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들은 함께여서 즐겁고, 함께여서 자란다 – 아이들은 즐겁다 [영화]

아이들의 시선에서 본 ‘이별’과 ‘가족’
글 입력 2022.03.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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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의

스포일러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1시간은 어른의 10년과 맞먹는다.

내가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유다.”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는 시간이 어른에게는 짧은 시간일지라도 아이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시간이기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어른과 아이가 느끼는 시간의 차이를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어렵겠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어른이 되어 갈수록 이 차이를 절실하게 공감하게 된다. 그만큼 아이들은 더 섬세하게 주변의 것들을 받아들이고 느낀다. 어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아이들에게 어떤 개념들을 설명하거나 숨기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시선으로 그것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꾸미기]포스터 2.jpg

 

 

 

아이들의 시선에서 본 이별과 상실, 그리고 사랑


 

이지원 감독의 영화 <아이들은 즐겁다>는 이러한 아이들의 시선으로 이별을 그린다. 영화 속에서 ‘다이’의 엄마는 아파서 오랫동안 병원에 있고, 아빠는 바빠서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한다. 그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긴 다이는 엄마를 보러 병원에 찾아가기 시작한다. 다이는 생기 없는 병실을 보고 엄마에게 여름에 노란 꽃이 필 거라는 화분 하나를 선물한다.


 

"엄마는 항상 오빠 얘기만 한다?

오빠는 엄마가 집에 없으면 되게 좋아하는데."

"엄마가 집에 없어?"

"아니, 지금은 있어. 근데 옛날에 엄마가 병원에 일주일동안 입원한 적이 있거든.

그때 엄마 되게 보고 싶었는데."

"엄마가 보고싶으면 보러가면 되잖아?"

"할머니가 내가 엄마 보러가면 엄마가 못 쉰대."

"너가 가면 엄마가 못 쉬어?"

"모르겠어. 할머니가 그랬어."

 

 

친구 ‘시아’의 말을 들은 다이는 엄마를 보면 너무 좋으면서도, 본인 때문에 엄마가 더 아픈 건 아닌가 걱정한다. 다이는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도, 엄마가 아파서 속상한 마음도, 꾹꾹 참아낸다. 영화 초반부터 유독 눈에 띄는 다이의 담담한 얼굴은 오히려 이런 여러 가지 감정들을 담아낸다.

 

 

[꾸미기]스틸컷_다이.jpg

 

 

하지만 참고 숨긴다고 해서 다이의 그리움이나 속상함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이는 반 친구들 앞에서 엄마 아빠와 즐거운 주말을 보냈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가지고 놀지 않은 공을 건네 주기 싫다고 고집부리다가 친구와 다투기도 한다. 그리고 다이는 엄마가 먼 곳으로 병원을 옮기며 다이가 선물한 화분을 놓고 갔을 때, 엄마와 영원히 이별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사이 다이의 단짝 친구 중 한 명이었던 ‘유진’은 유일한 보호자였던 할머니와 영원히 이별하며 다른 곳으로 전학가게 되고, 다이와 친구들이 즐거운 추억을 쌓았던 비밀 아지트는 철거된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유진이 말했던 것처럼, 어른들의 사정으로 갑작스레 이별과 상실을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말과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근데 내가 웃기는 얘기 하나 해줄까?

옛날엔 별로 안 친했던 어른들이 갑자기 다 나랑 살고 싶대"

 

 

영화를 보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쉽게 무심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혹은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아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무엇을 숨겨야 할지, 무엇이 아이들에게 더 좋고 나쁜 것인지 결정한다. 그 결정 안에서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은 너무 쉽게 배제되어 버린다. 이러한 어른들의 결정 때문에, 아이들은 이미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숨기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도, 누군가를 보고 싶은 것도 참아야 했다.

 

어쩌면 그렇기에 아이들은 더욱 함께한다. 함께 이별과 상실을 마주하며,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뗄 용기를 얻는다. 영화 후반부, 인천에서 청주의 요양병원까지 다이의 엄마를 보러 가는 먼 길에 다이의 친구들은 함께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목적지까지 함께 가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헤어지며 서로 ‘고마웠다’, ‘즐거웠다’고 말한다.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사이, 아이들은 슬프고 힘들지만 함께여서 즐겁고, 함께여서 자란다.


 

 

아이와 어른은 서로를 지키며 함께 성장한다



아이와 어른은 보는 세상의 높이도, 크기도, 밝기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이렇게 너무 다른 두 존재를 이어주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아이들끼리 뿐만 아니라, 아이와 어른 역시 사랑으로 연결되었을 때 서로를 지키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단지 부모 자식 간의, 가족 간의 사랑은 아니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아이들을 아끼고, 존중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모두 포함된다.

 

다이는 엄마에게 보여주려고 노란 꽃이 활짝 핀 화분을 가지고 친구들과 요양병원으로 향하지만, 병원으로 가는 도중 발견한 꽃밭에 그 꽃을 심어준다. 다이에게 노란 꽃이 활짝 핀 화분은 엄마를 향한 사랑이었고, 언젠가 엄마가 나아 함께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다이의 엄마도 병실에서 이 화분을 보며 다이를 생각하고, 조금 더 힘낼 수 있었다.

 

 

스틸컷 1.jpg


 

그래서 처음에는 그 꽃을 다른 꽃들 사이에 심어주는 다이가 조금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다이의 행동은 다이가 엄마와의 이별이 머지 않았다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또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야, 너의 사랑 덕분에 행복했어.

언젠가 네가 나무로 자라나는 날까지 행복해야 돼"

 

 

다이의 엄마가 세상을 떠나며 다이에게 남긴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엄마는 ‘나무’로 표현된다. 등을 기댈 수 있고, 비를 막아주었던 나무는 야위고 생명력을 잃지만, 나무의 사랑을 받은 아이는 또 다른 든든한 나무로 자라난다.


아이와 어른은 서로 다른 것들을 보며, 다른 방향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한다. 하지만 서로 간직한 사랑을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다면, 어른들이 좀 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섬세한 시선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아이들은 그 사랑과 온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이제 엄마 못 봐. 근데 엄마는 우릴 볼 수 있어."

"어떻게?"

"하늘에서. 그러니까 앞으로 다이가 아빠랑 약속할 게 있어.

다른 거짓말들은 다 괜찮아. 근데 다이가 몸이 아프거나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속상하고 슬플 때, 그 마음을 숨기지 말고 아빠한테 다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

왜냐면 아빠는 그러지 못했거든. 그래서 다이는 꼭 그랬으면 좋겠어.

약속할 수 있어?"

"응"

"그래, 고마워. 엄마 잘 보살펴줘서."

 

 

다이의 아빠가 다이에게 했던 이 말이 어쩌면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고 싶고, 또 해야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면, 애정 어린 마음으로 아이들의 감정과 생각에 더 귀를 기울이고, 좀 더 섬세한 시선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성장하는 세상에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함께여서' 조금은 더 즐거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


 

 

‘정상 가족’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아이들


 

영화 속에는 ‘나쁜 어른’도, ‘나쁜 아이’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른도 아이도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무겁기만 하다. 특히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보니 '돌봄'의 문제가 더 크게 와닿는다. 다이 아빠는 밤낮없이 택배 일을 해도 다이 엄마의 병원비를 낼 때면 걱정이 앞서고, 다이가 있는 집에도 자주 못 들어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이는 혼자 해내고 챙겨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다이와 친구 '재경'이 다툰 후 재경의 엄마를 만나는 자리에서, 다이 아빠는 ‘다이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있다 보니 제가 잘 챙기지 못했다’며 사과를 한다.

 

다이 뿐만 아니라 다이와 ‘삼총사’를 이루는 ‘민호’와 ‘유진’은 이른바 ‘정상 가족’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다. 정확한 사정이 다 나오지는 않지만, 민호는 부모님 대신 형에게 가정통신문에 사인을 받아야 하고, 유진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 유진이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전에는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어른과 함께 살며, 정들었던 친구들을 두고 학교를 옮겨야 했다.

 

 

[꾸미기]스틸컷_아지트.jpg

 

 

학교에서 다이는 반 친구들에게 엄마와 함께 살지 않는 것을 숨긴다. 이는 비단 다이 스스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정상 가족' 프레임은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정당화한다. 다이 엄마 역시 자신이 아프다는 이유로, 다이의 곁에 있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이가 편견의 시선을 마주하고 상처받게 될까봐 걱정한다.


 

"아줌마가 맨날 병원에만 있으니까...

혹시 친구들이 다이를 좀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그게 왜요?"

"저랑 민호는 상관 없어요!"

 


이렇게 그 자체로 편견과 차별을 내재하는 '정상 가족' 프레임은 돌봄의 많은 부분을 '가정' 혹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에게 일임한다. 이는 돌봄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영화 속에서 대부분의 어른들은 섬세하진 않아도 아이들에게 호의적이고, 아이들 역시 악의적인 마음을 품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데도 아이들이 받는 상처와 돌봄의 공백을 막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이 프레임이 너무 깊숙이 자리잡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정상 가족' 프레임을 정면으로 지적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지만, 이 프레임 때문에 상처받고,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다룬다. 그리고 그 아이들도 모두 즐거워야 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이야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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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정상 가족' 프레임은 단순한 이상이나 환상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닥치는 개인적인 슬픔을 모두 막을 순 없겠지만, 아이들의 웃음을 지키는 일을 단지 ‘가족’의 몫으로만 돌리지 않아야 한다. 오랫동안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의 합의 아래 '돌봄'의 책임을 미뤄왔던 우리 사회는 이제 '돌봄'의 가치와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든 그렇지 않든,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기를,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돌봄을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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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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