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브제에 미친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

글 입력 2022.04.13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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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take away cup), 201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 Untitled (take away cup), 201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얼핏 보면 앤디 워홀이 떠오르는 이미지지만, 이것은 팝아트가 아니다.

 

작품명은 'Untitled (take away cup)'. 영국 개념미술의 선구자이자 1세대 작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으로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관념을 부순 도전이자 새로운 영감의 시작, 상상력과 창의력이 마구 샘솟는 하나의 새로운 장르로 정의했다. 미술사에서 통용되는 용어로 표현하자면, 개념 미술인 것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은 오브제의 향연이다. 그의 작품에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오브제들이 존재한다. 대개 사물이지만, 때에 따라 알파벳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알파벳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뜻이 존재하는 하나의 단어라 할지라도 그의 작품 속에선 그저 오브제일 뿐이다. 그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고 즐기기 위하고 싶다면, 이를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관람객들을 반기는 작품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초기작 '참나무(An Oak Tree, 1973)'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당신은 참나무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선반 위에 물 잔만을 보게 될 것이다. 도대체 참나무는 어디 있을까? 분명 참나무라고 쓰여 있는데, 참나무는 없다. 하지만 과연 없을까? 설마 작품명을 잘못 붙인 건 아니겠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의심. 사실 이것이 작품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 포스터.jpg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은 오브제로 시작해서 오브제로 끝난다. 사물, 심지어 알파벳까지 그에게는 그저 하나의 오브제일 뿐이다. 원래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한없이 자유로울 수 있다.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위 작품의 제목은 'Untitled (desire)'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에는 유독 'Untitled' 즉, '무제'라는 제목이 많은데, 이는 제목이 작품을 규정짓는 것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붙인 제목이라고 한다. 하지만 본성이 친절한 사람인지라, 따스함을 남겨두었다.


위 그림은 desire이라는 단어의 알파벳을 사용하여 만든 작품이다. 물론 한눈에 이 그림이 원래 하나의 단어였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겠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맨 앞에 D부터 하나하나 겹쳐져 있는 알파벳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비단 알파벳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컵, 서랍, 캔, 신발, 메트로놈 등 다양한 사물들이 숨어 있다. 여기서 드는 질문, 그럼 이 그림은 무엇을 그리고자 했던 것일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알파벳과 사물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상에서 알파벳은 소통을 돕는 언어로서 역할하지만, 앞서 언급한 '참나무(An Oak Tree, 1973)'처럼 언어는 결국 사회적인 약속이다. 알파벳이 스스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약속한 방식으로 읽고 쓰인다는 말이다.

 

사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는 순간이 아니라면, 존재 자체에서 특별한 함의를 찾기 어렵다. 이 또한 사회 속에서 정해진 역할이 있다. 그러니 궁극적으로 세상 모든 것은 오브제이다. 누구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투명한 그릇인 것이다.

 

 

ⓒZoom, 202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 Zoom, 202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따라서 우리는 이 투명한 그릇에 각자의 경험을 담을 수 있다. 위 작품은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팬데믹 시대, 온라인 화상 플랫폼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전하던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자마자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가족, 친구, 학교, 직장 등지에서 줌을 통해 소통했던 시간들. 그 시간의 이미지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겠지만, 비슷한 감정을 유발한다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가진다. 결국 우리는 오브제 안에서 각자의 의미를 발견하는 한편, 사회의 틀에서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고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위 작품 속 노트북들을 알파벳 'Z'가 떠오르도록 배치해두었다고 한다. 오브제들을 통해 또 다른 오브제를 창조해낸 그의 강박적인 오브제 사랑은 정말 못 말리는 것 같다.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展>은 오랜만의 전시관 방문이라는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준 굉장히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작품의 정체성이 평소 내가 좋아하던 작품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 눈으로만 즐기는 작품이 아닌 머리로도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작품들. 나는 이런 작품들을 육감으로 즐기는 작품이라 말하곤 한다.

 

하지만 굳이 머리로 이해하지 않아도,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들을 그 자체로 감상의 맛이 존재한다. 솔직히 색감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맨 처음 전시 섹션을 지나면 사진 촬영도 가능해서, 인생 사진을 남기기에도 좋을 것이다. 전시장 내부를 답답하지 않게 꾸며놓아서 생각보다 포토 스팟이 많다는 것은 안 비밀. 살랑 봄바람이 불어오는 요즘과 참 잘 어울리는 전시였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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