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우리의 선택대로 살고 있는가? - 신신방

글 입력 2022.02.2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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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볼 때 바뀐 시점이 있다. 과거에는 무대가 시작하기 전의 조명이나 분위기에는 눈이 가지 않았다. 오직 무대가 시작하고 나서야 그 무대가 채워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신신방'을 보면서 무대 시작 전 분위기부터 무대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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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어둡고, 조용한 무대가 관객의 앞에 있다. 양옆의 철제 기둥들은 무거운 공기를 더 짓누른다. 나무 박스로 만들어진 길은 적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앙에는 마른 나무와 책상이 놓여쳐있다. 이것이 신신방이 준 첫인상이었다. 적적함. 그런 적적함이 어떻게 무대에서 풀어질지 침이 삼켜졌다.


조명이 들어오면서, '영란'이 등장한다. 그녀는 보따리를 들고 있고,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다. 그런 그녀 곁에는 어딘가로 팔려갈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들이 있다.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배웠지만, 배운 것에 대한 목적은 알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그런 무지의 상태에서 한 남성은 자신이 어느 곳에 도착하더라도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 외친다. 그러면서 기차 노선에서 탈주한다. 탕. 총소리와 함께 그는 사라져 버린다. 그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한다. 기차는 계속해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길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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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창작산실 / ⓒ 유경오

 

 

그 길의 끝에서 영란은 만주라는 땅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녀가 일하게 될 것이 바로 '신신방이다. 그 곳은 일본인을 위한 일을 한다. 하루 종일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 일본군을 위해 군복을 만들어낸다. 분명 신신방의 사장은 조선 사람이라는데, 일본인에게 머리를 굽히며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올 돈을 계산하는 그는 조선을 위해 살지 않는다.


그런데, 군복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전쟁의 끝이 일본의 패전하게 될 것이란 어두운 공기가 군복이 가득한 창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무거운 공기는 그곳에서 일하는 영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알게 되었으나,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약자였다. 그 일을 멈추고 일을 잃게 되는 것 또한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모든 게 그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려진 결정이며 현실이었다.


기차를 타고 내려진, 만주는 그녀에게 낯설고도 적응할 수 없는 땅이었을 것이다. 그 땅에서 그녀는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이겨내고자 애쓴다. 하지만 무대를 뒤덮고 있던 적적한 분위기와 음습한 공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현실에서 그녀는 주변의 환경을 관찰하는 관찰자로서 그 분위기와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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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창작산실 / ⓒ 유경오

 

 

그런 그녀 곁에는 '돈'에 미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군복 판매량이 급감하고, 과도하게 끌어들였던 재료비와 인건비를 메꾸기 위해 돈을 또 끌어들인다. 그들의 영혼까지 털려나갈 정도로 돈을 끌어모으나, 그 돈은 또 다른 빚이 되고 또 다른 돈은 절망이 된다. 남는 건 허망함, 돈에 대한 집착 그리고 팔지 못한 군복이 있다.

 

그렇다 해서 그들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누구는 포기를 하고, 누구는 도망친다. 극에서는 모든 책임을 두고 도망친 사람이 승자처럼 그려지지만, 결국 극에서 말하고 싶은 건 누구도 승자가 아니란 것이다.

 

도망친 그 자는 그곳에서도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 몸을 바치는 것이 아닌 자본에 영혼까지 팔 것이다. 그리고 그 영혼을 거두어주는 듯한 자본이 도망쳐 버리면 또다시 절망으로 내몰아질 것이다.

너무 슬프게도 이러한 만주의 현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도 같다. 아무런 의지가 없이 관찰자가 되었던 영란처럼 우리는 결정권을 빼앗긴 채 현실을 살아가기도 한다. 또한 그러한 무지가 무서워 도망치려 하나, 세상에 사로잡혀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주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들도, 알고 보면 그 권리의 끝에는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자본이 줄을 뒤흔들고 있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어떤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무대의 조명이 끝나고 난 이후에도 적막하고 답답한 공기가 가시지 않았다.


창작자의 인터뷰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빌어먹고 살기 힘든 땅, 그런 시절. 만추리아 드림은 그 배경에서 탄생한 말이자, 염원입니다. 만추리아 드림이 이민과 개척을 통하여 부를 향한 소망이었다면, 헬조선, 3포 세대에겐 코인, 주식, 부동산, 즉 영끌의 시대입니다. 만몽을 꿈꾸었던 청년 사업가들의 미래엔 친일파 명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끌의 시대엔 어떤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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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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