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의 노예가 된 이들 - 연극 '신신방'

글 입력 2022.02.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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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잔혹함을 진실로 깨닫는 때는 모든 돈을 잃고 무너진 순간도, 사랑하는 이들과 괴리되어 혼자가 된 순간도, 목숨이 경각에 달려 헐떡대는 순간도 아니다.

 

누군가를 끝까지 옥죄고 싶다면 그가 깊이 원하는 것을 꾸준히 보여주되 절대 내어주지는 않아야 한다. 꿈을 꾸고, 그를 이루기 위한 모든 품을 다하게 놔두되 손끝에 겨우 꿈의 온기가 닿았을 때 그것을 재빨리 뒤로 물러야만 한다. 꿈 꾸는 자를 꿈의 노예로 만들기란 이토록 쉽다. 세상의 잔혹함은, 필시 꿈은 꿈으로밖에 머무를 수 없음을 아프게 깨닫는 순간에서야 실감된다.

 

부자가 되는 꿈, 출생의 한계를 뛰어넘는 꿈, 그리운 아들과 재회하는 꿈, 사랑하는 이와 평생을 함께 하고자 하는 꿈… 연극 <신신방>은 1945년 일제강점기 말 만주를 배경으로, 당시 조선인들의 일명 '꿈'이라는 것들이 꿈이 아닌 오욕과 욕망의 착종으로 끝맺었음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연극 <신신방>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의 신작이자, 사회 틈틈이에 둥지를 튼 다양한 형태의 삶들을 꾸준히 발화하는 극단 실한의 작품이다. <신신방> 역시 극단 실한의 정신에 따라 각자의 꿈을 딛고 만주의 황량함을 견뎌내는 다양한 계층의 조선인들을 흥미롭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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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방>은 인터미션 15분 포함, 총 러닝타임이 3시간을 훌쩍 넘는 공연이다. 고백하자면 극장에 닿아서야 이를 인지한 탓에 과연 3시간의 연극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미리 밝히자면― 연극 <신신방>은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력,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입체적인 인물들, 무대 공간의 인상적인 사용,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다양한 리듬의 연출, 관객이 쉽게 납득할만 한 주제 의식의 발화, 마침내 유머 포인트까지 놓치지 않음으로써 몰입감을 더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고루한 표현이지만 3시간의 러닝타임이 마치 3분 같았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 테다.

 

우리에게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개념이 익숙하듯, <신신방>의 배경이 되는 1945년은 남만주 철도 개통으로 조선과 만주가 이어져 많은 이들이 '만주몽'을 꾸며 이주해가던 때였다. '영란' 역시 마찬가지이다. 먹고 살 길을 찾아 만주로 향하는 이들 중에는 그러나 만주에 가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식민지 백성들의 기대가 헛된 것임을 설파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는 얼마 가지 못해 기차역 플랫폼에서 도망치다 총살 당하고 만다.

 

영란은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중년의 여성으로, 창씨개명을 거부한 탓에 일본군에 의해 얼굴에 큰 흉을 얻어 죄인의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간다. 그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신신방'이라 불리는 만주의 방직 공장. 그곳은 군복을 만들어 일본군에게 납품하는 공장으로, 조선인으로 태어났으나 조선인으로서의 그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4명의 인물(가네다, 유지, 미나미, 고겡)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영란은 그곳에서 '방글이'와 함께 식모살이를 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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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창작산실 ©유경오

 

 

그러나 1945년 3월부터 8월까지, 반년도 안 되는 이 시간동안 신신방은 크게 기울고 관련 인물들 역시 점차 절망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고, 기세 좋게 이곳저곳에서 전쟁을 일으키며 신신방으로부터 방대한 양의 군복 납품을 요하던 일본군의 패색은 날이 갈수록 짙어져만 갔다. 자연히 신신방은 물론 만주의 수많은 군납 공장의 창고에는 팔리지 않은 물품들이 먼지를 입으며 산적해가기 시작한다. 신신방의 경영인들은 막대한 양의 빛을 떠안고 절망하게 된다.

 

영란은 관찰자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공장을 들락날락하며 분노하고 울부짖는 4명의 경연인을 묵묵히 지켜보며 살림을 도맡는다. 달빛 밝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들에게 독백하는 영란을 삶에 붙들어 놓는 것은 '엄마'로서의 정체성이다. 인물들 중 유일하게 돈과 부로 인한 성공보다는 사랑하는 이와의 재회만을 꿈꾸는 이로, 영란이 노동에 임하는 태도 역시 신신방 경영인들과는 달리 보다 인간적으로 보인다. 그는 신신방에서도 '엄마'와 같은 역할을 묵묵히 해나갈 뿐이다. 자신의 존재 이유는 그저 그뿐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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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창작산실 ©유경오

 

 

연극 <신신방>은 분명 돈의 가치에 맹목적인 수많은 인물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동정한다. 그들을 아주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것은 분명 식민지 치하와 전시 상황이라는 배경, 조선인으로서의 한계와 피해의식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신방 사업을 시작했을 때, 이들은 분명 돈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 보다는 돈을 유토피아로 향하는 입장권 정도로 여겼을 테다. 미나미 같은 경우 사랑하는 고겡이 삶의 기쁨을 양껏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돈의 벽은 너무도 견고하고 유혹적인 탓에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 너머의 곳을 망각하고 만다.

 

게다가 이들이 '돈'을 통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쟁'이라는 비극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신신방>이 꼬집는 큰 모순이다. 누군가는 전쟁을 통해 집과 가족, 꿈을 잃어갈 때 만주의 황량한 땅에서는 그들의 비극을 거름 삼아 욕망과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것 말이다. 신신방 경영인 4명에게 조국의 독립은 달갑지 않은 것임은 물론, 스스로 조선인이라는 자각조차 하지 않음은 이로부터 기인한다.

 

게다가 얻은 돈에 기뻐하고 잃은 돈에 절망하는 4명의 신신방 경영인들이 어딘가 낯설지 않다. 그 대외적인 형태가 다를 뿐이지, 각 시대만의 '만주몽'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현재 어떤 만주몽을 꾸고 있는 지에 대해 돌아보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 된 이들과 그들을 비판하는 수많은 서사 매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너머의 인간적인 가치들에 대해서는 쉽게 냉소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은 신신방의 경연인들을 꼭 닮았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3시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릴 때까지 무대 위 작은 세계로부터 눈을 뗄 수 없었다. 1945년이라는 시대 배경에도 어딘가 낯설지 않은 듯한 위화감에 마음이 묵직히 저려왔지만, 그만큼의 사유 역시도 가능하게 했던 좋은 작품이었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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