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악을 통해 정의하는 집의 의미 [음악]

각자의 시선으로 정립된 집이라는 공간
글 입력 2022.02.2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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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참 자주 듣는다. 어딘가로 이동할 때나, 운동을 할 때나, 심지어는 집중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음악은 언제나 함께였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늘 이어폰과 함께였는데, 이렇게 음악을 자주 듣는 이유는 어떠한 소리도 없이 아티스트의 목소리와 멜로디에 귀 기울이며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데에서 오는 평온함 때문이었다. 음악의 장르가 소위 누군가에겐 시끄럽다고 들릴 수 있는 록이나 일렉트로닉 뮤직이어도 상관없었다. 노래가 내 귀에 들리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그 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몰입에서 오는 묘한 평온함이 나에게 많이 와닿았지 않았다 싶다.


그러다 최근 문득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듣다, 유독 와닿는 가사가 있어 특정 부분을 곱씹었던 적이 있다. 밴드 ‘넬’의 ‘Home’이라는 노래인데, 인상깊었던 가사는 다음과 같다.


 

Home

You were my home

잠 못 들던 내게

꿈을 꾸게 하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노래는 집(Home)을 주제로 하여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노래이다. 하지만 유독 그날은 가사의 전체적인 맥락보다는 저 부분만 와닿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집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하나의 ‘대상’으로 정의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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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에서 집은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고, 움츠린 마음을 당당하게 하고, 나아가 기억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하는 사람과 같은 대상으로 묘사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거주하기 위해 지은 건물인데, 이 곡에서는 거주가 가능하다는 속성 이외에 다른 관념이 부여된 것이겠다. 이렇게 음악 가사, 혹은 문학작품 등에서 익숙한 대상을 새롭게 정의하는 일은 꽤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대상에 대해 새로운 관점과 숨은 의미를 제시하는 부분은 나에게 꽤나 많은 흥미를 불러 일으켰고, 나아가 다른 아티스트들이 정의한 ‘집’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사소한 해프닝에서 출발한 고찰을 토대로, 위에 서술한 곡 이외에 집에 대해 각자의 시선으로 정의하고 있는 여러 곡, 혹은 앨범을 소개하고자 한다.

 

 

 

집, 애틋함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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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소개할 노래는 악동뮤지션의 <집에 돌아오는 길>이다. 개인적으로 악동뮤지션은 일상적인 소재를 자신들만의 감성으로 새롭게, 재치있게 풀어내는 힘이 있는 아티스트라 생각하고 있다. <시간과 낙엽>이나 <지하철에서>와 같은 곡은 제목에서부터 우리가 흔히 경험하고 생각하는 소재들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 곡 또한 마찬가지로 가사를 듣다 보면 시골과 같이 향토적인 곳을 배경으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이 곡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사에 완전히 이입할 수 있는 단어와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루를 끝내고 나오는 한숨 

아침에게 빌린 희망은 다시 반품

어찌 됐든 간 이래저래 

뒤로 넘어 간 해 머릴 보며

대충 재 보는 집까지의 거리

 

 

이러한 가사는 가사 내부에서 인물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듣는 사람들이 자신과 가사를 동일시하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이렇게 몰입된 청자는 ‘가로등이 줄지어 / 굽이 진 벽돌담이 / 날 조이는 골목길을 지나’와 같은 가사를 거치며 어렸을 적 시골집으로 걸어가는 장면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이 곡은 집을 각자의 경험과 결부시켜 감정을 환기하는 공간으로 묘사하였다. 가사를 통해 개인과 공간이 연결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느끼는 애틋함은 과거 추억으로 잠겨 있던 기억을 불러내기에 충분하다.


 

 

집, 지양점에서 지향점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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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곡은 힙합 장르로, 쿤디판다의 <집>이다. 이 노래는 곡과 더불어 앨범 전체적으로도 살펴볼 것이 많은데, 그것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와 가사가 가지는 유기성 때문이다. 쿤디판다가 정의하는 집의 의미를 다루기 전, 앨범이 내포하고 있는 전체적인 스토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보면 자신만의 성공과 행복의 기준을 정립하는 과정 속에 담겨 있는 에피소드의 모음집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앨범 제목인 ‘가로사옥’에서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는데, 가로로 방이 늘어선 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풀어 설명하면, 방은 각각의 에피소드이고 그 방들이 모여 하나의 집, 즉 삶이 된다는 것이겠다.


이 앨범에 마지막으로 수록된 ‘집’에서 주목해 볼 가사는 다음과 같다.


 

이리 지친 건

내가 편히 쉴 공간을

찾는 과정에서가 아니고

내게 허락된 나라는 공간에

내가 쉬고 싶지 않았다는 것

 


여기서 ‘편히 쉴 공간’은 맥락상 집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집은 나만의 공간으로 인식되며,때문에 거주하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쿤디판다는 이런 공간에서 ‘내게 허락된 나라는 공간에 내가 쉬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편히 쉴 수 있는 집과 같은 공간을 찾지 못해 지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놓인 집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기에 지쳤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곡 안의 ‘집’은 더 이상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보단 그의 사고방식을 토대로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 즉 자신이 부정하고 지양하는 것으로 정의된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다음 가사를 통해 보다 확실히 청자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 방을 나와 내 마음을 닫아

헤매었나 돌아다니기만

나를 쫓아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집으로 떠나

 


여기서 주목해보면 좋을 가사는 ‘내 마음을 닫아’와 ‘나를 쫓아 어딘지도 모르겠지만’이라고 생각한다. 방문을 닫는 것과 같이 마음을 닫는다고 표현했고, 어딘지 알 수는 없으나 나를 쫓아 다시 집으로 떠난다는 부분은 단순히 집을 거주하는 공간으로 보는 관점에서 나아간 가사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부분까지 가사 속 인물은 처음에 스스로에게 불만족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집을 부정하며 방황하는 과정 속에 있었지만,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가사 속 인물은 왜 다시 그토록 부정하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을까에 대한 부분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2절의 벌스(Verse)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황이 뭐야 지금 나처럼

지금 나를 인정을 한다면 말야

난 또 다시 방에 갇히고

빠져나오겠지 미리 정해져 있는 방향

앞으로 예정된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아

어느 안식처를 찾기보단

비좁아도 내가 바로 내가 지은 나의 집이었다는 것을 알아

어서 와

 


앞선 화자와 다르게, 과정을 지나며 그는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겪은 실패, 이상을 이루지 못해 경험한 좌절 등은 방황의 원인이 되었고 그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불만족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는 주체 또한 나였고, 자신이 채우지 못한 결핍도 나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발견한 화자는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안식처를 찾기’보다 비좁아도 자신의 집을 택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화자가 지양했던 집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거치며 ‘지향점’으로 변모하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뻭빽한 내용을 거치며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노래는 앨범을 전체적으로 해석하게 된다면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앞선 악동뮤지션의 곡이 집이 공간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때 환기할 수 있는 느낌에 집중했다면, 쿤디판다의 <집>은 아티스트의 자전적인 내용을 토대로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집의 공간적 속성에서 나아가 지향점이라는 보다 개인적인 사고과정을 토대로 정의된 하나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음악, 또 다른 집이 되다



이외에도 집을 소재로 다루는 여러 곡을 들어보며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지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분명 집은 공간적으로 생각했을 때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고, 나를 보호해주는 가장 1차적인 공간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 집에 대해 나만의 사고과정으로 다른 속성을 부여해본다면, 음악 자체가 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으로 나를 쉬게 할 수 있는 곳은 집이 맞지만, 심리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나를 쉬게 만들고 편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들어온 음악이기 때문이다. 흔히 생각하는 의미와는 비교적 동떨어져 있긴 하지만, 집이 가지는 속성과 여러 생각, 혹은 경험을 연관지어 본다면 충분히 새롭게 집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또한 그동안 생각해왔던 집의 원론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새롭게 자신만의 ‘집’을 정의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데 꽤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정하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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