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망친 곳에 따뜻한 위로가 있기를, 위저드 베이커리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3.2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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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세상의 모든 겁쟁이에게 경고하는 말이자, 세상을 살다 보면 어느 한순간엔 반드시 야속해지는 문장이다. 잔뜩 힘들어 예민해져 있을 때 이 말이 떠오르면, 내 삶엔 지금의 선택지 말고는 답이 없다는 말로 들려 희망이 갈기갈기 찢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말은, 어느 측면에서는 옳다. 도망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 잔뜩 꼬인 삶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 우리는 단단히 뭉친 실타래를 직접 눈으로 보고, 이리저리 잡아당겨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매듭을 마주하는 것이 당장은 너무 힘들다면, 숨을 고르고 머리를 비우기 위한 ‘잠깐의 도피’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순간의 도피처가 낙원은 아닐지라도 힘든 마음을 충분히 보듬어 줄 수 있는 따스한 장소면 안 되는 걸까?

 

 

 

따뜻함? 아니 타버릴 것 같은 뜨거움!



위저드 베이커리의 주인공은 바쁜 아버지, 자신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새어머니, 그리고 8살 난 이복동생과 함께 사는 고등학생으로, 눈앞에 글이 없으면 단답도 명쾌하게 하지 못하는 증상을 4년째 앓고 있다. 주인공을 윽박지르는 학교, 괴롭히다가 이젠 피하기 시작한 친구들, 그런 주인공의 증상에 대해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기만 하는 아버지는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의 전부다.

 

주인공은 가족과 잘 살진 못해도 함께 살아보려 했다, 아니 살아야만 했다. 말더듬이 고등학생이 가정을 벗어나 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그래서 숨만 쉬어도 눈을 흘기는 새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새벽같이 학교에 나가 매점 빵으로 아침을 떼우고, 저녁이면 방에서 먹을 만한 빵을 사 들고 와서 방에서만 지내는 삶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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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주인공이 매일 저녁 빵을 사 가는 곳이 아파트 단지 앞 24시간 동안 영업하는 제과점이다. 이 제과점의 제빵사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꽁지머리 남자이다. 그리고 낮에는 주인공과 또래 같아 보이는 여자애가 계산대를 돌본다.

 

그런데, 이 제빵사가 좀 이상하다. 곰보빵에 뭐가 들었냐 물으니 갓난아이의 말린 간이라고 하지를 않나, 젤리를 가리키며 고양이 혓바닥 3종 세트라고 하지를 않나……. 주인공은 그런 제빵사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딱 입을 열기 전까지 평범해 보이는 자신과 비슷하다고 여기며 나름의 호기심을 갖는다.

 

그 동질감 내지는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새어머니가 어린 여동생의 속옷에서 발견된 핏자국의 범인을 추궁하며 여동생을 옷걸이로 때리던 그 밤,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여동생의 손가락이 주인공을 향한 그 밤, 새어머니가 부른 경찰들에게 쫓기며 하필 주인공의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한 이유는. 주인공은 베이커리 안으로 뛰어 들어가 제빵사에게 숨겨달라고 했고, 제빵사는 제빵실 안 오븐 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시늉을 하였다. 오븐? 산 채로 통구이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주인공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일단 오븐 안에 들어가야 했다. 타서 죽는다고 해도 현실에 비하면 오븐은 따뜻했으니까.

 

오븐 안으로 들어간 주인공은, 뜻밖의 방을 마주하게 된다. 각종 실험기구와 별자리들이 수놓아진 높은 천장이 있는 마법의 방이었다. 그렇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제빵사는 wizard, 마법사였던 것이다. 주인공은 위저드 베이커리의 온라인 쇼핑몰 관리를 맡는 조건으로 오븐 속에서 잠시 지내는 것을 허락받는다. 사실 이 소설의 본격적인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씁쓸하지만 달콤한, 무겁다가도 따뜻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빵’이라는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친어머니가 주인공을 버리고 간 순간도, 새어머니로 인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을 때도 주인공의 손에는 빵이 들려 있었다. 빵은 그의 힘든 삶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고, 아픈 처지를 상기하게 하는 지긋지긋한 존재였다. 그러나 동시에, 빵은 춥고 배고프고 외로울 때 유일하게 주인공의 눈앞에 놓여 있던 생존 식량이었다. 그리고 빵을 먹을 때만큼은 그 사르르한 질감이, 달콤한 맛이 주인공의 혀를 간질이며 현실을 잊게 했다. 즉, 빵은 주인공에게 아픔이자 생명이자 환영이다.

 

그런 그가 인연을 맺게 되는 이 가게 역시 빵집이다. 이 빵집은 뭔가 다른 빵을 만든다. 재료도 이상하거니와 먹는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부터 시간을 되돌리는 것까지 다양한 효능을 지닌 빵들을 판매한다. 특별한 효능만큼, 제빵사가 말하는 빵의 의미도 유별나다. 바로, 책임이다. 빵을 구매하는 사람은 이 효능이 어디서 어떻게 발휘되든 그것을 책임져야 한다. 주의사항을 미리 고지했음에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빵들을 사고, 사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위저드 베이커리의 빵은 오히려 위로다. 그토록 책임을 강조하는 단칼 같은 제빵사는 주인공에게 대가 없이 천문학적인 비용의 빵을 건넨다. 그리고 새어머니가 주문한 주인공을 향한 저주는, 일부러 효능이 작동하지 않도록 제작한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빵이 건넨 위로는, 이전에 주인공이 가졌던 환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눈앞의 놓인 것들을 부정하고 당장의 달콤함을 쫓게 하는 달콤한 환영과 달리, 위로는 현실에서 조금은 비껴있고 비록 현실의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뎌 볼 수 있는 따스한 희망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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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 간 위저드 베이커리가 주인공에게 낙원이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점장은 시니컬하고, 계속 머무르기에 눈치가 보이며, 빵 한 조각이 고민거리를 해결해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한없이 차가운 현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따뜻하다. 주인공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은 없지만, 적어도 그를 핍박하는 사람은 없다. 위저드 베이커리 식구들의 은근한 배려, 혹은 적당한 감사와 인정만으로도 주인공의 마음을 덥히기는 충분했다.

 

 

 

몇 년이 흘러도 가슴 벅찬 WIZARD BAKERY



위저드 베이커리는 좋아하는 작가의, 좋아하는 책이다. 중학생 때쯤 이 책을 읽고 구병모 작가의 청소년 소설들을 서너 권 더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이 책이 그저 재밌었다. 스토리가 재밌었고, 주인공의 과거 기억과 위저드 베이커리의 일들이 교차해서 나오는 방식 덕분에 흥미가 배가됐고, 결말까지 신선한 방식으로 제시되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최근, 읽을 책들을 한가득 주문해서 쌓아놓고도 이상하게 이 책이 읽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꺼내 보기 시작했는데,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울림이 있었다. 작가의 시니컬한 관점, 상세한 묘사, 신비로운 주제보다도 시니컬한 관점 속에 녹아 있는 따스함과 상세한 묘사로 표현해낸 인물들의 미세한 감정변화, 신비로운 주제를 다뤘음에도 충분히 현실적인 스토리 덕분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버틸 수 있다는 희망’이 회색빛 낱장의 인생을 어떻게 조금 더 선명하게, 서서히 입체적으로 바꾸어나가는지 알게 되었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주인공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어놓지도, 아름다운 경험을 선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느낀 최소한의 온기와 평범한 말 한마디는 주인공이 이전까지는 내지 못했던 용기를 내고, 하지 않았던 말을 입 밖으로 내고, 애써 잊고 있던 것들을 다시 기억하고 마주하게 했다.

   

인생은 고난과 시련의 연속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지 않는 법보다 아픔을 잘 이겨내며 버티기 위한 방법을 배워야 한다. 위저드 베이커리처럼 신비한 공간은 아니더라도, 빵처럼 아주 일상적인 것일지라도 이 글을 모두에게 아픔을 견디게 하는 존재가 있었으면 한다. 또, 그런 존재가 만들어 내는 내면의 변화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조금 더 힘차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만약 지금이 너무 아프고 힘들다면, 당신을 지지해줄 버팀목이 없다면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이 당신에게, 아주 미약하지만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위로를 건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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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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