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행 가는 기분으로: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

글 입력 2022.03.2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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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600페이지가 훌쩍 넘는, 판타지 소설 <듄>이 떠오르는 두께였다. 읽는 데 한참 걸릴 것 같았고, 예상만큼 걸리긴 했다. 분량이 많지 내용의 난이도는 낮다. 게다가 먹을거리 이야기이니, 심리적 장벽은 덜했다.


세상에 식재료가 얼마나 많을까. 5대륙, 155개국의 700가지 음식. 여기엔 육류, 해산물, 음료, 향신료, 과일 등 다양한 포함 된다. 방대한 내용을 한꺼번에 다루니 카테고리화가 중요할 테다. 그래서인지 설명서처럼 매뉴얼로 시작한다. 어떤 기준으로 나누었고, 어떤 나라들을 묶었고. 먹어본 음식에 표시해 보라는 체크 박스도 함께다. 하나도 칠하지 못하고 지나간 챕터가 있는가 하면, V자로 빼곡한 챕터도 있다.


여행을 많이 다녀서는 아니고, 챕터 중 한국이 있다. 고추장, 갈치, 삼계탕, 막걸리, 소주까지. 프랑스인 저자가 한국의 음식을 묘사한 글은 생경하면서도 섬세했다. 널리 알려진 한국의 이미지를 따라 쓴 게 아니고, 실제로 관심을 가졌기에 적을 수 있는 말들이 보였다.

 

이렇듯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쓴 글을 읽으면, 책의 다른 부분 또한 정확하게 알아보고 적었겠구나 싶다. 예를 들면 중앙아시아나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낯설 수밖에 없다.

 

접점도 적고, 무엇보다 여행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그다지 찾지 않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렇게 새로운 식문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재미만 느끼기엔 양이 방대하다. 아는 것이 반절도 되지 않는 책은 금방 관심을 잃기 마련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방향을 바꾸었다. 내가 가고 싶은 나라에서 뭐가 유명한지 훑어보고, 가본 곳은 그때의 음식을 떠올려보기. 특히 후자의 즐거움은 글로 남겨볼 만하다.

 

2018년, 그러니까 벌써 햇수로는 4년 전이다. 10월 경에 영국과 스페인, 포르투갈을 다녀왔다. 영국의 음식은 대부분이 알다시피 피시 앤 칩스와 애프터눈 티 말고는 특색을 잘 못 느꼈다. 워낙 물가가 비싸서 충분히 못 즐긴 탓도 있겠지만. 반면,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는 이런저런 음식을 착실히 맛보고 왔다.

 

그중 책에서도 소개하는 네 가지 음식을 꺼내본다.

 

 

 

1. 바칼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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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라우는 '대구'다. 입이 떡 벌어진 생선이라 하면 그 생김새가 어렴풋이 떠오르겠다. 포르투갈에서 먹은 바칼라우. 잘 익은 감자와 마늘, 그리고 올리브 오일이 기억 남는다. 사실 대구보다 놀랐던 건 감자의 맛이었다. 적당히 익은 폭신한 식감과 짭짤한 맛.


레스토랑을 찾은 시각이 오후 5시 무렵이었다. 한국에선 조금 빠른 저녁인데 포르투갈에서는 늦은 점심쯤이었겠다. 보통 점심을 2시 넘어 먹고, 저녁은 9시 넘어 먹는다니 말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나와 별 다른 차이 없는 시간대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저기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싶기도 하고.

 

 

 

2.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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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하면 아마 바칼라우보다 이게 더 유명할 것이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수녀들이 처음 만들었다는, 계란 노른자를 베이스로 한 빵이다. 까맣게 탄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달달하고 녹진한 맛을 담당한다. 저기에 신선한 오렌지주스까지 마시면 깔끔한 후식이 완성되는 셈이다.

 

 

 

3. 포트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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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오렌지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나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은 특색 있다. 20도 언저리의 다소 높은 도수와 강렬한 단맛. 식후 와인으로 입가심을 한다는데 한 번 마셔보면 그 이유를 이해한다. 안주와 함께 마시기엔 와인 자체가 디저트 같다.


포르투갈은 이렇게 와인 시음이 가능한 와이너리 투어로도 유명한데, 사진의 'CALEM'은 양조장의 이름이다. Calem, Graham, Taylor 이 세 곳이 유명하다. 하나 신기한 건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들이 포르투갈인이 아니라 영국인이라는 점이다.


때는 17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무역 전쟁으로 프랑스 와인을 맛볼 수 없게 된 영국은 다른 와인을 물색했다. 포르투갈에서 영국까지 긴 시간이 필요해서, 제품이 상하지 않도록 선적 전에 소량의 알코올을 넣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단 맛이 강하고 도수가 높은 포트 와인이 탄생한 것이다.


새삼 나라와 나라 간에도 많은 영향이 오갔다. 결국 세상은 사람과 사람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보여주듯이.

 

 

 

4. 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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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스페인의 추로스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김새와는 상당히 다를 테다. 롯데월드에서 팔던 그 바삭바삭한 주름 모양의 얇고 긴 것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달달한 초콜릿에 푹 찍어 먹는 묘미 또한 한국에선 경험하기 어렵다.


속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평범한, 그러나 표면은 기름진 빵을 초콜릿에 찍어 먹는 맛이다. 어찌 보면 보이는 그대로라고 할 수 있겠다. 간단한 아침 식사였다는 말이 딱 걸맞은 간단함과 든든함이다.


*


음식을 눈과 입과 귀로 즐기는 식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식민과 피식민의 역사로, 항공과 바다 육지를 가로지르는 무역으로 음식의 유래와 기원, 때로는 이름까지 마구 섞였다. 미국의 대표 음식 '햄버거'가 함부르크를 가리키는 말이듯.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 세상이 참 넓고도 넓다.


옛 여행의 정취를 그리워하며, 글을 마친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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