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20살의 나에게

매일이 슬프던 소녀에게
글 입력 2022.04.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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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의 나에게

 

안녕. 평소에도 너에 대해 가끔 떠올리긴 하는데 이렇게 편지를 보내려니 무언가 복잡미묘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문장이 두서 없을 것 같지만 이해해 줘. 그 때나 지금이나 넌 너가 하고 싶은 생각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 하니까 말이야. 사실 지금의 내가 얼마나 멋지게 성장했다고 너한테 편지를 보내나 싶지만 그냥 왠지 모르게 너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더라. 그러니 조금 언니가 되어버린 내가, 동생이 되어버린 너에게 주절주절 이야기 해볼게.

 

난 너의 이 시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넌 재수학원에 들어간 지 3주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모든 게 어렵고 낯설어서 긴장하고 있을거야, 맞지? 네 친구들은 모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너만 제자리에서 침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급하기도 할거고, 너가 가고 싶어 한 길을 반대한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할거야. 넌 너의 상황에 대한 한탄을 주변인에게 돌리며 애써 하루하루 견디고 있는 거겠지만 사실은 너야말로 아주 잘 알거야. 모든 분노는 타인이 아닌 너 스스로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걸.

 

우린 어릴 때부터 뭐든 잘해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였잖아. 아니, 노력을 해야만 했던 사람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일까? 특정한 길을 가는 게 맞다고 주입적으로 교육 받으며 느껴지는 자괴감에 우리가 믿는 가치가 부정 당하는데도,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을 당하면서 도움을 청해도 들어주는 이 아무도 없었고 그나마 곁을 내준 사람들마저도 상처를 줘버렸는데도, 우린 꿋꿋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잘해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야만 내가 성공하고 행복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처음으로 너가 원하던 목표를 이뤄냈을 때 넌 너무 기뻐했는데, 아직도 그 때 생각하면 내 자신이 정말 자랑스러워. 정말 열심히 살았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아려. 그렇게 독기를 가지고 살 수밖에 없던 어릴 적 나를 극한으로 몰아서 이뤄낸 결과 같아서. 근데 어릴 적 우리도 목표를 이뤄내고 난 뒤의 허망함, 허무함에 너가 무너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거야. 목표를 이뤄내고 난 후 찾아오는 허탈함은 우리가 꿈 꾼 미래를 계속해서 흔들었으니까.

 

우린 18살부터 한참을 내적으로 방황하기 시작했고 20살의 넌 매일이 슬펐어.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한 알 수 없는 허무한 미래는 계속해서 우리한테 불안을 불어넣었고 넌 아마 그 불안함과 우울함에 빠져버려서 너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있을거야. 특히 재수를 하는 넌 더욱 불안하고 순간 순간이 지옥같았거든. 미안하지만 너가 그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기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말해줄 수밖에 없겠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난 가끔 불안해져. 너도 어리지만 나도 아직 많이 어리거든. 근데 사회는 계속 어린 나에게 많은 걸 해오라고 시킨다. 안 하면 뒤쳐질 것 같아서 나도 가끔은 너무 슬퍼.

 

그래도 일단 너가 안도할 수 있는 말부터 해줄게. 너가 사랑하는 네 친구들은 지금도 내 사랑하는 친구들로 남아있어. 다들 각자의 사정으로 엄청나게 바빠져서 많이 못 봤지만 그래도 서로 서로 잘 챙겨줘. 그리고 엄청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되게 많이 생겨. 곧 널 마음 깊이 사랑해주는 사람도 생겨서 사랑을 주고 받는 방법도 배우게 돼. 아, 그래서 너 공부 안 하긴 해. 근데 어쩔 수 없어. 나도 내 과거를 바꿀 순 없잖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어. 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 당연해. 나도 너였을 땐 내가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 행복함을 느끼면 불안했잖아. 기쁘고 즐거운 파티일 수록 끝나면 그 파티만큼 허무하고 슬퍼질 것 같았고. 근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너가 파티 주최자가 아니라 파티에 참여하는 사람인거지. 그럼 넌 이 파티 갔다가 저 파티 가면 계속 즐거울 수 있는 거 아냐? 계속 행복해질 수 있는 거 아니야? 파티라는 게 꼭 엄청난 사건이 있어야 파티인 건 아니더라. 시끄럽고 떠들썩한 파티도 있지만 조용한 파티도 있고 기쁜 파티도 있지만 약간은 슬픈 파티도 있어. 하루라는 게 그렇더라. 어찌됐든 중요한 건 너가 행복해질 수 있는 거면 되는 거잖아.

 

난 지금 너무 행복해. 하고 싶은 게 정말 너무 많아. 더 많이 공부하고 싶고, 더 많이 나를 아티스틱하게 표현하고 싶고, 더 많이 사회에 도움을 주고 싶어서 이것 저것 열심히 알아보느라 몸은 피곤한데 그만큼 행복해. 너가 잘 못 해낼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난 해낼 자신이 있어. 지금의 내가 되기 까지 넌 좀 고생을 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멋진 사람이 돼. 한 1년 동안 난 멋지다고 하루에 한 번씩 말했더니 진짜 좀 멋있어지더라. 이게 세뇌인가? 근데 세뇌랑 교육의 차이는 한 끗 차이래. 어쨌든 좋게 동화되었으니까 교육인 걸로 치자.

 

하루 하루 나는 내일이면 내가 얼마나 더 행복해질지 기대하면서 자. 너랑은 완전 다르지? 넌 하루 하루 내가 버틸 수 있을지 우울해하며 겨우 잠들텐데 말이야. 근데 너가 자라면 내가 되는 거잖아. 안 믿기지 않아? 물론 그만큼 넌 엄청 노력해. 엄청 많이 울고 엄청 많이 화내고 엄청 많이 힘들어하는데.. 결국 이뤄내더라. 너 그거 진짜 대단한 거야. 그걸 해낼 너, 미리 멋지다고 칭찬할게.

 

좀 말이 길어졌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 진짜 멋지고 강한 사람이라는 거야. 지금 당장은 너가 너무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고 싶지도 않을 거지만 넌 어쨌든 그거보다도 더 힘든 상황 속에서도 더 성장해서 멋진 내가 된다는거지. 안 믿어도 좋아. 그냥 보기만 해. 그러니까 지금 힘들면 시원하고도 따뜻한 봄바람이랑 같이 좀 걸어봐. 너가 좋아하는 노래들 지금 엄청 발매됐을텐데, 들으면서 걷고 있지? 좋은 자세야.

 

아, 무엇보다도 이건 꼭 말하고 갈게. 너가 지금 꾸는 꿈 있잖아. 그거 마음대로 못 이룬다고 절대 포기하지 마. 약간은 다른 방식이지만 너 훨씬 멋있게 이뤄내서 더 큰 꿈을 꾸게 되거든. 난 그 꿈이 제일 좋아. 그리고 그 꿈을 지켜온 나 자신이 너무 고마워. 그러니까 너도, 미래의 너인 날 위해서 그 꿈을 소중히 지켜와 줘.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너 원래 너가 하고 싶은 거에 대해선 고집 엄청 세니까 할 수 있어.

 

나중에 너가 내가 된다면 꼭, 그 때의 새로운 너에게 편지 전해줘.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널 다독여줘. 멋있게 자랐구나, 하고 말이야. 이젠 슬프지 않구나, 하고 말이야. 알았지?

 

 

조금은 멋있어진 내가, 너에게.

 

 

[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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