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슬아의 글을 사랑하는 이유 [도서/문학]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고
글 입력 2022.04.1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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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다섯 번 마감을 치는 삶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이슬아 작가는 한 편에 500원을 받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독자의 메일함으로 글을 보내는 서비스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이렇게 6개월 동안 보낸 글들을 묶어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출판했다. 어린 시절, 가족, 친구, 환경 등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두텁고 알차게 담아낸다.

 

작가의 책은 솔직하다. 그렇기에 자신이 쓰는 글이 픽션도 논픽션도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에 각색이 들어가 있는 글이라서 전부 믿으면 안 된다고 대놓고 선언하기에 더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마치 친구 얘기라고 말하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과 비슷하다. 자신의 부모를 ‘웅이’나 ‘복희’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저 누군가의 엄마, 아빠가 아니라 한 명의 주인공으로 글에 등장시키며,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시트콤처럼 독자들을 울리고 웃긴다.

 

 

 

불특정 다수에게 내 생각을 전하는 일


 

 

인스타그램도 안 끊고 자신이 드러나는 수필도 매일 쓴다. 논픽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픽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불특정 다수에게 여러 편의 이야기를 보낸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날마다 온갖 곳에 노출하면서도 망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나도 안전하지 않은 느낌이다. 분명한 건 봐주는 사람들이 주는 원동력으로 해내는 일들이 많다는 점이다.


의젓한 어른, 그러니까 엄살도 자랑도 덜한 사람이 된다면 나를 덜 드러내고도 충만할 수 있을까? 나 아닌 것의 존재를 조용히 음미하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유예될 수 있을까? 내가 뭘 잘하거나 못하는지 힘주어 말하지 않고도, 탁월해지기 위한 조급함 없이 하루를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될까? 좋아해달라고 끊임없이 바라지 않을 수 있을까?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쓰는 것도 내게는 꽤나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수천 명의 독자의 메일함에 직접 글을 보내는 이슬아 작가는, 대단히 용기가 있거나 타인의 평가를 거뜬히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신경줄이 굵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 속에 드러난 작가는 자신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고, 글을 많이 쓴 날이면 바닥이 보일 것 같아서 남의 글로 스스로를 다시 채우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진짜 중요하고 소중한 건 쓰지 않았기에 괜찮다는 작가의 말에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공연히 사라지거나 비판을 받아도 상관없으니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들을 더 많이 쓰기로 결심했다. 사실 내가 용기를 그러모아 가능한 한 날 것을 포장 없이 쓴다 해도 이슬아 작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뭔가 내게 솔직함의 최대치를 정해준 느낌이다. 아직은 최선이 아니기에 나는 조금씩 더 내 얘기를 꺼내놓을 수 있다.

 

 

 

몸과 화해하기



 

재롱잔치의 그 무대로부터 15년 뒤 나는 누드모델로 데뷔한다.


첫번째 이유는 시간을 벌고 싶어서였다. 스무 살에 선택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직종 중 시간 대비 가장 높은 수익을 가져다 주는 일이어서다.


두번째 이유는 내 몸에 용기를 주고 싶어서였다. 체형과 체중에 상관없이 시간 약속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누구나 누드모델로 일할 수 있었다. 수없이 그려지다보면 내 몸을 오랫동안 미워한 역사와 무사히 작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 또한 내 몸을 미워한 시간이 꽤 길다. 아무 생각이 없던 시절을 지나서 내 몸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반목이 시작되었다. 어느 것 하나 완벽히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건 계속 불쑥불쑥 눈에 띄었다. 눈에 거슬렸으나 칼을 대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내 몸과 화해하기 위해 내가 했던 노력들은 다음과 같다. 내 몸을 줄자로 재서 수치화해 봤다.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아서 내게 어울리는 색을 찾으려고 했고 체형 진단에 관한 영상을 보면서 몸의 특징들을 분류하려 했다. 몸을 재고 따지던 시간들을 통해 나의 단점과 장점은 더 선명하게 인식되었다. 점점 더 미워하던 시간은 지나고 이제는 조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냥 생긴대로 인정하고 현 상태에서의 최선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마냥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을 뿐더러,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내 인생에 많다는 걸 알게된 것이다.

 

 

 

재능없는 사람의 글쓰기, 지속할 용기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십 년 전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그랬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책에도 비슷한 맥락의 글이 있지만 그것 말고 경향신문에 기고한 ‘재능과 반복’이라는 글을 인용했다. 이 글이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좋은 글들이 넘쳐나고 정말 모두가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나까지 굳이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무에게 미안한 수준의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미완성의 세계를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두려웠다. 전공이나 관심사에 대해 쓰기에는 얼마 안 되는 지식으로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이 되었다.

 

이런 수많은 고민들 속에서 그냥 계속 쓰는 것이다. 갈 지 자로 걸어도 그냥 걷는 것이다. 작가가 말했듯 항상 글을 못 쓰는 사람도 항상 잘 쓰는 사람도 없다. 계속 쓰면 아주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니까, 들쑥날쑥하긴 하겠지만 글 쓰는 일을 절대 그만두지는 말아야겠다. 재능보다는 반복해서 쓰는게 중요하단 이야기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

 

처음 수필집을 낸 후로 몇 년이 흘러 지금은 더 단단하고 대담해졌을 작가의 행보를 계속해서 지켜보려고 한다. 가장 최근에 들은 소식은 ‘아무튼 시리즈’에 합류해서 ‘아무튼, 노래’라는 책을 낸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더 많은 것에 관해 말하는, 세계의 확장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용기를 내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준 이슬아 작가에게 사랑을 전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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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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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리브그린
    • 나무에게 미안한 수준의 글을 쓰고 싶지 않다는 표현 예뻐요. 재능보다 반복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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