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네 인생은 편집본, 내 인생은 원본

공부하기 싫어서 쓰는 일기
글 입력 2022.03.2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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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의 제목은 아래 영상에서 빌려왔음을 밝힙니다

 

 

 


나는 요즘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다. 4월 10일에 실시하는 제58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2급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기본/심화로 나누어진 한능검 시험에서 심화를 응시한 후 70~79점을 받으면 2급 인증자격증을 얻을 수 있다.


넉넉하게 한 달 정도 기간을 두고 준비를 시작했다. 일이나 다른 개인적인 사정으로 공부하기 어려운 날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공부하는 기간은 거의 열흘 정도다. 자격증 시험은 단기간에 집중해서 공부하는게 효율적이고 좋다는 이야기도 익히 들었고, 그 중에서도 한국사능력검정은 일주일만에도 땄다는 후기들이 있으니까. 학교 다닐 때 한국사를 못 하는 편이 아니었어서 한 두 번 보면 금방 점수가 나올거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생각보다 범위도 넓고 외울 것도 많고 사람과 단체들이 낯설기만 하다. 최근 티비에서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역사 이야기가 등장하면 자꾸만 헷갈리고 할 말이 줄어들어, 시험과 별개로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이 정도라니 솔직히 좀 놀랐다.


오랜만에 공부를 손에 잡으니 집중도 왜 이렇게 안 되는지. 주말 이틀만에 강의를 끝내고 기출문제를 풀겠다고 호언장담 했는데 무리였다. 게다가 1회독을 한 지금도 머리에 남은 것은 많지 않아, 내용을 정리해본 후에 한두 번은 더 들어야 시험을 칠 수 있을 것 같다.


공부로는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되고 있는 최태성의 한국사 강의를 듣고 있다,(한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거나 나처럼 시험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무료로 얼마든지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듣다보면 종종 선생님이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복습하는 거라고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새로운 내용을 듣는 기분이라 적잖이 당황스럽다.


하긴 생각해보면 대학교에 들어온 다음부터는 이런식으로 단기간에 많은 양의 지식을 학습해야 하는 방식의 공부를 하는게 참 오랜만이다. 관심있는 논문을 찾아서 공부도 해보고 다양한 과제를 하거나 글도 써봤지만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니.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그러고보면 내 인생에 해야지 해놓고 아직 제대로 끝내지 못한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사와 토익과 스페인어와 글쓰기와 책 읽기와 데이터 사이언스와 유튜브와 게임비평과 운동과 작곡과 피아노.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일들. 그 하나하나에 얽긴 무수한 시도와 흐지부지의 역사가 있다.


스페인어는 해외인턴을 다녀온 이후로 시작했다. 스페인어권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있는걸 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하며 공부를 시작했지만 당초 목표했던 DELE 자격증 시험 준비를 시작하기도 전에 1년짜리 강의가 만료됐다. 영상을 제작할 때 내가 직접 만든 음악을 써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피아노와 작곡도 손을 놓은지 오래고, 토익이나 취업에 필요한 기타 필수 자격증도 만료되거나 이제 준비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는 다짐도 일을 시작하니 지키기가 쉽지 않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시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스스로 벌려놓은 판을 감당하지 못해 용두사미로 프로젝트를 끝마친 경우도 왕왕 있었던 것 같다. 욕심이 많아 이것저것 쉽게 꿈꾸고 시작하지만, 너무 많은 일을 혼자 감당하려다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 안에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흐지부지로 아직 다 끝내지 못한 내 인생의 과제들과 하고싶던 일들을 바라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그 중에는 내가 한 때 ‘이 일만큼은 10년 뒤에도 당연히 내가 하고있을거야’라고 생각할만큼 좋아하는 일들도 있었고 꼭 필요한 일들도 있었다. 그러나 각각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어떤 경우에는 목표한 바가 있고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결과물 하나 남기지 못했다.


이번만큼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 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걷다가 책을 구경하고 싶어서 들어간 거였다. 오랜만에 책이나 골라서 이야기할 생각으로 들어간 도서관이었는데,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많아 놀랐다.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주말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다.


시험공부를 하는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거나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는 취준생, 직장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토익공부와 심지어는 백발의 할아버지까지도 외국어와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각자 다른 목표를 가지고 다른 환경에 있겠지만 자신의 원하는 삶을 위해 주체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로 멋있어보였다. 항상 그렇듯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멋진 삶을 들여다보면 자극이 된다.


글 맨 앞에 함께 넣은 영상이 있다. 티키틱의 <내 인생은 원본, 네 인생은 편집본>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다. 자꾸만 힘이 빠지고 내가 사는 삶이 초라해보일 때 찾아가서 보는 영상이다.


인스타를 보면 남들은 어디서 상도 받고, 재밌는 곳도 놀러가고, 행복하게 연애도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CCTV처럼 지겹게 흘러가는 내 삶을 바라만 보고 있을 때. 티키틱의 표현처럼 내 삶이 지루한 원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네 인생이 나에게는 편집본’처럼 느껴져서 그렇지 그들에게도 지루하고 정직한 원본의 삶이 있을 것이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내 삶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편집본으로만 보일지 모른다.


영상의 마지막에 붙어있는 쿠키영상에서는 실수를 되감기했던 인물들의 원본이 나온다. 남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편집되지 않은 영상. 실수한 그 순간에 멈춰버린 모습. 우리는 모두 되감기가 없는 현실에 살아간다. 편집된 하이라이트처럼 중요하고 좋아하는 순간만을 살 수는 없다.


때론 내 삶이 지겹고 지난해보일지라도 그 순간을 무던하게 살아가는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지루하고 하기 싫은 공부도, 빛날 순간들을 기대하며 다시 손에 잡아본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시간과 삶이 있고, 그 시간을 살다보면 편집본처럼 아름다운 순간도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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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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