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석을 통해 발견하는 신성과 인간성, 그리고 광물성 (만화)

먼 미래, 우리들은 “보석”이 되었다.
글 입력 2022.02.2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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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만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먼 미래, 우리들은 '보석'이 되었다."

 

 

2017년, 애니화로 큰 인기를 얻은 <보석의 나라>(宝石の国)는 이치카와 하루코가 잡지 애프터눈에서 연재 중인 만화다. 지금으로부터 먼 미래, 일곱 차례의 유성 충돌로 인류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존 생명체들은 멸종하게 된다. 인간이 사라진 지상에서 살아가는 건 인간과 닮은 듯, 닮지 않은 스물여덟 명의 보석.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인간의 외형을 한 의문의 인물 금강이다. 만화는 보석들이 자신들을 장식품으로 만들기 위해 달에서 내려오는 월인과 맞서 싸우며 전개된다. 

 

보석들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하니 아름답고 찬란하기만 할 것 같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생각만큼 경쾌하지 않다.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체와 대비되는 여백의 활용, 간단한 배경, 페이지를 넓게 쓰는 연출 등은 긴박한 장면에서도, 일상적인 장면에서도 완전히 감춰지지 않는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연출 방식은 보석의 무한한 수명, 월인들이 쳐들어오는 이상 계속해서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과 맞물려 특유의 덧없음을 만들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덧없음'이 인간과 광물 사이에 있는 존재를 통해 인간을 고찰하게 한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진주나 호박, 산호 등을 제외하면 보석은 대개 무기물이나, 이 만화의 보석들은 생물과 무생물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다. 식물처럼 햇빛을 양분으로 삼기는 하지만, 아픔을 느끼거나 죽지는 않는다. 몸이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산산조각나더라도 이어붙이면 그만이다. 이러한 이유로 보석들은 의인화가 되었어도, 인간적인 면보다 본래의 광물이 가진 속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만화에 나오는 보석들은 실제 보석의 색이나, 인성, 경도, 쓰임새 등을 참고해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그 예로, 광물의 성배라 불리는 포스포필라이트는 산출량이 극히 적어 비싼 값에 거래되며, 밝은 박하색이라 보기에도 아름답다. 그러나 보석으로는 잘 가공되지 않는다. 경도가 낮고, 물러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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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포스포필라이트


 

주인공 포스포필라이트(이하 포스)는 모티브가 된 보석의 특성을 충실히 반영한다. 포스는 타고난 체질이 무르고 약해 싸우지 못하는 데다, 월인들이 좋아하는 색을 띠고 있어 쉽게 노려지기까지 한다. 전투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 애쓰지만, 어느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결국 마땅한 역할이 주어지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르고, 작품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300살이 된다.

 

 

 

아름답지만, 쓸모는 없다


 

포스는 냉엄하고 잔혹한 세계에 의해 갖은 고생을 하고, 몸의 일부를 바꿀 때마다 '성장'이라고 할 법한 변화를 겪는다. 기본적으로 밝고 명랑한 성격이며, 호기심이 많다. 다른 등장인물들에게는 없는 능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포스에게는 보통의 소년만화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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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의 나라> 애니메이션 중 포스


 

첫째, 포스의 능력은 무력함을 기반으로 한다.

 

포스는 전투에서도 활약을 하지 못하고, 옷을 만들거나 결정을 짜맞춰 몸을 고치거나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재주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의 힘만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고, 다리를 잃게 된다. 다행히 포스 안의 인클루전은 다른 광물을 쉽게 받아들이는 특성을 갖고 있어, 부러진 다리를 아케이트로 교체할 수 있었다. 그전의 자신과 달리 빨리 달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포스는 자신을 점점 잃어간다. 주변 보석들에게 본래의 포스가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을 받으며, 자신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지금의 포스에게서 처음의 밝고 산뜻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인격까지 뒤흔드는 능력이 과연 '능력'일 수 있을까?

 

둘째, 앞에서 포스를 밝고, 명랑한 캐릭터라고 소개했지만 마냥 그렇지는 않다. 포스는 오랜 세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내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포스는 소위 ‘햇살캐’나 ‘열혈캐’라고 불리는 스테레오 타입의 주인공들타 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해맑고 당차며 씩씩하지만, 무엇에도 필사적으로 굴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 느슨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수없이 좌절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과 다른 시간축을 살아가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3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누적된 좌절과 실망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웃는 얼굴 아래 오랜 세월 간직해 온 체념이 깔려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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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의 나라> 애니메이션 중 신샤


 

금강은 전투에 나가게 해달라고 조르는 포스에게 박물지 일을 맡기지만, 정작 돌아오는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런 포스가 처음으로 먼저 손을 내민 보석이 있다. 진사(辰砂) 혹은 주사(朱砂)라고 불리는 광물을 모티브로 하는 신샤다. 주변에 해를 입히는 독액(수은)을 품고 태어난 신샤는 다른 보석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하고, 스스로 밤에 고립시킨 채 살아간다. 경우는 다르지만, 두 보석 다 타고난 체질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는 처지다. 그런 신샤에게 동정이라도 느낀 것일까? 달에 끌려가도 상관 없다는 신샤에게 포스는 '밤의 순찰보다 훨씬 재미있고, 너밖에 못하는 일'을 찾아주겠다고 말한다. 일방적으로 맺은 약속은 포스에게 목적이 되고, 동기가 된다. 여태까지의 대책없이 긍정적이고, 얼빠지고, 느슨한 태도 대신 무엇이든 해보이겠다는 절박한 의지가 생겨난 것이다.

 

 


고행 속에서 피어나는 신성(神聖)과 인간성(人間性)


 

<보석의 나라> 독자 대부분은 이 만화가 주인공에게 박하다는 말에 동의할 테다. 주인공답게 서사의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취급이 영 좋지 않기 때문이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며, 팔다리가 떨어져도 다시 붙이면 그만이라는 잔인한 설정에 힘입어 포스의 신체는 멀쩡할 날이 없다. 부러지고, 가루가 되며, 잃어버리기 일쑤다. 주인공을 편하게 두지 말라는 이야기의 기본 규칙을 아주 제대로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만두기에는 너무 멀리와버렸으므로, 포기할 수 없는 말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도망칠 수 없다. 끝을 염두한 이야기는 세계의 중력이나 다름없는 주인공에게 어떤 고난과 역경이 주어지든 반드시 이겨내고 올 것이라는 믿음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현실이 아니라 서사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에게 주어진 삶이다. 어찌보면 포스는 세계로부터 생존 당하는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강하면서도 약한 보석의 특성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

 

포스가 이 만화의 주인공이 된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름답지만 쓸모없기 때문이다. 타고난 무력함과 상충하는 인정욕구. 그 타협 없는 꼿꼿함이, 자신에게 주어진 서사를 고집스레 삼키는 탐욕이 포스를 추악하고 또 아름답게 만든다. 제 앞에 놓인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또 처절하건 포스는 계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세계가 아직 포스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존재론적 비극이자, 세상에 신이 도래하는 방식이다.

 

작가 이치카와 하루코는 불교 계열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읽은 <무량수경>에서 극락이 보석으로 장식되어있다는 구절을 보고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만화 곳곳에서 불교를 소재로 사용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월인이 불상과 야차의 형상을 하고 있다든가, 보석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금강이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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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의 나라> 애니메이션 중 월인

 

 

불교의 연기법에 따르면, 인간이 괴로워지는 이유는 이 세상에 태어나 죽기 때문이다. 노사(老死)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무지에서 온다.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업보로 인해 이 세상에 계속 태어나게 되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불가에서 진리를 강구하는 이유는 바로 이 끝없는 굴레를 끊고, 열반에 오르기 위함이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는 아니지만, 포스가 작품 속에서 고통받는 이유 또한 연기법으로 파악할 수 있다. 포스가 자신의 쓸모를 찾지 못한 이유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며, 이는 새로운 광물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극복된다. 즉, 포스는 죽지 못하는 몸으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육도윤회에 갇혀있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는 길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포스가 부처가 되는 건 일종의 필연이며, 고행이라 할 수 있다. <보석의 나라>가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달에서 49일을 보내고 지구로 돌아올 때 미륵반가사유상의 자세를 취했다는 점, 칠보를 모두 얻고 금강의 권한을 양도받은 포스에게 주어진 시간이 1만년으로 아득하게 길다는 점 등을 고려해보았을 때 포스는 미륵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륵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지 56억 7천만 년이 지난 후에 출현하는 부처로,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미래의 구원자이다. 여기서 1만년이라는 긴 시간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는 다룰 수 없는 시간의 범위이자,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지는 광물의 특성을 대변하며, 이 세상에 새로운 부처가 현현하가까지의 아득한 세월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포스는 이제 광물다움과 인간다움, 그리고 초월자적 면모를 두루 갖춘 셈이다.

 

보석들로 이루어진 세계라고 하니 아름답고 찬란하기만 할 것 같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생각만큼 경쾌하지 않다. 양면을 활용한 연출과 여백, 비교적 간단한 그림체로 이루어진 이 만화는 긴박한 장면에서도, 일상적인 장면에서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쓸쓸함을 만들어낸다. 보석들은 아픔을 느끼지 않고, 죽지 않는다. 인간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진 것 같지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없어 이따금 황량하기까지 한 광활한 자연, 월인들이 쳐들어오는 한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덧없음이 인간과 흡사하지 않은, 광물이라 하기에도 생명체라 하기에도 애매한 보석들을 보며 인간을 고찰하게끔 한다.

 

여기 나오는 보석들은 인간이 아니지만, 한때 인간이었던 생물에서 파생된 존재들이다. 독자는 자연히 보석에게서 인간다운 특성을 찾아내게 된다. 그들에게는 마음이 있다. 누군가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누군가를 질투하고, 누군가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는다. 수만 가지 감정을 느끼며 다른 존재와 더불어 살아간다. 전지전능해보이는 금강조차 고독에서만은 벗어나고자 했고, 금강의 능력을 이전받은 주인공이 기도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마지막 시련 또한 고독을 견디는 일이다.

 

그렇다면 고독이야말로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특성이지 않을까. 현실에서는 그저 무생물에 불과한 기계와 보석에게까지 멋대로 부여하고마는 그 성질이,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일 리 없는 존재들을 인간의 범주에 집어넣는다.

 

주인공은 월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혼자 남겨졌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어떻게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대승불교의 정신에 따르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는 길이 곧 자신을 구제하는 길이 된다고 한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겨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야기의 막이 내리는 순간 혼자가 아니기를 빌어본다.


 

[임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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