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자극 예능의 소중함 [드라마/예능]

SBS <고막메이트>와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글 입력 2022.02.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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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견디기 힘든 프로그램들이 있다. 매번 진부한 이야기와 조롱을 반복하는 예능들이 그렇다. 대표적으로 MBC <라디오스타>와 SBS <미운우리새끼>, JTBC <아는 형님>이 떠오른다.


이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들은 게스트를,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조롱하는 말을 유머로 사용한다. <라디오스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김구라의 심드렁한 태도에 충분히 공감할 거다. 그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게스트를 당혹스럽게 하는 질문을 골라 던진다.

 

<미운우리새끼>와 <아는 형님>은 ‘중년의 미혼 남성’을 꾸준히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미혼의 상태를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그들의 엉뚱하고 미숙한 행동을 전시하고 웃음거리 삼는다. 동시에 여성 게스트가 출연하면 꼭 한 번씩 ‘짝짓기’ 식의 멘트를 통해 ‘부족한 사람 좀 데려가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 누구도 즐겁지 않은 상황이다.


먹잇감, 혹은 인형처럼 공격당하는 출연자는 물론, 그걸 보는 시청자의 기분도 유쾌하기란 힘들다. 물론 위 예능들은 좋은 편성 시간과 장기간 쌓인 고정 시청층 덕에 괜찮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을 대중에게 ‘사랑받는’ 예능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튜브 클립의 댓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시청자 반응은 늘 비슷하다. 불쾌감을 주는 요소는 시대에 맞춰 차차 배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피드백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큰 변화는 없다. 제작진이 현재의 안정적인 성과에 만족하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꾸준한 불쾌함을 참을 수 없던 나는 자극적인 조롱이 난무하는 예능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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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여러 저자극 예능을 찾아보았다. tvN <꽃보다 청춘>을 시작으로 각종 자연 힐링 프로그램이 유행하고 있다. <삼시세끼>, <바퀴달린 집>, <어쩌다 사장>은 모두 친한 친구 간의 편안한 대화와 여유로운 하루를 보여주는 예능이다. 반면 큰 행동 없이 오로지 대화로 재미를 끌어내는 예능도 많다. SBS <고막메이트>와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이다.


이 세 가지 스튜디오 예능은 대화 위주로 진행되어 화면을 보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하다. 덕분에 간단히 일을 하면서도 즐길 수 있으며, 시각적인 피로도 덜하다. 적은 수의 출연자가 앉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들은 공격적인 농담이나 조롱 없이도 충분히 공감 가능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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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고막메이트>는 유튜브 ‘방언니’ 채널의 고민 상담 프로그램이다. 아주 흔한 기획임에도 <고막메이트>는 탄탄한 팬층을 유지하며 시즌3까지 방영할 수 있었다. 사실 모든 고민 상담 프로그램에 들어오는 사연은 늘 비슷하다. 그래서 출연자와 대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 <고막메이트>의 진가가 발휘된다.


<고막메이트>의 출연자들은 언제나 ‘심심하지만 깊은’ 조언을 해준다. 이런 조언은 네 명의 출연진이 예능에 큰 욕심이 없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고민 상담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위한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답변은 의외로 흔하다. 그런 답변에서 출연자의 활약 욕심이나, 고집스러운 삶의 태도가 드러난다. 그러나 <고막메이트>의 고정 출연자 4인은 우스운 예능 멘트보다 사연자의 고민에 먼저 집중한다. 그들은 여유로운 태도로 여러 시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서로를 존중하며 생각을 나눈다.


<고막메이트>는 사연자를 ‘막둥이’라고 부른다. 사연을 보낸 이가 조금 미숙하더라도 출연자들은 절대 그를 비난하지 않고, 늘 ‘너를 응원한다’라는 든든한 메시지까지 남겨준다. <고막메이트>로 향하는 사연이 점점 더 솔직해지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비난 없는 대화 덕에 사연을 보내지 않은 시청자들도 몰입해 위안을 느끼며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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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의 형식 역시 복잡하지 않다. 작은 옥탑방에 둘러앉아 10개의 퀴즈를 모두 맞추면 탈출하는 형식이다. 파일럿 프로그램일 당시에는 ‘탈출’에 초점을 맞춰 긴박한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점차 문제 사이의 여유로운 대화를 즐기는 형식으로 변모했다.


게스트의 근황을 전하고, 간혹 개인기를 시키는 모습은 다소 뻔하기도 하다. 그러나 출연자에게 큰 부담을 주거나, 무안한 분위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퀴즈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출연자가 아주 하찮은 개인기를 선보이고 다 같이 웃어넘기는 순간이 있는데, 그런 짧은 순간 그 작은 옥탑방의 온기가 화면 밖 나에게도 전달된다.


퀴즈는 주로 SNS 이슈나 게스트와 관련한 업계의 소소한 정보가 출제된다. 함께 머리를 맞대면 충분히 풀 수 있는 수준이다. 퀴즈의 답변을 거의 확신할 때 게스트에게 문제를 맞추어 보라며 정답을 알려주는 장면들도 좋다. ‘정답입니다’라는 말에 다 같이 환호하는 장면은 몇 번을 더 봐도 지겹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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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누구나 인정할만한 대표적인 저자극 토크 예능이다. <유퀴즈>를 보다 보면 출연자와 제작진이 모두 단어나 대화의 주제를 신중하게 선택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소방공무원이나 법의학자, 여성질환 전문의 등 종종 까다로운 업계의 전문가들이 출연할 때에 단어의 오용 등을 특히 경계한다. 이런 확인과 검열 절차 덕에 <유퀴즈>는 수많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논란거리를 만든 적이 없다.


<유퀴즈>는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된 인터뷰 프로그램이기에 캐스팅이 가장 중요하다. 유재석의 평판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 덕에 거리에서 인터뷰이를 모집할 때도 많은 이들이 흔쾌히 응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퀴즈>가 전하는 따뜻한 용기와 위로의 메시지는 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유퀴즈>는 오랜 시간 무해한 웃음으로 애청자를 모았다. 펜데믹 탓에 기존의 큰 특징을 잃어버렸음에도 그간 쌓아온 믿음을 기반으로 캐스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꾸준히 사랑받는 예능으로 방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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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웃음 포인트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말을 어눌하게 하는 걸 개그로 삼던 예능은 모두 사라졌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런 모습에 박장대소했던 대중은 점차 눈살을 찌푸리더니, 본격적으로 불쾌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진작에 ‘보기 싫다’라고 주장했던 이들에게 동조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비로소 예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 글의 맨 앞에 언급한 세 개의 프로그램은 현재 가장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들이다. 그러나 같은 모습으로 영원히 대중의 웃음과 공감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은 ‘쉬운 농담거리’로 여겨지는 ‘조롱’이 더 이상 전혀 웃기지 않은 때가 오면 방송국은 새로운 웃음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담백한 저자극 예능을 즐기려고 한다. 새로운 웃음을 탐색하는 이들이 하나둘 많아질 때 ‘심심하고 재밌는’ 예능을 추천하고 싶다. 다들 보고 웃는 예능에 웃지 않아도 괜찮다. 곧 당신이 보는 예능이 가장 재미있어지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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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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