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쟁 속에서 부를 축적하는 법, 신신방 [공연]

글 입력 2022.02.24 11:1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신신방 포스터.jpg

 

 

돈을 벌기 시작하며 이전과 다르게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에 돈이 따라올 줄 알았는데, 어느새 돈이 나를 쫓는 건지 내가 돈을 쫓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 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마음보다 현실적인 숫자에 더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웃으며 씁쓸히 넘기고 싶지만 꿈 생각으로만 머리가 가득 찼던 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직업으로 자아실현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경제적 자유를 앞당겨 얻기 위해 온갖 주식과 펀드와 재테크 지식까지 습득하고 부업을 겸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직장인들을 보며 이 생각은 더 깊어진다. 그래, 나도 시작해야 하는데. 일단 돈을 모으고 눈으로 확인하면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목적이나 흥미가 없이 시작하면 안 될 일이라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대체 돈이란 건 뭐길래 이렇게 사람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건지.

 

*** 

 

남만주 철도가 대련으로 이어져 조선 국경을 통해 경성까지 이어지던 드넓은 벌판. 그 먼지서린 만주엔 방직공장 신신방이 있다.

 

때는 1945년. 거대한 세계 대전의 축이 일본의 패전으로 기울 무렵, 일본 군복을 만들어 납품하는 신신방에도 점점 위기가 찾아온다. 돈과 성공을 쫓아 기꺼이 군납공장에 몸을 내던진 그들은 이제 조선인도 일본인도 될 수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쌓여가는 군복과 빚더미를 청산해야만 한다.

 

2021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작인 연극 <신신방>이 오는 2월 12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해당 공연은, 지난해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 김도영과 특유의 위트 있는 연출로 많은 주목을 받아온 <국물 있사옵니다>, <발가락 육상천재>의 연출가 서충식이 함께한, 극단 실한의 신작이다.

 

1945년, 대전의 축은 일본의 패전으로 기우는 때. 만추리아 드림을 품고 만주로 향한 공장과 자본가들은 서서히 줄도산의 처지로 내몰리고, 일본 군복을 만들어 납품하던 군납공장 신신방도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는 상황에 처한다. 전쟁 한 철 보고 하는 장사, 전쟁을 통해 큰 이득을 얻고, 떼돈을 가져다 줄 것만 같던 전쟁이 끝나가며, 그들이 꿈꾸었던 만몽은 무엇일까. 신신방은 전쟁을 배경으로 돈의 가치와 군납공장에 몸을 내던진 이들을 그린다.

 

극단 실한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과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문제의 제기의 필요성을 가지고, [레라미 프로젝트], [혼마라비해?], [낯선 이], [Mad베젠꼬] 등 사회를 구성하는 동시대의 다양한 목소리를 무대에 옮겨오고 있다.


 

 

부는 곧 충성의 맹세


  

여기, 경성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 만주땅을 사들여 군복 공장을 차린 사람들이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만몽'을 꿈꾸며 만주에서는 뭐든 자신이 원하는 부를 축적할 수 있으리라 희망에 차 있었던 대담한 사업가들이었다. 그들은 본래 조선인이었으나 나라를 빼앗긴 뒤로는 일본에 충성하며, 거지 반은 일본인이 되었다. 총독부에 잘 보여 흠 잡히지 않으려 노력했고, 거래를 따 오기 위해 또다른 조선인 출신의 사업가에게 공을 들이는 등 숱한 노력으로 공장을 운영했다.



CLR#16_0740.jpg

2021 창작산실 / ⓒ 유경오

 

 

시대에 따라 국적을 바꾸고 사업을 하기 위해 윗선에 처세를 잘 하는 모습은 그저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 사업가처럼 보였다. 일제강점기임을 고려하지 않고 본다면 그들이 처한 시대를 잘 이용한 똑똑한 청년들이었다. 충성할 곳이 없다면 부를 얻을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으로만 보았을 때는, 마냥 그들을 비난하며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값싸게 고용한 또다른 실향민 조선인들의 모습을 볼 때는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상황을 자초한 지배층의 욕심과 무능력, 전쟁이라는 사회적 특수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잃은 것은 단지 돈 뿐이 아니었기에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하게 저려왔다.




전쟁의 기쁨과 슬픔



전쟁을 통해 소수는 부를 얻었으나 다수는 부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잃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몇년 전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 사람, 어릴 적부터 떠돌이 신세가 되어 어디서라도 새 출발을 하고 싶은 사람,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사람.

 

군복 공장을 차린 사업가들도 연달아 발생한 전쟁과 폭격으로 한때 특수를 맞이하는 듯했지만, 전쟁이라는 같은 이유로 이내 물량을 공급할 곳이 사라진다. 잠깐 부자가 될 희망에 부풀었던 그들은 서로를 더이상 신뢰하지 못하고 해일같이 늘어난 빚더미에 좌절하며 무너진다.

 

시대는 이제 그들의 반대편에 서서 실패에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길 독촉했다. 각자 지니고 있던 내면의 결핍은 수면으로 떠올라 서로를 공격하고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타인의 불행으로 잠시나마 쌓아 올렸던 부는 그들을 떠나 허공에 흩뿌려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흐르자, 관객인 나는 누구든 탓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돈이 같은 인간을 옥죄고 얽매야 했을까. 남들보다 우월해지고픈 개인의 욕망 때문이었을까, 아픈 시대가 낳은 나라 잃은 이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CLR#16_0883.jpg

2021 창작산실 / ⓒ 유경오

 

 

그들은 당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군복 공장을 선택하여, 국의 주권을 빼앗은 나라에 전쟁물자를 공급했고 그 전쟁 속에서 피폐해져 가는 다른 조선인들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기회주의적 선택이었다는 윤리적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또한,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한철 장사일 수밖에 없었던 군복 판매에 의존했기에 공장의 부도는 언제든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와, 침략 국가의 욕망, 개인의 생존 본능이 만나 빚어낸 비극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경제적 성공은 결코 좋은 방법을 통한 결과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가? 윤리적이고 이타적인 태도로 돈을 쫓고 있는가? 어쩌면 더한 배금주의에 빠지게 된 것은 아닌가? 경제적 상황이 훨씬 좋아지며 대다수가 가난에서 벗어나자 이제는 누가 더 부를 축적하였는가에 대해 우리는 경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부를 기준으로 사회와 사람도 자연스레 나뉘게 되었다.


부가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거나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경제적 여유를 얻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가진 자산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경제적 부의 덧없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매일의 노력으로 정직하게 버는 돈의 액수는 적겠지만 적어도 그 돈의 힘은 강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편법과 배신이 시장을 지배하기에는 아직 성실하고 인간성을 잃지 않은 정직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어보며.



[차소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