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온 동네가 동물원이 되는 상상, 아니 현실 - 이상한 동물원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이상한 하루』의 두 번째 이야기
글 입력 2022.02.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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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북적이던 동물원이 한산합니다.

 

 

 

그림책 세계로 접속, ON



최근 10년 새 성인 독자 사이에서 그림책을 매개로 어린 시절과 조우하며 위로받고 나아가 사회 내에도 올바른 어린이 인식을 형성하려는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림책의 독자란 어린이뿐만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림책 기획자 천상현은 어린이 문화 비평지 『창비 어린이』를 통해 ‘그림책은 문학으로서도 그림으로서도 고유한 미학을 갖는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어린이를 위한 문학의 하위 장르에서 문학과 그림이 상호작용하는 예술 장르로, 그림책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변화를 거듭해 온 데엔 그동안의 좋은 그림책 작품들이 기여한 바가 클 것이다. 어린이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이야기, 상상함으로써 현실을 돌파하는 태도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야기는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로 위로와 깨달음을 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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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연수의 『이상한 동물원』은 비룡소 어린이 문학상 황금도깨비상의 2019년 수상작 『이상한 하루』의 두 번째 이야기다. 『이상한 하루』와 『이상한 동물원』은 각각 비룡소의 66번째와 72번째 창작 그림책으로 출간되었다.

 

‘수족관을 탈출한 물고기’라는 제목으로 응모되었던 『이상한 하루』에 대해 황금도깨비상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이수지 그림책 작가와 이지원 그림책 기획자는 ‘장면의 묘사가 탁월하고, 자칫 평범해질 수 있는 숨은그림찾기 형식을 적절한 강약으로 마지막 장까지 흥미롭게 끌고 간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정확하고 꼼꼼한 그림과 독자들에게 맡기는 상상의 여지 사이의 균형이 뛰어났’다고 평했다.

 

밀도 높은 그림이 단연 돋보인다. 작가 연수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그림을 그리기 전 충분한 사전 조사를 통해 실제의 고유한 형태를 익힌 다음, 연필 선으로 구도를 잡고 펜으로 주 요소의 외각 라인을 그린 뒤 얇은 펜선으로 안과 밖을 오밀조밀하게 채우는 방식으로 드로잉 작업을 진행한다. 완성된 스케치는 컴퓨터로 옮겨 다양한 색과 질감을 입혀 보는 채색 작업을 통해 풍성한 색감을 갖춘다.

 

세밀한 관찰과 작업을 거친 완성도 높은 그림은 비단 시각적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림자에 깃든 빛의 존재감,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자연이 말하는 바람의 움직임, 풍경의 온도와 습도를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독자의 실제 삶 곳곳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 독자가 그림책 세계에 접속하는 스위치를 ON 하는 경로 중 하나인 셈이다.

 

 

 

현실과 환상을 ON & OFF


 

재미있는 놀잇감 같은 책이기도 하다. 2년 가까이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과 그림책을 함께 읽었다. 나는 그들과의 만남에 앞서 매번 약간의 긴장감을 경험했는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독서 멘토로서의 사명감에서 비롯된 동시에 그만큼의 각오에 미치지 못하는 멘토로서 어찌할 줄 몰랐던 두려움 같은 감정이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것을 보고 생각한다고 느꼈다.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넘기며 글, 그러니까 내용을 내가 소리 내어 읽는 동안 그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화면의 중심부터 가장자리까지 그림 곳곳을 특별한 규칙과 질서 없이 관찰했다. 짧은 호흡의 그림책을 단숨에 ‘해치우느라’ 바빴던 나와는 달리, 책 속에 머무르고 싶은 만큼 머물렀고 손톱 정도의 크기로 그려진 작은 인물을 찾아 질문을 던졌으며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문득 이런 것들이 그림책의 진가인 게 아닌지 생각했다.

 

같은 맥락으로 『이상한 동물원』이야말로 읽어도 읽어도 끝나지 않을 그림책이다. 가장 먼저 놀이를 즐길 수 있다. 표지의 이미지에는 비밀이 있다. ‘늘 북적이던 동물원이 한산합니다’라는 첫 문장으로 표지 속 동물원 풍경이 텅 비어있을 거라고 추측해 쉽게 지나칠지도 모르지만, 동물들은 탈출을 감행하려는 듯 어둠 속에 은밀히 몸을 숨기고 있다. 어린이 독자들의 숨은그림찾기 실력이 만만하지 않은 만큼 동물들의 위장 능력 또한 수준급이다. 놀이는 본문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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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로 스위치를 ON 했다면, 그림 속 현실에 환상이 절묘하게 끼어드는 순간을 포착하면서 작품에 대한 몰입감이 더해진다. 분홍 연꽃 밭과 자연스레 한 몸이 된 플라멩코, 평범해 보이는 기차의 건널목 풍경 가운데 차단기인 듯 차단기 아닌 차단기 같은 기린. 현실과 환상은 균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한 몸이 되어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낸다.

 

흔히 현실과 환상은 서로의 대척점에 놓여 결코 연결될 수 없는 관계로 여겨진다. 택일해야 하는 관계. 하지만 경계를 지우고 들여다보면 현실과 환상 또는 상상은 나뉘지 않음을 우리는 경험적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현실 속에 상상이 있고 상상은 현실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둘은 힘을 합쳐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동화 『비밀의 무게』의 저자 심순은 이렇게 말했다. ‘현실은 상상과 섞인 모습이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을걸요.’

 

『이상한 동물원』은 어디서부터가 꿈이며 또 생시인지 알 수 없다는 노래 가사를 떠오르게 한다. 또 구별하지 않을 때 새로운 이야기가 보이고 들릴 것이다. 정교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이야기 속 환상은 조화를 이루면서 일상에 대한 통찰을 길어 올린다.

 

 

 

네버랜드에서 온 동물들



‘동물원’과 ‘동물’ 소재를 통해 동물원의 존폐 논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고기들이 수족관을 탈출하며 시작되는 『이상한 하루』와 마찬가지로, 『이상한 동물원』 또한 텅 빈 동물원 앞 어린이가 안쪽을 향해 거기 누구 없냐는 듯 손을 흔드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독자는 이어지는 장면들을 통해 도심 곳곳에서 동물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동물들의 일탈’이라는 표현에는 한 톨의 의심도 없는지 꼬집어 묻듯, 동물들은 인간과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빨래를 건조 중인 옥상 위 얼룩말, 매일 만나는 이웃처럼 함께 수영하는 인간과 수달, 한가로이 주택가를 내려다보는 호랑이. ‘본래’ 동물이 있어야 할 곳이란 어디인지, 인간이 내린 답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 기인하여 동식물과 곤충의 생존권을 빼앗는 답은 아닌지 성찰해 볼 수 있다.


 

노란색으로 물든 여름 바람이

모두를 데리고

자유롭게 자유롭게 달려갑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입니다.

 

 

『이상한 하루』와 『이상한 동물원』 두 이야기의 결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떠난다. 『이상한 하루』의 물고기들은 물속인지 하늘 위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공간을 가로질러 비행한다. 『이상한 동물원』의 동물들은 네버랜드 행의 무궁화호 열차에 탑승한다. ‘노란색으로 물든 여름 바람이 모두를 데리고 자유롭게 자유롭게 달려’간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어느 들판, 날은 저문지 오래다. 열차는 멈추었고, 무궁화호 안에서 바라보는 창 너머로 신비로운 느낌을 풍기는 보랏빛 열차가 있다. 마찬가지로 네버랜드행. 동물들은 이미 모두 탑승을 완료한 듯하다. 은은한 실루엣들에서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이들의 설렘이 느껴진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입니다.’ 동물들은 어디로 갈까. 동물들의 집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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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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