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 모든 게 다 헛소리야. - 뮤지컬 스메르쟈코프 [공연]

글 입력 2022.04.1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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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메르쟈코프] 메인포스터.jpg

 

 

 

<스메르쟈코프>의 시작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 이어 같은 제작사에서 창작한 뮤지컬이다.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중 막내이자,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결말의 핵심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스메르쟈코프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를 보고 나서 가장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맴돌았던 인물이었기에 그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 후속작 개념으로 곧 올려진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이 기대되었다.


이 극은 특이하게도 스메르쟈코프를 3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서 함께 연기한다. 보통 아예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로 배역을 구성해 마지막 결말 즈음, 결국 그들은 자아의 분열로 나타난 것이었고, 모두 한 인물이었음을 관객들이 깨닫는 의도를 가진 방식의 공연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파격적으로 5명의 배역 중 3명이 같은 이름 “스메르쟈코프”로 소개가 되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스메르는 발작을 하며 발작 속 꿈인지, 현실인지도 구별이 되지 않는 다양한 세상으로 달려가는데, 그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3명의 배우들이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ETA 호프만의 단편 소설<모래 사나이>을 각색해 녹여냈다. 끊임없이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스메르쟈코프의 광기로 치장한 뮤지컬<스메르쟈코프>다.

 

 

 

<스메르쟈코프> 속 <모래 사나이>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 단편소설의 간략한 내용이라도 알고 극을 봐야, 극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올라갈 것이다. 전작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또한 워낙 길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원작을 압축해 제작했기에 관극 1번만으로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순 없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극 또한 꽤 불친절하다. 특히나 모티브를 가져온 <모래 사나이>를 모른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극 이해에서 멀어지고 정말 모든 게 헛소리라고 느껴질 것이라고 감히 예상한다. 그래서 최소한 <모래 사나이>의 내용을 알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단편소설이라 읽기도 간편하고, 책을 찾을 여유가 없다면 네이버 지식백과에 친절한 요약 해설이 있으니 읽고 가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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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는 주인공 나타나엘이 점점 광기로 미쳐가 결국 자살하는 매우 어두운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다. 처음은 나타나엘의 편지 속 내용으로 책이 시작되는데, 어린 시절 소문으로 떠돌았던 무서운 공포의 대상인 모래 사나이를 직접 만났던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식의 편지글로 전개된다.


 

모래 사나이는 유모의 동화에 나오는 달나라의 올빼미 등지에 아이들의 눈을 먹이로 가져가는 괴물이 아니었어. 그래, 가는 곳마다 슬픔과 불행, 일시적이거나 영원한 재앙을 가져다주는 추악한 악마 같은 괴물, 코펠리우스였던 거야.

 


모래 사나이는 아이들의 눈을 빼앗는 잔인한 괴물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대면한 모래 사나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늙은 변호사인 코펠리우스였다. 그에게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대학생이 된 나타나엘은 아직도 어릴 적 경험 때문에 맑은 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명랑하고 태평스런 마음에도 바로 우리 자신 속에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어두운 힘에 대한 예감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나요?

 

 

연인 클라라는 그 모래 사나이는 적대적인 파멸의 길로 이끄는 어두운 힘이 내면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현실엔 없는 환영일 뿐이라며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눈을 빼앗긴다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멈추게 할 순 없었다.


그러던 중, 대학교 스팔란차니 교수님의 딸 올림피아를 보고 사랑에 빠져 클라라를 잊고 그녀를 따른다. 친구들은 올림피아가 영혼 없는 눈을 가지고 기계적인 행동을 한다며 그녀를 피하라고 조언하지만, 나타나엘의 눈엔 누구보다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어느 날,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올림피아는 이미 사람이 아니었고, 기술자 코폴라와 그녀의 아버지 스팔란차니 교수가 눈이 없는 형상인 기계 인형 올림피아를 서로 갖기 위해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밀랍 얼굴에 분명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나타나엘은 꿈에서 깨어나 올림피아를 만난 모든 게 꿈임을 느끼고 그렇게 모든 광기의 흔적은 사라진 듯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눈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안경, 망원경에도 공포감을 느끼며 미쳐간다. 클라라와 다시 데이트하던 중, 광기에 휩싸인 그는 클라라가 기계 인형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절벽에서 떨어트리려고 노력한다. 결국 그녀는 누이동생에 의해 구출되고, 미쳐버린 나타나엘은 “아름다운 눈이야”를 외치며 투신해 자살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코펠리우스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이 <모래 사나이>의 줄거리도 뮤지컬 <스메르쟈코프>의 음산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닮아있다. 무엇인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과도하게 고조된 내면세계로 인해 더이상 내면에 대해 성찰하거나 외부와 내부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마지막까지 우중충하고 기괴하다.

 

 

 

내면세계의 과몰입



작가는 광기를 주제로 독자들에게 객관적인 현실 개념과 인지의 문제를 제시한다. 그러한 객관적인 인지를 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통해 외부세계와 내면세계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정상과 광기의 구분, 병적 상태와 건강 상태를 구분하는 그 경계가 매우 불분명한 혼돈 그 자체를 책을 읽으면서 머리 아프게 강렬히 느낄 수 있었다. 결국엔 현실의 삶에 기반을 두고 현실과 상상의 중도를 지키는 의도를 가지며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감 어린 생각을 무겁게 마음에 담아둘 수 있었다.


이는 뮤지컬에서도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아버지인 표도르를 죽인 뒤, 스메르쟈코프는 며칠간 긴 발작을 하게 된다. 그 안에서 자신만의 세상에 도달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 속에 빠져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내뱉는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관객은 지금이 현실인지 스메르쟈코프의 환영 속 이야기인지 구분할 수 없다. 나타나엘이 자신만의 세상에서 눈을 파먹는 코르넬리우스, 기술자 코폴라, 기계 인형 올림피아를 만난 것처럼, 스메르쟈코프도 묘지관리인 코폴라, 고문 기술자 코르넬리우스, 조시마 장로, 아버지 표도르까지 많은 사람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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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사나이>를 읽어보면, 읽는 사람조차 무엇이 현실이고 진짜인지 구분하지 못하다가 마무리된다. 코르넬리우스와 코폴라가 같은 사람이라는 가능성도 언급하지만 결국 불분명하게 끝을 맺는다. 이런 지점들이 모여 책을 읽었을 때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하고도 그로테스크한 기분이 들었다.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를 보고 나올 땐, 그 기분의 10배였다. 전작을 봤을 때도 강강강 넘버와 배우들의 연기로 90분가량을 이끌고 가는 전개에 진이 빠졌던 것을 고려해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갔지만, 이렇게 휘몰아치며 전개되는 공연은 처음이었다.


<모래 사나이>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원작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속 스메르쟈코프의 상황에 맞게 변화된 역할로 코폴라와 코르넬리우스를 배우 한 명이 모두 맡아 연기한다. 그들이 만나는 3명의 스메르쟈코프는 깊은 내면의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탐구하고, 탄생을 거슬러 올라가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름을 알고 있어? 왜 태어났는지 알고 있어?  인생이 뭔지 알고 있어?” 등 계속해서 자신에 대해 깊게 파고든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죽도록 스스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스메르쟈코프가 극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사람의 눈알


  

<모래 사나이>에선 눈의 모티브가 강렬하게 등장한다. 서울대학교 독문학과 권혁준 강사에 따르면, 서양에서 눈은 외부세계가 비치는 거울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음의 창이자 영혼의 거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눈을 통한 외부세계의 인지는 그 외부를 바라보는 주체의 영혼과 내면의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각자가 무엇을 봤느냐에 대한 대답은 자신의 마음 상태와 태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어쩌면 매우 당연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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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엘은 내면세계가 무너져 내려 외부세계에 대한 인지 또한 굉장히 왜곡되어 더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태에 처했다. 어릴 때, 모래 사나이가 눈을 빼앗아 가는 것에 심한 트라우마가 생겼고, 그때부터 눈에 대한 집착이 생겼고, 자신의 상상 속에서 생긴 연인 올림피아도 결국 기계에 그럴싸한 눈을 박아놓았던 인형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눈이 이상하다고, 텅 비어있는 영혼 없는 사람이라고 그를 만류했지만, 이미 내면에 갇혀 객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한 눈을 갖게 된 나타나엘은 그녀의 눈에 매혹당한다. 마지막 죽음도 아름다운 눈을 외치면서 끝난다.


뮤지컬에서 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작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도 눈을 가리는 안무가 매우 많았고, 눈을 가려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대한 대사로 이뤄진 장면도 있었다. 이번 <스메르쟈코프>에서도 사람의 눈알을 외치는 넘버가 있다. 혼돈 속에 휩싸여 스메르쟈코프 3명 모두가 사람의 눈알을 먹었다고 아버지께 고백한다. 나타나엘처럼 외부를 받아내는 창인 눈알에 집착하지만, 그들은 절대 세상을 직시할 수 없다.

 

 

 

물음의 연속 끝엔, 다시 물음표


 

 

그것은 우리 자신의 환영이며 그 환영의 내적인 친화력과 우리의 심성에 대한 깊은 영향력이 우리를 지옥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천국으로 끌어올리기도 하는 것이라고요.

 

 

<모래 사나이>의 클라라 대사다. 결국 스메르쟈코프는 마음속 깊은 믿음을 지옥으로 끌고 내려갔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주장에 깊은 확신을 하는 듯하다. 그리고 자신이 행한 살인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 울면서 웃어 보인다. 그런 광기 어린 넘버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스메르쟈코프의 연약함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넘버로 연결된다.


‘엄마라는 단어’라는 제목의 넘버로 엄마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스메르쟈코프가 자신의 탄생 이유에 대해 되뇌며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처음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장면이다.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단어, 배워보지 못한 단어로 엄마를 내뱉으며 그동안 발작하며 분열되어 자아들이 흩어질 만큼, 더욱 삶의 의미와 자기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있는 이유조차 못 찾는 스메르쟈코프의 내면을 조명한다. 이 장면에서 나는 우리의 심성에 대한 깊은 영향력이 우리를 천국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클라라의 대사가 떠오름과 동시에 아무리 스메르쟈코프가 주변 환경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려도, 결국엔 자신의 행방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가짐이기에 불편함을 느꼈다.


소위 이 극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관객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어딘가에서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 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난해한 연출과 어디로 빠지는지 알 수 없는 전개에 정신을 못 차리고 90분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전작에서 형제들이 입었던 옷만으로 관계를 나타내는 연출은 전작을 꽤 기억하고 있는 관객에게만 유효했고, ‘가여운 천사, 가여운 신부’ 넘버에서는 조시마 장로의 간절한 외침이 결국 스메르쟈코프 환상 속에서 부도덕한 아버지 표도르의 향락으로 변화하는 등의 내용 전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나는 전작을 몇 번 관극했고, 원작을 몇 번 읽고 노트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렬하다 못해 기괴한 음가의 넘버와 몰아치는 등장인물들의 강도가 센 액션 움직임에 적응해내느라 정작 이 뮤지컬의 주제와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이 뮤지컬을 설명하는 단어엔 정신병, 조현병, 분노조절장애, 순수, 폭력, 정신분열증 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현대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중성이라고 공연 안내에 적혀있다. 하지만 광기와 환상으로 대표되는 스메르쟈코프의 행동들을 보며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이해되기보단,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더욱 미궁에 빠져들었다. 내면에 존재하는 악마에 먹혀버린 스메르쟈코프를 보면서 느껴야 하는, 제작자가 관객들로 하여금 느끼게 만들고 싶던 감정은 무엇일까.


모래 사나이 고전해석 ZIP에 따르면, <모래 사나이>에는 바로 낭만주의 예술과 과도한 낭만적 주관성의 문제들, 다시 말해 자신만을 재생산하는 예술가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작가 호프만은 진정한 시인이 휘황찬란한 글을 내놓기 전, 우선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참된 형상을 내면에서 형성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고 순전히 상상력의 세계에 매몰되는 예술가는 바로 광기에 잡힌 나타나엘과 다름없다. 결국 예술가가 상상력의 상아탑에 갇혀선 안 되고, 현실의 삶을 바탕으로, 현실과 상상, 외부세계와 내면세계 간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과연 도스토옙스키가 뮤지컬 <스메르쟈코프>를 보면 자신이 말하던 발작과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 이야기가 제대로 담겨 있다고 만족해할까? 몇 번이고 다시 극을 보면서 알아가는 매력도 존재하는 게 공연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관객들이 기승전결을 파악할 수 있도록, 원작의 각색이 원작에 대한 오류나 피해가 되지 않도록 촘촘히 구성하고 창작해내는 것이다. ‘너무나 살고 싶어지는 이 순간’을 격렬히 보내던 스메르쟈코프들이 외친 수많은 물음표 끝엔 명확한 답이 없었다. 그저 내면에 고여버린 그들뿐이었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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