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을 돌에 새기는 일 [사람]

글 입력 2022.03.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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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특별히 감기보다 더 아프거나 몸이 힘들진 않다.

 

이 글을 포스팅하는 오늘이 격리 마지막 날이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우르르 취소하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혼자 지내는 시간도 즐기는 편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게다가 증상도 없는데 학교에 갈 수 없다니 웃음이 삐져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코로나와 함께 ‘질린다’ 병에도 걸렸다. 며칠 동안의 격리 생활을 돌아보니 제일 많이 한 말이 ‘질린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다. 일주일간의 격리가 그렇게 모든 걸 질리게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밥도, 사랑도, 공부도, 영화도, 음악도 지루하기 짝이 없다.

 

무언가 새로운 자극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결국은 지나가버린 과거를 소환했다.


내겐 추억 저장소 역할을 하는 유튜브 계정이 하나 있다. 순전히 나와 내 친구들을 위한 계정이다. 우리가 흘려 보낸 시간을 잊을 즈음에 영상을 완성해서 올리는 아주아주 게으른 계정이다. 마지막으로 올린 영상이 무려 3개월 전이다.

 

이번에 집에 갇혀 있는 동안 만든 영상은 작년 여름의 기억이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보다 훨씬 앳된 우리들의 모습과 선선한 여름 밤, 친구들이 만들어 준 닭고기 토마토 스튜와 전골이 지겨운 시간을 그나마 덜어주었다.


영상을 편집하는 일은 같은 클립을 최소 20번씩은 봐야 되는 지난한 작업이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고, 여러 번 본 화면을 이렇게 붙였다 저렇게 잘랐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과정인데 왜 즐거웠을까.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내가 대리만족 했기 때문이 아닐까.

 

행복한 추억을 눈 앞에 펼쳐보임으로써 기억에 깊게 관여하게 되는 경험은 새로운 자극을 받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이처럼 기억을 추억으로 만드는 과정은 질려버린 일상에 다시금 애정을 갖게 만들어준다. 새로운 자극만이 지루함을 없애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던 일주일이다. 대만 영화계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언젠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젊은 후배들에게 “생각하는 것은 물 위에 글을 쓰는 것과 같다. 그냥 흘러가버린다.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실천하는 건 돌에 글을 새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기억을 시각적으로 남기는 일은 돌에 글을 새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좋았지’라며 흐릿한 인상만 남겨두는 일은 줄이려고 한다. 그냥 흘려보내지 않도록 더 많이 보고 기억하고 쓰고 만들어야겠다.

 

일상을 즐겁게 여기고, 또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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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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