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북극 탐험가 십대 소녀 로리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 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미지의 북극 세계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과 마주하다
글 입력 2022.04.0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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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이누이트의 말에는 눈을 뜻하는 수백가지 단어들이 있다는 말, 그건 거짓말이야’ 이 연극의 주인공인 10대 소녀 로리는 초반부터 공공연한 명재처럼 보였던 극의 제목을 부인한다. 이는 이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순간에 사랑하던 아빠를 잃은 십대 소녀 로리가 지리학자였던 아빠의 오랜 꿈이자 인생의 목표 ‘북극 탐험하기’를 이루어주기 위해 아빠의 유골함을 배낭에 매고 무작정 떠나는 이야기, 다소 무모하고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죽음과 상실, 그리고 성장이라는 모든 키워드를 아우르며 가볍게 극장을 들른 관객들에게 로리의 배낭과 비슷할 것 같은 무게를 지닌 생각의 추를 달아준다.

 

 

 

상실: 이누이트의 문화는 백인 탐험가들에 의해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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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살펴볼 키워드는 ‘상실’이다. 로리의 말을 듣다보면, 아니 로리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준, 누구보다 북극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말을 듣다보면 이누이트의 문화, 북극의 문화는 그 지역으로부터 철저히 외지인인 백인 탐험가에 의해 지워진 것을 알 수 있다. ‘눈을 뜻하는 수백가지 단어’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부터해서 이누이트보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에스키모’라는 단어는 그들을 ‘야만적인 존재’로 칭하며 비하하는 단어였다는 것까지 말이다.


북극의 문화는 이렇듯 그곳에 실재로 거주 중인 이누이트의 언어가 아닌 외부인에 의해 철저히 왜곡된 언어로 점철되어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렇게 이누이트의 문화는 ‘상실’되었고, 비단 그것은 한 민족의 문화가 상실되었다는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로리는, 지리학자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왜 그토록 아무것도 없는 북극에 가고자 했을까? 그리고 수많은 탐험가들은 왜 극지방까지 스스로를 내몰고 갈 수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북극은 어쩌면 미지의 세계인 자연을 대변하는 존재이다. 해가 하루 종일 지지 않는 백야와 해를 볼 수 없는 극야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 오색찬란한 오로라가 수시로 뜨는 곳, 아무것도, 정말 말그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로 모든 것이 채워진 그곳. 북극은 비워져 있기에 동시에 자연의 모든 모습을 대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극 문화의 상실은 ‘자연의 상실’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문구를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자연이 아낌 없이 주는 풍족한 자원을 정말 한 치의 아낌도 없이 누렸고, 자연은 더 이상 내어줄 것이 없을 만큼 벌거 벗게 되었다. 그 속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스스로를 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지해야 할 것이다.


로리가, 그녀의 아버지가, 탐험가들이 텅 빈, 아무것도 없는 북극을 마주하고 느꼈을 그 감정은 어쩌면 거대한 ‘상실’이며 이 극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 중 하나이다. 공허하고 두려운 상실을 마주해야 할 때가 왔음을, 이 극의 작가인 테티 헤네시는 로리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죽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이 사진 속에 있다,

나를 제외하고



상실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죽음’이라는 다소 서늘하고 생각하기 싫은 키워드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죽음은 말그대로 나 자신을 상실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로리는 북극에 가까워질 시점, 문득 달 착륙 작전에 투입되었던 우주 비행사 마이클 콜린스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는 닐 암스트롱이 달에 깃발을 꽂는 동안 우주선을 지켰던 사람인데, 인류 최초로 달의 뒷면으로 돌아가 달과 지구가 일직선에 위치하는 지점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가 자신의 사진에 대해 남긴 문구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이 사진 속에 있다. 나, 마이클 콜린스만 제외하고.’ 상상해보면 등골이 서늘하지 않을 수 없다. 온기가 있는 어떠한 생명체와도 접촉할 수 없고 오로지 나 홀로 만이 남았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은 어쩌면 죽음이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니까 말이다. 마이클 콜린스는 달의 뒷면에서, 로리는 북극의 황량한 풍경에서 홀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했다.


‘사회적 죽음’. 로리와 마이클 콜린스는 그것을 경험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타 생명체와의 교류가 없는 삶은 정말 아무 의미 없는 것일까? 마이클 콜린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그 당시 혼자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두려움이나 외로움보다는 자각, 기대감, 만족, 확신, 환희에 더 가까웠다. 그 느낌도 마음에 든다. 창밖으로 별들이 보인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극작가 테티 헤네시는 로리가 미래에 태양광선과 빙하 작용 등에 대해 연구하는 지리학자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타인과의 관계 정의 없이도 스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것, 어쩌면 이 연극은 그러한 내적 존재 가치를 찾아내기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리의 아버지의 유골이 헬리콥터를 통해 상공에서 가상의 북극을 향해 올라가던 것처럼, 우리의 존재 가치는 스스로 정의 내리기에 달렸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언젠가는 직면할 수밖에 없는 육체적 죽음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장: 모든 탐험의 끝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이르러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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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는 결국 북극에 도달했고, 아버지의 유골을 북극의 품으로 보내주었으며, 일련의 탐험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프리다, 어머니, 안드레아스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그녀가 접해 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으며 황량한 북극의 민낯을,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며 고독함에 맞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생각해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염원하던 아버지의 소원도 이루어 주었다.


로리와 어머니는 그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든 것은 한 여름 밤의 꿈인 것처럼, 신기루 마냥 사라져 버린 것 같기도 하다. 로리는 또다시 그토록 지겨워하던 학교 생활로 돌아갈 것이고, 그녀의 어머니는 생계 유지를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다른 점은 그들은 비로소 자신이 돌아온 지점, 그러니까 자신의 시작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탐험의 끝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되는 것, 로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을 미지의 북극 세계에서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녀의 이러한 ‘성장’을 통해 로리의 삶은 어찌되었든 계속될 것이다. 삶은 이렇듯 죽음과 상실, 그리고 성장이라는 알 수 없는 변주를 따라 흘러가고, 그 위를 걷는 우리는 계속 해서 변화하는 가상의 북극을 측정하려 애쓰는 지리학자처럼 우리 삶의 좌표를 더듬으려 노력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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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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