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용과 존중만이 난무하는 대화법 [도서]

인터뷰의 세계에 빠져들다
글 입력 2022.03.2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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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타인이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무엇을 통해 살아가는지 지켜보는 것은 꽤 흥미롭다. 그 자체로 하나의 재미가 되며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에 안도와 연대를 느끼기도 한다. 전혀 생각 못 해 본 주제를 접할 수도 있고, 비슷한 생각마저 새삼 색다르게 다가오는 신선함도 느낄 수 있다. 다채로운 모험 같은 이 일은 인터뷰 속에서 활발히 벌어진다.


나에게 인터뷰란 ‘대화’보단 ‘선언’에 가까워 보였다. 연예인이 자기 결과물과 생각을 말하는 창구 혹은 정치인이 묻는 말에 대답만 하는 형식이었다. 이는 한 개인을 탐구하는 것보단 그에게 고정된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런 나에게 인터뷰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은 채널 <문명특급>이었다.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관행을 공식적으로 지양한다. 그저 한 개인이 지금 상태에서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대화’를 통해 오롯이 담아낼 뿐이다. 심지어 재미있게.

 

이후 그 흥미에 쐐기를 박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황선우 작가의 <멋있으면 다 언니>이다. 이 매체들을 통해 인터뷰는 치밀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대상의 현재를 마주하기 위해 세심하게 접근하는 고도의 대화법임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참여자는 암묵적으로 상대를 향한 존중의 마음을 갖고, 이러한 신뢰로 그들은 단단히 결속된다.


이토록 무해하고 즐겁고 탐나는 대화는 내 삶에 없었다. 빠른 호흡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연달아 인터뷰 책 두 권을 읽었다. 이슬아 작가의 <새 마음으로>와 <창작과 농담>이 그것이다. 역시 인터뷰를 사랑하는 이답게 노련하고 재치 있게 대화를 진행했고, 짧은 책 속에 다양한 세계를 녹여냈다.


여기 세 권의 인터뷰 책을 간략히 소개한다. 각 책이 담고 있는 세계는 여성 창작자, 이웃 어른, 여러 창작자로 전부 다르다. 우선 궁금한 대상을 먼저 탐구해보면 좋겠다. 아마 무엇으로 시작하든, 세 권의 책을 읽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멋있으면 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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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으면 다 언니>(이하 <멋언니>)에 등장하는 언니들은 모두 여성이자 창작자다. 용기 있고 부지런한데 능력까지 있다. 꾸준히 행동함으로써 자기 길을 묵묵히, 심지어 잘 닦아나가고 있는 이들의 철학은 다채로우면서도 전부 매력적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틀에 묶이기를 거부하고 자기만의 감정과 이해를 끊임없이 반추한다. 그리고 굳건히, 때론 휘청거리며 현상을 직면하고 받아들인다. 그들은 뽐내지 않아도 끌려갈 수밖에 없는 고혹적인 향을 풍기는 듯하다.


‘나’답게 살기를 원한다면, 특히 창작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이 책이 꼭 도움이 될 것이다. 존재함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응원과 위로가 되는 10명의 언니(저자 황선우 언니를 포함한 수)를 바라보며 자신만의 적절한 시선을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이 글에서는 두 언니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주변의 영향을 잘 받는 편이에요. 축구 좋아하는 사람이랑 함께 있으면 축구를 하려고 하고, 음악 하는 사람이랑 놀다 보니 요즘은 음악도 배우고 있고 ..."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의 PD 김유라는 주변 영향을 잘 받는 사람임을 당당히 드러낸다. 전문화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것저것 적당히 하는' 사람보다 '한 가지라도 뛰어난' 사람이 더 주목받는 듯하다. 나 역시 한 가지에 '집중'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시간이 아깝고 쓸모없지는 않을까 불안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다양한 것에 대한 도전을 단호하게 긍정하는 그의 말과 성취는 고무적이었다. 어느새 본연의 속도와 방향과 방식을 빼앗긴 나를 한 문장 속에서 발견한다.


그처럼 고유성을 찾아내는 노력의 시간을 감내하고 끊임없이 지켜내는 것은 창작자로서 추구해야 하는 역량이기도 하다. 창작은 전혀 새로운 것을 생산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에겐 너무 당연해서 아무것도 아닌 생각과 취향이 누군가에게는 색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 그걸 이해하고 나의 시각으로 콘텐츠화해보는 지점부터 창작은 시작된다.

 

 

"어둠을 빛으로 윤색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면서도 어떻게 회복을 말할 수 있을까?"

 

 

영화 <벌새>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김보라의 언어는 특히 황홀했다. 저자가 ‘아픔을 진실하게 꺼내놓기 때문에 치유에 이르는 벌새’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는 빛과 어둠의 공존을 고려하는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그의 염려로부터 빛과 어둠을 대하는 적절한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빛으로 치환할 수 없는 어둠이 분명 존재하기에, 그를 그대로 내비치는 것은 중요하다. 이 또한 어둠 속 존재들을 향한 존중이다. 다만 회복에 대한 고려 없이, 어둠 자체를 하나의 유흥의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것은 그와 관련된 여러 존재를 묵살시키는 폭력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 속엔 어둠을 임의로 판단해 버리며 그것이 분명히 빛과 연결되어 있음을 부정하는 무례함이 담겨있다.

 

활동 영역과 추구하는 가치, 성격도 너무 달라 공통점이 있을까 하는 그들에게도 한 가지 유사한 경험이 있다. 바로 여성 창작자로서의 고충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와 장소를 넘어 여성을 향한 폄하된 시선과 행위는 곳곳에 박혀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각자의 온도로 치열하게 자신을 발견하고 지켜내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존재 자체는 하나의 승전보이자 뚜렷한 이정표가 된다. 차별이 있음을 생생히 증언하고, 다른 여성들에게 꿈을 꿔도 된다는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들의 이야기가 단지 승리와 생존의 역사로만 남겨지지 않을 날을 응원하고 지지할 뿐이다.

 

 


새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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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언니> 속 인터뷰이였던 이슬아가 인터뷰어로 등장한다. 그는 젊은 작가로서 큰 입지를 쌓아가고 있다. 한 분야에 영향력이 생긴다는 건 어떤 것일까. 때로는 피곤하지만 동시에 이로운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마력일지 모른다. 그 중엔 자기 목소리를 더 멀리 더 크게 들리게 할 수 있는 힘도 포함된다. 그를 활용해 다른 존재의 작은 소리까지도 증폭시킬 때 세상은 더 원활히 순환될 것이다. 그런 존재로서 이슬아 작가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그는 모든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존재이지만 너무 당연하기에 쉽게 잊힌 이웃 어른을 궁금해하고, 발견하고, 직접 다가갔다. 자기 능력만이 성과의 전부가 아니라는 그의 겸손함, 힘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한 그의 부지런함과 영리함이 또 다른 존재를 만날 수 있게 했다. 다섯 이웃 어른이자 노동자인 그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우리 삶은 너무나도 ‘우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책에는 응급실 청소 노동자, 아파트 계단 청소 노동자, 농업인, 인쇄소 기장과 경리, 수선집 사장님과의 만남과 대화가 수록되어있다. 모두의 삶에 스며드는 필수적인 노동임에도 어딘가 이들의 이야기는 낯설다. 힘들고 지워진 노동을 오랜 시간 이어가는 그들은 자칫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다른 노동과 마찬가지로, 단지 희생정신과 숭고함만이 노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자기 일에 느끼는 전문성과 책임감, 그것이 타인에게까지 향한다는 효능감이다. 일종의 경외심은 그들의 행동과 태도의 역사에서 자연히 나타난 부산물에 불과했다. 그들은 한 공간이, 한 식탁이, 한 물건이 새롭게 무언가를 채울 수 있도록 정돈시킨다. 이들의 노동은 어느 행동보다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회복의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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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유기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들의 삶을 통해 노동과 노동이 얼마나 끈질기게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들의 노동이 뒷받침하기에 의사와 간호사와 환자의 노동이 유지될 수 있다. 아파트 속 수많은 사람의 노동이 침해받지 않고 이어질 수 있다. 밥상을 마주하는 이들의 삶이 발전할 수 있다. 책 속에 다양한 언어들이 전달되어 또 다른 생각과 노동을 창조한다. 일터에 적합하게 탈바꿈한 옷이 행동을 윤택하게 한다.


특정한 노동이 다른 노동을 착취해서 유지되는 구조는 굉장히 불안정하고 비합리적이다. 각각의 노동이 동등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더 안정적이고 높은 탑을 쌓아갈 수 있다. 인터뷰이이기 전에 이웃이기도 한 그들을 소개하기 위해, 마치 자식을 소개하는 양육자의 마음으로 언어를 가다듬고 또 가다듬었을 이슬아의 노력이 고스란히 비친다. 내가 알고 있는 성취만이 성취가 아님을, 삶은 훨씬 얽히고설켜 있음을 그들을 통해 깨닫는다.

 

 

 

창작과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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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슬아의 인터뷰 책이며 여러 분야와 세대의 창작자들이 등장한다. 황소윤, 김규진, 장기하, 강말금과 김초희, 오혁이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이중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의 저자인 김규진은 활동 영역으로 보면 인터뷰이 중 가장 일반인에 가까운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이라고 소개하는 그의 태도는 보통의 삶에 가장 큰 균열을 내고 있기도 하다. 그의 부분적인 모습만 봐도 얼마나 삶은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성소수자라고 하면 굉장히 진보적일 것만 같지만, 그는 남 못지않게 ‘보수성’과 ‘정상성’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는 회사라는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어쩌면 보수적인 결합인 결혼까지도 강력히 원한다. 심지어는 ‘공장식 웨딩’까지도.

 

사실 당연한 소망이기도 하다. 그의 태도는 ‘성적 지향’이라는 요소에 지나치게 과잉된 사회의 시선을 드러낸다. 마치 단어에 담긴 이미지가 사람의 전부를 좌지우지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람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 고정된 이미지를 거부하고, 주체로서 자신이 느끼고 원하는 것을 해나가는 그의 태도는 상식적이면서도 전복적이다.


레즈비언으로서 잘사는 방법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물론 청년 레즈비언으로서 어떤 삶의 궤적이 있는지 훌륭히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떻게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길을 잘 안내해주었다.

 

*

 

인터뷰 속 대화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나의 삶에선 어떤 말을 하든지 ‘근데~’로 시작하는 부정의 대답을 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별나다’, ‘이상하다’, ‘아니야!’ 같은 변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 속에서 내가 한 말은 모두 쉽게 무시당하고 결국 남는 건 상대방의 평가였다.


인터뷰이의 대답엔 어떠한 평가의 꼬리표도 달리지 않는다. 순수한 궁금증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가는 말이나, 그 맥락 속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장난기 어린 판단이 있을 뿐이다. 즉 상대에 대한 관용과 수용만이 벌어지고 있는 대화다. 수많은 세계에 대한 존중의 태도 속에서 발생한 질문은 결국 타인을 통과하여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에 당연히 묻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나의 세상은 어떠한가.’


아무리 사소해 보일지라도, 아무리 같은 고민과 생각일지라도 그 무게는 각자의 세상에서 상이한 값으로 측정된다. 무게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고 그것을 오롯이 존중하는 것, 그 시각을 통해 새삼 용기를 얻고 마주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그 속에 있다.


세 권의 책에는 자신과 타인에게 평가와 질책을 받아 달아난 '나'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들이 명확한 언어로 자신을 드러낸다. 자신의 상태를 긍정하고, 그에 맞는 언어를 발견하고 싶다면 꼭 이들의 세계에 스며들어 보기를 바란다.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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