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협잡꾼이 아닌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한 삶의 태도 [사람]

김점선 화가의 자서전 <점선뎐>의 가르침
글 입력 2022.03.20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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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처럼 지팡이로도 지탱할 수 없는 뚱뚱한 몸. 그래도 그의 마지막 작품은 모든 걸 바쳐도 아깝지 않은 걸작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걸작을 남겨야 한다.

 

한 번이라도 예술가라고 불린 자라면 그래야 한다. 무언가를 아끼고 무언가를 조심하느라 주춤거리고 그러면서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자는 예술가가 아닌 협잡꾼이다.

 

- 김점선, <점선뎐>, 386 쪽.

 


지난해 겨울 진행했던 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상담센터에서 6개월 간 심리상담을 받으며 변화한 모습, 힘들 때 도움받는 게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내용을 써 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주제도 미리 생각했겠다, 기깔나는 글을 써 보자는 일념하에 호기로이 참가했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연말인 데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성격 탓도 있었으나, 두려움이 컸다. 그렇게 마감이 다가오는데도 한 줄 제대로 못 쓰고 넘어가는 날이 늘어나면서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글을 포기했다.

 

글을 완성하지 못한 제일의 이유- 두려움이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앞서 상담 경험이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사람들이 상담 및 치료를 부끄러워 하지 않고 도움받길 바라며 썼던 글의 배경을 밝혔지만, 여전히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마음 한 켠이 불편하다. 누군가에게 불안하고 자신 없는 모습을 들키는 게 죽기보다 싫기 때문이다.

 

그런 주제를 겪고 그걸 남에게 내비친다면, 나를 오직 그것으로만 판단할 것 같아 무서웠다. '정신 이상', '신경 쇠약', '히스테릭'한 인간으로 보면서 '네가 그럼 그렇지'하고 코웃음 칠까 겁났다. 더욱이 개인적인 경험을 털어놓다 보면 결국 관련된 사람들도 언급할 수밖에 없는데, 가명을 써도 반드시 상처를 주고 말 거라는 공포도 컸다.


하지만, 글을 포기한 이유는 완성하지 못한 이유가 아니다. 그건 다른 데에 있었다. 상담을 통해 '난 최고야, 난 멋져'하며 늘 되뇌이는 방법을 터득했고, 자꾸만 몰아치는 힘든 순간에 견뎌낼 힘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실은 저 깊은 곳에서부터 나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실력 없으며, 쓸모없는 인간이라 생각했다. 나를 믿지 않는 것.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척 하면서 행동하지 않는 것. 그게 내가 내게 벌인 짓이었다.

 

상담은 나를 그따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왔는데, 나는 힘들 때만 잠시 의지할 뿐, 노력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전혀 나아진 게 없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면서 속으로는 겨자씨만큼도 성장하지 못한 나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모습이 미웠다. 그래서 포기했다.

 

변명이라 할지라도, 겉과 속이 다른 글을 쓰는 건 나를 저버리는 짓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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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오늘의 나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쓰다 만 이야기- 결국 포기해버린 이야기를 옅게나마 토해내기로 한 거다. 서론에 인용한 <점선뎐>의 가르침 때문이다.

 

일평생 누구도 나를 예술가라 불러주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내 글을 믿어줘야 했다. 나는 무언가를 아끼고 조심하느라 주춤대면서 바보같이 내가 좋은 글을 쓸 거라 기대했다.

 

협잡꾼. 옳지 않은 방법으로 속이는 짓을 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다시는 남 눈치 살피며 감추고 숨기느라 글로부터 도망치는 짓은 않겠다. 아울러 나를 깎아 먹으며 괴롭히는 짓도 그만두겠다. 그렇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아가겠다. 그게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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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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