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름'이 '결함'이 될 때 [영화]

인간의 '경계선'을 넘어 바라본 '인간'이란 존재의 유해함
글 입력 2022.02.22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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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경계선>의

스포일러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리 우리에서 자랐으면 어떠니, 너는 백조 알에서 태어난 존재인데"

 

 

동화 <미운 오리 새끼>에 나오는 구절이다. '미운 오리 새끼'라 불렸던 주인공이 더 이상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 줄 수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안도와 감동 뒤에는 많은 의문이 남는다.

 

주인공은 정말 자신이 오리가 아니라 백조라는 걸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미운 오리 새끼'라고 불리며 혐오의 시선을 견뎌야 했던 그 시간을 용서할 수 있을까? 자신을 괴롭힌 오리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진 않았을까? 또, 주인공은 아무리 자신이 '백조'라는 걸 알았어도, 태어났을 때부터 살아왔고 이미 정이 든 존재들도 있는 곳을 떠나고 싶었을까?

 

 

 

'다름'이 '결함'이 될 때

: "당신은 결함이 없어요.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이 더 낫다는 것이에요"


 

영화 <경계선>의 주인공 '티나'를 보며 동화 <미운 오리 새끼>가 생각났다. '티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늘 외롭게 살아왔다. 그러던 중 자신과 같은 흉터를 가진 '보레'를 우연히 만나고, 자신이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영화 <경계선>은 결코 동화 <미운 오리 새끼>처럼 감동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경계선 포스터.jpg
출처 : 네이버 영화

  

 

"어릴 땐 내가 특별한 줄 알았었죠. 나에 관해 온갖 상상을 했죠. 그런데 커서 보니 그냥 인간이더군요. 염색체 결함이 있는 못난 인간이요."

 

"염색체 결함이요? 당신은 결함이 없어요. (..)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이 더 낫다는 것이예요."

 

- 영화 <경계선> 中 티나와 보레

 

 

늘 자신의 '다름'을 '결함'으로 여겨왔던 티나가 자신과 '같은 존재'를 만났을 때 보여준 정체 모를 울부짖음 속에 참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늘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큰 감정표현을 보여주지 않았던 티나가,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동안 복잡하게 얽혀있던 감정들을 모두 쏟아내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경계선 스틸컷 3.jpg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렇게 그동안 티나가 느꼈던 외로움과 차별적인 시선, 스스로를 온전히 인정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과 슬픔은, 다양한 이유로 이 사회에서 소수자의 위치에 있게 된 존재들이 수없이 느끼는 것이라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결함'으로 여겨왔던 많은 것들이 그저 '다름'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돌아보게 된다.


사회 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존재들이 마주하는 혐오와 폭력은 결국 또 다른 혐오와 폭력을 낳는다. 보레가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끔찍한 폭력에 동조한 것 처럼 말이다.


티나와 보레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영화는 인간의 경계선을 넘어 인간이란 존재를 다르게 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티나와 보레의 관점과 대사를 통해 인간의 경계선을 넘어 바라본 인간은, 너무 많은 생명을 해치고 다른 생명들의 터전을 파괴하는 존재였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과 혐오의 고리는 끈질기게 이어지며 많은 생명을 옥죄어왔다. 인간은 이 고리를 끊고 '무해한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무해한 생명'이 되고 싶다는 소망

: "누구도 해치기 싫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인가요?"


 

인간의 경계선을 넘어 '인간'이란 존재를 바라보며 색다르지만, 어딘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는 결국 나 역시 보레가 '원수'라 여겼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외면하고 싶은 사실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생명을 해치고 착취해 온 것은 아닌지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티나가 했던 선택을 나였다면 과연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봤다. 명백히 죄없는 생명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했지만, 티나에게는 자신의 '온전함'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던 보레를 포기할 수 있었을까?

 

 

"아직 안 늦었어요. 우리에겐 사명이 있어요. 종족을 이어 갈 수 있어요. 당신이랑 내가. 우린 다시 많아지겠죠."

 

"난 못해요. 악마가 되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인간이 되려고요?"

 

"누구도 해치기 싫어요.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인가요?"

 

- 영화 <경계선> 中 보레와 티나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인간'으로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인간인 나 역시도 같은 인간들이 수많은 생명에게 해를 끼치며 누렸던 편리와 행복을 묵인하고 동조해왔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티나가 그랬듯, 폭력과 혐오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다른 생명에게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소망과, 다른 생명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경계선 스틸컷 2.jpg
출처 : 네이버 영화


 

"나와 타자를 구별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동일시하는 연민은 타자를 외형에 따라 종, 종류, 공동체로 분류하지 않고 다 같은 생명체로 인식한다. 연민은 도덕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지만, 도덕과 정의의 조건이기도 하다."

 

- 코린 펠뤼숑, <동물주의 선언> 中

 


이미 인간은 사회 안에서 심화되고 있는 수많은 갈등으로부터, 또 그동안 다양한 경고를 보내왔던 환경으로부터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코린 펠뤼숑의 <동물주의 선언>에 실린 이 문구처럼, 도덕과 정의가 적용될 수 없는 경계선을 넘어서도,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연민과 감수성을 간직한 채 모든 생명들에게 조금 더 '무해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본다.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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