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NFP의 상상 3

소설가 H의 사랑
글 입력 2022.02.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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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준비하면서도 소설가의 꿈을 놓지 못하는 지훈은 어느 날 애인 혜정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얼마 후 그는 없는 돈을 털어 홋카이도로 향하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여성 하나코와 하룻밤을 보낸다. 침대에 누워 서로를 끌어안는 두 사람, 지훈이 알 수 없는 차가움을 느끼는 순간 하나코는 사실 자신이 눈사람이라고 고백한다…


방금 톡방에 올라온 작품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충 이러했다. 내일 합평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열심히 읽어봐도 그 작품이 그 작품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의 깊이를 가진 작품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 남모를 상처가 있는 주인공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러다가 헤어지고, 결국 인간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는 내용일 뿐이다. 각종 합평에서 다년간 이런 글을 접한 끝에 나는 여기에 돌려쓸 수 있는 적당한 코멘트를 체화하기에 이르렀고, 그 골자는 대충 아래와 같다.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의 불가해한 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코멘트를 쓸 때마다 나는 내 취향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소설가 H를 떠올린다.


*


H를 처음 만난 곳은 대학의 인기 강의였던 <소설 창작의 이해>였다. 그는 첫인상부터 굉장히 비범했는데, 단정하거나 화려한 인상의 수강생들 틈에서 꽁지머리를 하고 뿔테 안경을 쓰고 진녹색의 사파리 재킷을 걸치고 있었으니 자연히 눈에 띄었다. 학생보다는 국문과 교수님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첫 시간에 우리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각자 답을 내놓았다. 앞 순서가 지나가는 동안 열심히 머리를 굴린 나는 문학이란 나와 다른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답했다. 이후 거의 마지막 순서였던 H는 짧은 자기소개를 마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문학이 우아한 문장을 입은 유치한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욕망이나 충동을 읽는 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려내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말도 저렇게나 다르게 할 수 있구나, 나는 그에게 호기심이 동했다.


한 학기 동안 세 편의 단편을 쓰고 사람들의 글에 코멘트를 쓰는 게 전부인 이 강의는 특이하게도 한 학기 동안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의 글에 긴 감상평을 쓰게 하는 ‘지정 독자’라는 제도가 있었다. 나는 H의 지정 독자를 희망했고, 다른 희망자가 없었던 탓에 운 좋게 그와 짝이 될 수 있었다. 그 선택이 나를 괴롭게 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


기대와는 달리 그의 작품들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일인칭의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그의 단편은 죄다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와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의 축축하고 의뭉스러운 사랑 이야기였다. 여자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자는 왜 이런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냐며 절망하고, 그럼에도 둘은 상처뿐인 관계를 계속하고… 뭐랄까, 글을 읽는 내내 하자 있는 주인공의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구구절절한 자기변호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의 작품의 기저에 깔린 ‘인간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 자체보다는, 그로써 인간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를 ‘결국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싸늘하게 무화하는 그의 냉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뒤틀린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는 주인공의 태도가, 너는 조금 다를 줄 알았지만 결국 사람은 다 똑같다는 식으로 말하며 상실감을 느끼는 주인공의 우월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차마 포기하지 못하는 비대한 자아에 대한 장황한 자기변호가 싫었다.


나는 어설프더라도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몸짓이 더 좋았다. 상대방을 위해 처음 해 보는 일의 어색함과 따뜻함을, 말하자면 펜을 마지막으로 잡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이 비뚜름하게 쓴 손편지 같은 것을 사랑했다. 그래서 누군가의 미숙함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그의 스타일리시함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문장은 난해한 편이 아니라 그의 글을 읽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긴 감상문을 쓰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차마 내 생각을 가감 없이 담을 수는 없었던지라, 개인적인 감상을 덜고 덜어낸 내 감상문은 기계적인 칭찬뿐이었다. 거기서 오는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준 것은 내 글에 대한 그의 감상도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았다는 거였다. 그에게 내 글은 지나치게 정직하고 낙관적이며,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유치한 감상론에 빠져 있었고, 그러면서도 가볍고 실없는 20대 그 자체였다. 내 글에 대한 그의 감상평은 대충 ‘글이 참 따뜻하다’의 동어반복이었다.


-P 님의 글은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H 님의 글은 인간 심리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굉장히 예리하게 짚어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실상 한 학기 내내 ‘그쪽 대가리는 참 꽃밭이네요.’와 ‘그쪽 대가리는 지나치게 꼬여 있네요.’를 예쁘고 큰 상자에 담아 서로에게 건넬 뿐이었다.


*


물론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일 뿐, 이것이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은 안다. 잘은 모르지만 그에게 내가 모르는 사정과 상처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에게는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가해였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지나가듯 H가 꽤 이름 있는 출판사에서 단편집을 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으니, 그의 시선에 공감하고 깊이 위로받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었다. 어쩌면 그의 냉소와 맵시가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 ‘쿨함’에 대체로 공감하지 못하는 나는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그들이 한껏 비웃으면서도 애타게 찾는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소심하게 한 줄 사족을 덧붙인다.


‘문득 상대방의 시점에서 이 글을 써 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박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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