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현실적인 공간으로의 초대 [미술/전시]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만난 반가사유상
글 입력 2022.02.12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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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사진들, 통통 튀는 파스텔 색감의 전시장. 요즘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전시회라 하면  빠지지 않는 요소들인 것 같다.

 

다채로운 콘텐츠와 볼거리로 무장한 전시들이 SNS를 타고 빠르고 널리 퍼져 나간다. 하지만 앞서 말한 장치들 하나 없이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특별한 전시가 있다. 오로지 두 점의 유물만이 놓여 있는 공간, <사유의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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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사이트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로 개관한 <사유의 방>은 국보인 반가사유상 두 점이 주인공이다. 두 개의 불상이 차지하기에는 꽤 넓고 커다란 공간인데 그 구성이 굉장히 오묘하다.

 

천장에 달린 2만여 개의 봉은 제각기 길이가 달라 높이가 달라 보이게 만들고, 사방의 벽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낯선 세상에 온 듯한 기묘함을 안겨준다. 천장과 벽, 바닥은 타오르는 대지가 생각나는 주황빛을 띠어 그 속의 관람객을 압도하는 듯했다. 벽은 실제로 해남 땅에서 난 붉은 흙과 편백, 계피 등을 섞어 발라서 더 강렬한 기운을 뿜어낸 것 같다.


이전까지 국립박물관을 관람했을 때는 일정한 간격으로, 딱딱하고 정형화된 모습의 전시들만 보았는데 <사유의 방>은 그것을 완전히 탈피했다. 보아야 할 것은 두 점의 유물뿐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전시물 앞에서 오래 머물러 있었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허벅지 위에 걸친 채 곰곰이 사유하는 모습의 불상이다. 예술적으로도 종교적인 의미로도 가치가 높은 반가사유상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함께 사유하는 힘이 있었다.

 

은은하게 미소를 띠고 있는 이 불상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한쪽만 올리고 있는 다리는 가부좌를 틀어올리는 중인지, 내리는 중이었던 건지, 깨달음을 얻은 듯이 편안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지 찬찬히 뜯어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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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사이트

 

 

반가사유상이 타 전시물처럼 유리관 안에 들어가 평범한 전시관에 놓여있었다면, 그와 함께 사유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은 외부건축가와 함께 이번 전시를 만들며 네모난 직선을 배제하도록 했다고 한다. 반가사유상을 바라볼 때 상하 좌우 어느 곳에서도 뾰족한 것도 눈에 걸리지 않게 해 오롯이 유물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마스크를 뚫고 느껴지는 벽의 나무와 흙내음은 신비로운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섬세하게 명암대비를 주는 작은 조명들은 유물의 디테일까지 드러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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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 세계의 한가운데인듯한 공간 속에서 바라본 반가사유상은 그 어떤 설명글보다도 가슴에 와 닿았다. 내가 싯다르타나 미륵보살이 아님에도, 그 성인들 안에서 펼쳐지는 사유의 공간을 살짝 엿본 기분이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이만한 체험형 전시가 있을까?'였다.

 

요즘 많은 전시회가 '체험'이라는 단어를 들고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그중에서 오랜 기간 감상이 남는 체험을 해본 적은 손에 꼽는 것 같다. 보고, 만지고, 만들고. 즉각적인 일회성 체험도 분명 그만의 재미가 있지만, 전시의 주제나 의미와 동떨어지는 경우가 잦아서 그랬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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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사유의 방>은 특별한 전시였다. 고리타분한 역사 유물 중 하나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도 있는 반가사유상의 의미와 가치를 눈과 귀, 코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박제된 문화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있는 유물로 느낄 수 있게끔 하느라 얼마나 정성스럽게 연출을 했을지 상상이 안 갈 정도다.

 

반가사유상이 어떤 문화재인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전시 공간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 어떤 설명보다도 피부에 와 닿는 전시였다. 문화에 대한 진심으로 하나하나 섬세하게 조성된 공간 덕에 오랜 시간 길이 기억 남을 문화재 전시를 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으니,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싶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길 권한다. 나는 지난 1월 주말에 방문했는데 사람이 복작복작해서 아쉬웠던 터라...비교적 고요한 평일 낮에 찾아간다면 반가사유상과 신비로운 교감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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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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