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느 개의 일생이 우리에게 남긴 것 [영화]

글 입력 2022.03.25 11:0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이 영화는 2020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의 자원봉사 활동을 하다, 내가 맡은 상영관의 상영작으로 그야말로 우연히 만난 영화다. 낯선 제목과 포스터, 그리고 루마니아 감독의 작품. 영화제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살았을 이 영화는 단숨에 내 인생영화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나만 알고 싶지만 더 알려졌으면 하는 보석같은 영화. 내게는 이 영화가 그런 영화이다.

 

 

*

본 영화는 개가 주인공이지만 필자는 고양이와 동거하고 있기에

고양이 집사로서의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개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


 

<환상의 마로나>는 마로나라는 이름의 한 강아지의 일생을 그녀의 시선에서 돌려보는 영화이다.

 

영화 내내 펼쳐지는,  어린아이의 낙서 같기도 한 독특한 그림체의 영상미도 영화의 재미 중 하나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몽환적인 영상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여서, 극장에서 봤을 때는 마치 꿈을 꾸고 나온듯한 느낌이었다.

 

 

5.jpg


 

개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은 이렇게나 다채로운걸까. 하긴, 그들의 시선에서 보는 인간 세상은 신기하고 이상한 것 투성이 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마로나의 보호자였던 마놀, 이스트반, 솔랑주와 그의 가족들은 비교적 일반적인 인간의 형태로 그려지지만, 그 외의 인간들은 인간의 모습이 아닌, 동물이나 다소 기괴한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7.jpg


 

마로나에게는 일생동안 숱하게 보았던 많은 인간들 중에 오직 그녀의 보호자들만이 그에게 소중한, 하나뿐인 존재들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수많은 장미꽃 중에서 어린왕자에게 소중한 장미꽃은 소행성 B612의, 그가 관계 맺었던 그 장미 한 송이였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다.

 

 

KakaoTalk_20220324_213529994.jpg

 

 

집 밖을 나서면 수많은 고양이들이 있지만, 내게는 이 아이들이 가장 특별하다. 같은 코숏 삼색이, 치즈태비 사이에서도 나는 내 고양이를 찾아 낼 자신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고양이.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다.

 

 

“개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거울을 주어 더 이상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 감독의 말 중

 

 

마로나의 내레이션은 몇 번씩이나 인간인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마로나는 인간의 단면을 꼬집기도 하고, 우리가 멋대로 판단하는 개의 마음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의 기분과 마음을 꺼내어놓는다. 그리하여 영화는 우리가 정말로 타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인간은 우리 말을 알 필요가 없지만 우린 인간의 말을 이해해야 해. 자신을 지키려면 인간의 말을 배워라."

 

 

마로나의 엄마가 새끼들에게 준 가르침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종족의 말을 익혀야 한다는 말이 참 아프다. 그건 어찌 보면 폭력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동물들의 언어를 알아듣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

 

아마도 반려동물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안돼”라는 말을 가장 먼저 배워야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영문도 모른 채 인간에게 큰소리로 혼나가며, 이런 행동을 하면 인간이 싫어하는구나, 배웠을 그들을 생각하면 애달프다. 길고양이들은 또한 살아남기 위해 위험한 인간을 잘 구별해내야 할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일은 외국인과 함께 사는 일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도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 우리는 서로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손짓, 발짓(또는 꼬리짓) 그리고 음성을 이용해 소통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한다. 그렇게 함께 사는 날이 늘어갈수록 우리는 서로의 신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함께 사는 반려동물의 신호를 내가 이해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은 마법 같았다. 종족이 다른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은 꽤 근사한 일이다.

 

많은 반려인들은 우리의 반려동물이 “나 아파”라는 말 만은 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우리가 제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너무 늦지 않을 수 있도록. 이런 반려인들의 마음도 애달프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

 

마로나의 첫 번째 보호자인 마놀은 처음 마로나를 집으로 데려와 "아나"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이제 누가 이름을 물어보면, 마놀의 아나라고 대답해.”라고 말한다. 보통 집에 반려동물을 들이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 동물의 “주인”이 된다. 이제는 생명인 동물을 소유할 수는 없고,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라는 단어를 지양하고 “보호자”라고 지칭하자는 인식이 많이 생겨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주인”이라고 불리곤 한다. (나는 주인보다는 보호자를, 보호자보다는 동거인이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집사"라고 불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뭘 가져 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많은 걸 갖게 되자 다 망칠까 봐 겁이 났다. 나만의 보금자리와 나만의 이름과 나만의 마놀을 갖게 되다니.”

 

 

이 대목은  “소유”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한 번도 동물이 인간을 “갖게” 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로나는 지킬 인간과 이름, 보금자리를 갖게 되었음에 행복해한다. 가난하다고 하는 마놀에게 “이 정도만 있어도 나는 부자 개라고요.”라고 대꾸한다. 우리 고양이들도 이렇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세 마리의 나에게 먹을 걸 바치는 인간과, 어디든 누워잘 수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를 가졌다고.

 

 

“그가 공 던지기를 좋아해 공놀이를 했다. 공 쫓는 건 안 좋아해서 내가 했다. 행복한 얼굴만 볼 수 있다면 이 정도쯤이야.”

 

 

두 번째 보호자 이스트반과의 공놀이를 회상하며 나오는 대목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귀엽고 매력적인 내레이션이라 생각하며, 이런 대사를 쓸 수 있을 만큼 개의 마음을 헤아려 본 감독이 존경스럽다. 우리는 개들이 당연히 공놀이나 산책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개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또 정말로 그들이 "내가 인간과 놀아주는 중이다."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른 존재의 입장을 세심하게 고려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는 것은 그만큼의 세상을 넓히는 일이라고 믿는다.

 

 

 

행복은 별 거 아닌 것



 

“개에게 행복이란 인간의 행복과는 다르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게 좋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동물들에게는 인간에게는 없는, 특유의 느긋함이 있다. 고양이들은 수시간을 내리 한자세로 꼼짝않고 낮잠을 즐긴다. 따뜻한 보일러가 틀어지면 금세 골골거리며 뒹굴거린다. 그 느긋함을 종종 부러워하곤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늘 새로운 것을 원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은 이성이라는 것을 얻은 우리의 대가다. 무해한 존재인 그들의 느긋함과 행복이 늘 지속되기를, 그리고 우리가 다만 순간순간의 행복을 충분히 느끼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행복은 작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우유 한 접시

한껏 축인 혀

낮잠

뼈다귀를 묻을 곳

 

행복은 작은 것

아무것도 아닌 것

미소

목소리

마음

뛰어올라 뛰어올라

최대한 높이

영원히 행복한 곳으로

 

- 영화 엔딩크레딧 노래 Happiness is a samll thing 가사

 

 


모두를 위한 동화


 

이 영화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모두 솔랑주였고, 마놀이였고, 이스트반 이었다. 그들이 마로나를 방치하고 그녀에게 상처를 줬음을 쉽게 비난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있는 그들의 모습을 자각하고나면 마냥 비난할 수 만은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익숙함에 속아 우리 반려동물의 소중함을 잊곤 하던가. 우리는 멋대로 그들의 우주가 되고선 그 무게를 너무나 쉽게 가벼이 여겨버리곤 한다. 이는 비단 반려동물과의 관계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모든 캐릭터를 사랑했고 그들에게서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양극성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동시에 선하고 악합니다. 나는 유머와 감정 사이를 오가며 모든 캐릭터를 사랑스럽고 복잡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 감독의 말

 

 

꼭 "행복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은 어쩌면 뻔한 메시지를 꼽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좋은 영화다. 보는 내내 행복했고, 슬펐고, 미안했고, 애틋했다. 누군가의 일생을 지켜본다는 건 그런 것이다.

 

이 영화를 본다면, 아니 적어도 이 글을 읽고 난다면 우리 곁에 있는 반려동물을 한 번 더 쓰다듬어주고, 나와 관계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에 감사하며, 사랑하며, 행복하자. 그것이 우리가 마로나의 일생을 기억하는 방법일 것이다.

 

 

 

김민정 에디터.jpg

 

 

[김민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