 소개글을 잠시 보며 줄거리를 간략하게 훑고 감상으로 넘어가볼까 한다.


 

Synopsis.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러시아 지방의 지주인 표도르 까라마조프는 평생 방탕하게 욕정을 쫓으며 살아온 호색한이다.

 

첫번째 아내로부터 드미트리. 두번째 아내로부터 이반과 알료샤를 얻었으나 모두 내팽개치고 자신의 아들로 추정되는 사생아, 스메르쟈코프를 하인으로 부리며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누군가에 의해 표도르가 살해당한다. 표도르와 유산 문제로 다투다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공언하고 다닌 드미트리는 유력한 용의자로 수감되고, 모스크바에서 유학 중이던 이반, 견습 수도생인 알료샤, 하인 스메르쟈코프까지.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혐오가 있던 네 형제들은 점점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Synopsis. 스메르쟈코프

 

아버지라 여기는 표도르를 살해한 후 며칠간의 긴 발작을 시작한 스메르쟈코프는 현신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긴 여행을 시작한다.

 

표도르의 제안으로 시작한 모스크바 요리학원부터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던 공동묘지까지. 신자를 자백하게 만드는 고문기술자부터 죽은자의 고백을 들어주는 조시마 장로까지. 수많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꿈인지 사실인지 모를 만남을 이어나간다. 그 만남 속에서 그는 하나씩 깨달음을 얻어나간다. 자신의 이름, 태어난 의미, 그리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까지.

 

세명의 스메르와 조시마 장로, 쌍둥이 형제 그리고 광기와 환상. 인간 내면의 파멸을 가져오는 기이한 어둠. 스메르쟈코프는 어떻게 악의 화신이 되었는가?

 


원작소설에서 스메르쟈코프는 까라마조프가의 사생아로 태어나, 집사의 양아들이 되어 요리사이자 하인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태어날 때부터 존재를 부정당하며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동등한 가족 구성원으로 대우받기보다 한걸음 떨어져 있어야 했다.

 

원작과 전작 뮤지컬의 전반부 스토리에서는 드미트리가 유산과 여자 문제로 인해 아버지를 살해한 듯 비치지만, 결국 아버지에 대한 혐오로 살해를 실행에 옮긴 것은 스메르쟈코프였다. 사건 직후 자살을 감행하며 그는 이제 삶과 죽음 사이의 환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생전의 자신과 연결되어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삶에 반응하며 나타나는 수 차례의 고통스런 발작 속에서도 스메르쟈코프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수증기와 존재 정의



스메르쟈코프라는 이름의 의미인 수증기는 그 인물의 많은 부분을 상징화하고 있다.

 

손에 잡히지 않고 흩어지는 특성과 어지럽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양은 그가 사생아로 태어나 까라마조프가의 공식적인 일원이 되지 못했으며, 한 곳에 마음을 정착하지 못한 복잡하고 혼란한 내면을 지닌 인물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존재에 대한 정의는 스메르쟈코프에게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묘지에서 눈을 뜨며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을 묻고 형제를 찾았던 것은 그러한 존재 욕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행복하지 않은 삶이었음에도, 극의 후반부까지 어머니를 부르며 이어지는 존재에 대한 강렬한 열망은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 자신의 존재 의미를 타인에게서라도 찾고자 했던 스메르쟈코프의 망가진 내면을 보여주었다.


 

 

살아있는 것은 고통



살아있는 한, 의식과 감정이 있는 한 고통은 인간과 늘 함께 한다. 살아있어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고통이며 고통은 곧 존재의 증거가 된다.

 

스메르쟈코프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육체발작을 계속하며 힘겹게 꺼져가는 그의 의식을 보여준다. 새로운 인물을 만나거나 심리적 동요가 일어날 때 온몸이 뒤틀리는 발작과 함께 노래가 울려퍼지는데, 그때마다 스메르쟈코프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다는 것인 무엇인지. 인간을 고통스러운 세상에 내어놓는 신은 어떤 존재인지. 세명의 스메르쟈코프는  처절하게 서로에게 물음을 던지지만 그 답은 극이 끝날 때까지도 분명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누군가 답을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답보다는 고민의 과정에 있는 스메르쟈코프의 심리 상태와 고뇌, 고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선과 악



스메르쟈코프는 또한 생전에 신에 관해 경험했던 일들을 현신에서 자꾸 마주치며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극 소개에 있는 스메르쟈코프는 어떻게 악의 화신이 되었는가?라는 물음을 보면 그는 선과 악 중에서 후자를 택하는 인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나 선과 악을 모두 다 가지고 있음을 과거의 경험으로 어렴풋이 깨닫는다.

 

이복형제인 이반이 대학에 다니며 썼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논문으로 인간이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완벽한 신이 없음에 좌절하다가도, 신을 인정하고 그의 보호 아래 살아가길 권하는 조시마 장로를 마주하면서는 완벽한 선함을 상징하는 신의 존재는 인간의 환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선과 악의 경계라는 것도 결국 인간이 정한 것일 뿐 절대적이지 않으며 모두가 조금씩 선하고 악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불온한 태생이라 여긴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신의 존재와 선함을 믿지 않는 편이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서 던지는 이 거창한 물음은 자신을 어떻게든 둘 중 하나로 구분짓고 싶었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어 스메르쟈코프가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졌다.


 

누구나 살다보면 자신이 어디서 왔고 무엇때문에 삶과 고통을 유지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물음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다. 그렇게 자신이 누구인가에 다해 나름대로 정의하며, 고통 속 작은 희망과 기쁨에 의지해 힘들지만 내일을 향해 사람들은 걸어간다.

 

존재의 의미를 찾고 끊임없이 나와 주변을 탐구한다는 것은 물론 쉽지 않지만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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