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고추리반' 시즌2, 재미있게 보셨나요? [드라마/예능]

가스라이팅과 불법 촬영 소재의 부적절한 사용, 그럼에도 시즌3를 기다리는 이유
글 입력 2022.02.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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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티빙의 첫 번째 오리지널 콘텐츠 <여고추리반>이 공개되었다. <대탈출>의 정종연 PD와 임수정 PD가 공동 연출을 맡아 공개 전부터 관심을 끌었다. 출연자로는 ‘추리 예능’이라면 빠질 수 없는 박지윤을 필두로 장도연, 재재, 비비, 예나가 섭외되었다.


<여고추리반> 시즌1은 공개되자마자 입소문을 탔다. 2021년 1분기 티빙 유료 이용객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데에 큰 몫을 했다. 참신한 기획과 멤버 간의 케미 덕에 <여고추리반>은 빠르게 팬층을 형성하였다.


애청자들의 목소리 덕에 일 년이 지나기 전 <여고추리반> 시즌2의 편성이 확정되었다. 반갑게도 멤버 변동은 없었다. 그리고 2021년 12월 31일, 시즌2의 첫 화가 공개되었다. 시즌1의 애청자로서 시즌2 역시 기대를 품고 시청했다. 그러나 시즌2는 기대한 바와 전혀 달랐다. 그 이유를 하나씩 공유해보고자 한다.

 

 

 

추리 없는 추리반



<대탈출> 시리즈의 흥행은 <여고추리반> 제작의 발판이 되었다. ‘방탈출 게임’처럼 흔적을 찾고 문제를 푸는 <대탈출>의 연출 방식은 자연스레 <여고추리반>에도 적용되었다. <여고추리반> 시즌1의 상황은 대부분 문제 풀이로 전개되었다. 추리반은 같은 문제에 몇 시간이나 매달리고, 장치를 찾기 위해 온 벽을 두드려대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2에는 그런 문제 풀이가 거의 없다.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주를 이루고, 집념이 필요한 문제는 추리반이 알아내기도 전에 이야기 속 캐릭터(NPC)들이 다가와 차례로 힌트를 건네준다. 7화까지 달려가는 동안 추리반은 특별히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었다.


집요하게 고민하고 토론할만한 문제의 부재로, 출연자 간의 의미 있는 대화를 찾기 힘들었다. 각자 다른 추리 방식을 보는 재미가 있던 시즌1과는 매우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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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의 스토리에는 그야말로 ‘여유’가 없다. 태평여고를 둘러싼 방대한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추리 요소를 배제하고 배경을 뱉어내기에 급급했다. 이번 시즌에는 중요한 인물인 세 쌍의 부부와 그 딸들이 등장한다. 다만 그중 절반 이상은 실체가 없다. 시청자는 소설을 읽듯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인물을 추측해야 했다. 이 때문에 시청의 피로도가 올라갔다.


이야기를 따라가기 힘든 건 출연자도 마찬가지였다. 재차 인물 관계를 묻고 서로 확인했다. 제작진은 이런 출연자 간의 대화를 편집하지 않고 여러 번 그대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시청자도 헷갈릴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심지어 최종화 직전의 7화는 통째로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에 사용했다.


물론 이야기가 복잡한 만큼 볼거리는 충분했다. 학교 건물에서 벗어나 마을 밖에서 증거를 찾고, 다양한 캐릭터와 접촉하며 긴장감을 더했다. 덕분에 ‘보는’ 재미는 더해졌으나, 출연자도 시청자도 제대로 된 ‘추리’를 할 기회는 얻지 못했다.

 

 

 

“너 가스라이팅 당한 거야!”



<여고추리반> 시즌2를 보다 보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들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최근 가스라이팅 연관 범죄가 다수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제야 단어의 의미를 알고, 그 심각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선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 행위를 뜻한다.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서서히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해자에게 행동, 심지어 생각을 확인받으며 판단력을 잃어가게 된다. 주로 권력의 비대칭성에서 비롯되며, 연인이나 가족 관계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한다.


이렇듯 ‘가스라이팅’의 의미는 한 마디로 쉽게 정의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오남용 사례가 매우 자주 보인다. 심지어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 자체를 트렌드로 인식한 각종 매체 탓에 이를 농담조로 사용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여고추리반>의 출연자들도 알음알음 이 단어를 주워들었는지, 반복적으로 ‘가스라이팅’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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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나 ‘상술’은 가스라이팅과 일부 의미가 교차하는 지점이 있지만, 절대 동의어로 판단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단순히 ‘사기’를 당했다고 해서 가스라이팅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극 중에서 출연자 예나는 부반장 NPC와 가까워진다. 심부름에 동행했을 때 부반장은 예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예나는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부반장은 예나에게 꾸준히 커뮤니티 내부 정보를 알려주고, 의심스러운 범죄 정황까지 공유한다.


지속적인 감정과 정보 교류로 예나를 비롯한 추리반은 모두 부반장을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모든 상황을 설계한 건 부반장이었고, 이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추리반은 경악하며 이렇게 말한다.


“예나야 너 가스라이팅 당한 거야!”


황당하고 충격적이었다. 예나가 처음 부반장의 타깃이 되었지만, 사실 결과적으로 속은 건 추리반 전원이다.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부반장에게 연락을 해보라며 교류를 부추기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난 순간, 추리반은 오직 예나만 피해자인 양 반응했다.


부반장의 정체가 드러난 순간 박지윤은 ‘완벽하게 가스라이팅 당했어’라며 슬픈 표정으로 예나를 어루만졌다. 예나가 순진하고 어리석어 꾀에 넘어갔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지윤 역시 ‘부반장이 수세에 몰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라며 그를 믿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속은 건 예나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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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나를 더 강하게 가스라이팅 하는 건 추리반이 아닐까 싶었다. 예나가 무리에서 떨어져 부반장과 동행하게 된 순간부터, 나머지 추리반은 발을 동동 구르며 예나를 걱정했다. 이 정도까지는 애정 어린 마음이다. 그러나 예나가 큰 문제 없이 돌아온 후에도 절대 떨어지지 말라며 유난히 예나의 독립 행동을 저지했다. 위험하다는 핑계로 통제 반경에 두려고 하는 건 가스라이팅의 흔한 과정이다.


‘가스라이팅’을 주된 소재로 다룬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다. 그러나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은 분명하다. 실제로 프로그램 내내 이 단어가 정확한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마치 유행어를 사용하듯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에 착잡해졌다. 용어 오남용이 잦아질수록 피해의 심각성은 퇴색되기 마련이다.

 

 

 

불법 촬영과 무고



<여고추리반> 시즌2의 굵직한 스토리는 ‘불법 촬영’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학생들이 잡은 불법 촬영범은 조작된 영상에서 비롯한 만들어진 범인이었다. ‘악의 축’으로 밝혀진 부반장은 학생들의 신임을 얻어 더 큰 사건을 벌이고자 불법 촬영 사건을 처음부터 조작한다. 무고한 이를 범인으로 몰고, 본인은 의도대로 커뮤니티의 주요 인물이 된다.


불법 촬영은 현시대 여성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피해 사례가 상당한 사회 문제이다. 불법 촬영을 비롯한 모든 성범죄를 신고하는 이들의 마음은 절대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에 이입해 ‘가짜 신고가 아니냐’며 피해자를 조롱하는 반응은 여전히 쉽게 목격할 수 있다.


2017년과 2018년 기준, 성폭력 범죄와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인원을 비교하면 0.78%에 불과하고, 성폭력 무고로 고소된 사례 중 유죄로 확인된 사례는 6.4%에 불과하다. 이처럼 무고죄가 성립하는 경우와 허위 신고 사례는 그 비율이 매우 낮음에도 성범죄 신고자를 우선 의심하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부 무고죄가 존재한다고 해도, 성범죄자 대부분이 남성이며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임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사회에서 굳이 ‘여학생이 조작한 성범죄 피해’를 소재 삼아야 했을까. 씁쓸한 마음이다.


여성에게 무고죄의 프레임을 씌우고 심지어 여성 출연자가 그걸 직접 말하는 모습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방송 콘텐츠는 수많은 이에게 닿아 고정관념을 남긴다. 한 사람의 용감한 성범죄 고발에 ‘저거 거짓말 아니냐’라며 부끄러운 줄 모르고 목소리를 높일 사람이 적어도 하나는 늘어나 버린 것이다. <여고추리반>의 제작진이 원하던 바가 정말 이게 맞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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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의 인간 실험은 보통의 삶과 동떨어진, 소설에 가까운 주제이다. 반면 시즌2의 가스라이팅과 불법 촬영 문제는 실제 삶에 상당히 밀접한 주제이다. 일상적으로 경계하는 사건이 등장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청자는 긴장을 놓칠 수 없다. 깊게 몰입하는 동시에 기묘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대탈출>, <크라임씬>을 비롯해 <여고추리반>과 유사점을 가진 모든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의 현실성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나 소재에 따라 2차 가해를 당하는 집단이 존재함을 인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분명히 동반되어야 한다.


<여고추리반>은 그 시작부터가 큰 도전이었음을 안다. 전 출연자를 여성으로 꾸리는 건 방송가에서 전혀 흔치 않은, 과감한 결정이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시즌1을 응원했으며 시즌2의 행보를 더 마음 깊이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여고추리반>은 2월 18일 오늘, 최종화를 공개하며 마무리되었다. 전개는 끝까지 흥미진진했다. 이후의 시즌이 있다면, 재미있는 스토리에 더해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까지 충분히 갖춰 더 많은 박수를 받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 앞선 두 시즌의 모습을 기억하며 <여고추리반>의 새 시작을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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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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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ㅇㅇ
    • 긴글 잘 읽고 갑니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수 있긴한데 저는 시즌2 더 재밌게 봤거든요. 시즌3도 나온다니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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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재밌게 봤는데.. 비판을 위한 비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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