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산뜻한 바람으로 다가온 클라리넷의 숨결과 몸짓 - 조성호의 콘체르토 플러스 [공연]

한 무대에서 만나는 4개의 바로크 클라리넷 협주곡
글 입력 2022.04.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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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부턴가 음악이 시간을 견디기 위한 소리 신호 정도로만 감각되기 시작했다. 플레이리스트는 나를 반복된 알고리즘의 길로 안내했고, 음악적 취향을 발견하며 디깅을 하는 일도 멈춘 지 오래였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 음악의 존재감은 더 이상 인식되지 않는 배경 정도로 전락했다.

 

선율로 전해지는 감정과 기억, 연주자의 다양한 마음, 오로지 음악에 집중하는 순간. 그런 것들이 있기에 나는 음악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제는 매번 틀어놓기라도 했던 노동요조차 없이 조용하게 작업을 하는 날도 잦아졌다. 코로나 이후로는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없고, 더군다나 클래식 공연은 언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많이 지친 것 같았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이번 초대에 덜컥 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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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호의 콘체르토 플러스]는 바로크 시대의 대표주자 비발디와 바로크 시대 말미에 활약한 요한 슈타미츠, 카를 슈타미츠 부자의 협주곡들로 구성되었다. 요한 슈타미츠 클라리넷 협주곡은 클라리넷 연주의 기준적인 레퍼토리로 가장 이른 시기에 작곡된 클라리넷 협주곡 중 하나이다. 오페라 올림피아드 등의 아리아를 편곡하여 만들어진 비발디 협주곡은 아직 한국에서 실연된 바가 없다고 한다. 조성호 클라리네티스트는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과 함께 이 곡들에 기악적 해석을 담은 연주를 선보일 것이라 소개하였다.

 

클래식에는 옛것이라는 동시에 고풍스러운 것이라는 다소 평가적인 의미 또한 담겨 있는데, 오랜 시대를 거쳐 정해져 내려온 양식이 있기 때문에 클래식을 감상하는 데에는 교양이 필수라고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클래식을 잘 모른다면 아마도 팜플렛을 본다 한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 역시 평소에 가사가 있는 곡보다는 연주곡을 주로 듣는 데에다 특히나 오케스트라 구성의 음악을 꾸준히 좋아해왔지만, 결국 클래식이라고는 악기의 음색과 종류를 조금 구분하는 정도인 아마추어일 뿐이었다.

 

조성호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수많은 클라리넷 협주곡 중 악기를 시작하고 가장 첫 번째로 배웠던 요한 슈타미츠의 곡을 꼽으며, 이번 공연에서 최대한 아이로 돌아갔을 때의 연주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최대한 아이로 돌아갔을 때의 마음으로 연주를 들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은 클래식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의 눈과 귀로 감상한, 심상 위주로 이루어진 날것의 리뷰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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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o Park/MOC

 


여는 음악은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의 신포니아로 시작했다. 저음역대와 고음역대의 악기가 주고받는 선율이 설렘을 증폭시켰다. 내 눈앞에서 실제로 연주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렴한 스피커를 통해 듣는 모노 사운드에 익숙해져가던 차에, 악기의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의 묘미를 오랜만에 느꼈다. 초대받는 기분이 한껏 들면서 넘어가는 악보 소리에도 마음이 들떴다.


그렇게 오프닝을 만끽한 후, 오케스트라로 둘러싸인 공간에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가 등장했다. 그는 지휘를 겸하며 클라리넷에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놀라우리만치 부드러웠다. 매 곡마다 구성에 따라 새로운 악기가 등장하기도 하는 모습도 재밌었고, 그 곡들을 전부 감싸 안는 듯한 클라리넷의 음색도 기분 좋게 들려왔다.

 

오케스트라는 울창한 숲, 그리고 클라리넷은 숲속을 자유롭게 노니는 한 마리의 새 같았다. 하프시코드는 마치 별이 내리는 듯한 독특한 소리를 냈다. 흩날리는 나뭇잎 같은 현악기들의 비교적 날카로운 소리 속에서 클라리넷의 뭉근한 음색이 돋보였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음색들이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그야말로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와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이 이뤄낸 멋진 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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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o Park/MOC

 


그 시대 음악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 연주의 중요한 방향 중에 하나라는 조성호의 클라리넷 실력은 누가 봐도 수준급이었다. 강약 조절은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웠으며, 시대의 정서를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클라리넷으로 이만큼이나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폐활량은 얼마나 좋은지, 엄청난 분량을 한 숨에 담아내는 연주도 정말 대단했다.

  

그는 한 손으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지휘를 겸하기도 했다. 무대를 자유자재로 거닐며 숨을 들이마시고, 눈썹이 들썩이고, 어깨와 등에 힘을 싣는 동시에 발끝에 포인을 주기도 하는 그의 다양한 몸짓들은 클라리넷 연주의 매력을 더욱 살리는 동시에 관객이 음악에 절로 집중을 하게 만들었다. 귀뿐만 아니라 눈까지 사로잡는 공연이었다.


카를 슈타미츠의 자유로이 흐르는 음악적 스타일은 조성호가 연주하는 클라리넷의 맑은 음색과 어우러져 그 효과가 배가 되었다. 고음에서 살살 밀고 당겨오는 클라리넷에 기꺼이 따라주는 오케스트라의 숲이 기분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곡을 이어가는 전체적인 호흡도 좋았지만, 곡을 시작하면서 ‘흡!’하고 들이마시는 숨도 좋았다.

 

곡의 악장마다 변주를 주어 반복되는 선율을 인지하고는 더욱더 들뜨기 시작했다. 밴드 공연이나 재즈 클럽에서는 리액션이 자유지만, 클래식 공연이라 그런지 팜플렛에 악장 간 박수를 삼가 달라고 명시된 점이 아쉬울 정도였다. 이렇게 풍부한 음악을 듣고도 가만히 앉아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몸이 근질거렸다. 1부 공연이 끝나고 정중한 인사가 이루어졌고, 인터미션 동안에는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 오랜만에 찾은 공연장의 분위기를 둘러보며 여유를 즐겼다.


2부 공연은 비발디의 음악으로 시작되었다. 힘찬 연주로 분위기를 새롭게 끌고 가는 것이 마치 대서사시의 서막을 알리는 것 같았다. 악장마다 힘을 다르게 싣는 연주자들로부터 표현을 위해 굳게 먹은 마음이 전해졌다. 폭풍 속의 항해, 산의 굴곡을 따라 오르는 새의 비행, 춤을 추는 무희들 등의 풍경들을 멋대로 상상했다. 계속되는 선율을 위한 풍부한 호흡과 몸짓으로부터 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는 환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의 앙코르는 넬라 판타지아로 유명한 가브리엘의 오보에였다. 각 세션들이 한 소절씩 맡아 연주하는 것으로 커튼콜을 대신하는 듯했다. 그렇게 공연이 마무리되고 연주자와 관객 간에 간단하고도 따뜻한 마무리 인사가 오갔다. 새삼 이 공연에서 사람 목소리를 처음 들은 순간이었다. 악기의 울림만으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는 것을 마지막에 다시 한번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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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앞두고 조성호는 "우리가 본 적이 없는, 음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옛것에 대한 향수와 현재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내고 싶습니다"라며 이번 연주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나대로 추상적인 감상을 이어갔기 때문에 내가 떠올린 심상들이 작곡가와 연주자의 의도와는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 적이 없는 것을 담아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직은 선선한 밤의 봄바람을 맞으며 떠올렸다. 현재를 감상하기 위해 머무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음악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향수를. 음악이 좋다. 이것은 다시 시작된 숨가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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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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