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도서]

새로운 감각
글 입력 2022.02.0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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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으로 손에 쥐었을 때부터 느껴지는 감각은 남달랐다. 맨 처음엔 책 커버의 색다른 촉감이 손끝에 맞닿았고, 그다음엔 책 자체가 지니고 있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감각이 나를 스쳤다. 결코 만져보지 못했던 표지의 재질과 결코 인지해 보지 못했던 미국 이민자의 삶은 나에겐 낯선 느낌이기도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다.

 

*

 

에리카 산체스의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이민 가정의 2세인 ‘훌리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훌리아는 제목 그대로 평범한 멕시코 딸이 아니다. 교류하는 많은 친척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별종으로 불린다. 그녀는 평범한 멕시코 딸들이 하는 일들, 토르티야를 만들 줄 알고, 청소를 하고, 절대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않는, 과는 거리가 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인물로, 문화적으로 완전한 멕시코인이라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문화 복합적인 상황에 있는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를 포함한 모두가 국경을 넘어오는 일이 대단히 힘든 일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정식 절차를 밟고 미국으로 넘어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실상 허가증 없이 미국에서 거주 중이다. 그녀의 아파(아빠)는 캔디 공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아마(엄마)는 부잣집의 넓은 방과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해 돈을 번다. 하지만 그들의 힘든 노동에 뒤따르는 보수는 그리 크지 않다. 마땅한 학력도 없이 미국에 불법체류 중인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으며, 그 ‘일’이라는 것마저도 육체적 피로를 수반하는 저임금 노동일뿐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훌리오가 좋은 대학에 진학해 좋은 직업을 얻기보단 그저 자신들보단 조금 더 나은 일을 하며(사무실 비서나 접수 담당자 같은) 집에서 토르티야를 만들 수 있는 평범한 멕시코 딸이 되기를 원한다. 고로 훌리아는 독립을 하는 것도, 멀리 있는 대학에 진학을 하는 것도, 남자애와 성관계를 맺는 것도 결코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이 외에도 존재하는 수많은 제약을 지킨 이가 바로 훌리아의 언니 ‘올가’다. 그녀는 완벽한 멕시코 딸 역할에 걸맞은 인물이었으며 그녀의 엄마를 닮아 마르고 아름다웠다. 그런 그녀의 죽음은 가족 모두를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심지어는 그녀와 그다지 친밀한 관계를 갖지는 않았던 훌리아까지도 너무 깊은 우울에 밀어 넣었다.

 

올가가 죽고 난 후에도 훌리아는 그녀의 완벽한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훌리아는 유명한 작가가 되어 많은 돈을 벌고 싶었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멕시코 이민 자녀들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이라는 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홀로페스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이며, 그 이유가 목을 썰고 있는 유디트와 하녀의 모습에서 겁먹음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인 점만 봐도 알아챌 수 있다. 따라 그런 그녀에게 올가는 성녀이자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훌리아가 죽은 올가의 방에서 야한 속옷과 호텔 키를 발견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훌리아는 올가의 노트북에 남은 메일을 통해 그녀에게 유부남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올가에게도 그녀만의 삶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고민 끝에 훌리아는 아마가 올가의 비밀을 발견하기 전에 그녀의 야한 속옷과 호텔 키를 자신의 방으로 옮긴다. 하지만 훌리아의 방에 들어간 아마가 올가의 물건들을 발견하고 이로 인해 훌리아는 오해를 사게 된다.

 

이후 훌리아는 외출 금지를 당하고 부적절한 단어(빌어먹을, 섹스. 나쁜 년)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수년간 써왔던 글들을 빼앗긴다. 올가가 죽은 후부터 이미 우울감을 느끼고 있던 훌리아에게 이런 상황은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녀는 가장 바보 같은 선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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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동안 훌리아가 겪고 있는 상황이 단지 멕시코 이민 2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모두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부모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토대로 규칙을 만들어 자녀들이 그 모든 규율들을 지키기를 강요한다. 그리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방식에 맞춰 행동하는 아이는 바르고 착한 아이로 규정하고, 그렇기 않은 아이는 훌리아와 같은 별종으로 취급해 버린다.

 

책을 좋아하던 훌리아는 일찍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고, 그런 그녀에게 요구되는 규칙들은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는 잣대였을 것이다. 나조차도 과거 부모님의 지시가 부당하고 말도 안 된다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이전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들의 규칙들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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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가 국경을 넘어오는 동안 당했던 일을 알게 된 후, 훌리아는 그녀가 성관계에 대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아마는 자신이 당했던 무섭고 불행한 일이 훌리아와 올가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훌리아가 자해를 시도한 뒤부터 아마는 그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삐걱대던 퍼즐 조각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특히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는 유독 쉽지 않다. 자식들은 부모의 과거를 모르기에 그들의 말과 행동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이 자신의 말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부모가 알아야 할 점은 그들의 자녀들 또한 한 개인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다른 누군가에게 종속될 수도 누군가를 지배할 수도 없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훌리아는 독립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올가 또한 비밀스럽지만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책은 완벽한 멕시코 딸과는 거리가 먼 훌리아와 올가 같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스스로 삶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다른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이 만족할 삶을 위해 뒤돌아보지 말고 경쾌히 그 발걸음을 내디디라고 말이다. 부모의 자녀가 아닌 한 명의 주인공으로서.

 

*


<홀로페스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그림은 많은 화가들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카라바조의 그림과 젠틸레스키의 그림엔 큰 차이가 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가 그린 <홀로페스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속 유디트는 유약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해당 그림에서 유디트는 홀로페스네스의 목을 자르고 있지만 그 표정은 마치 살인을 꺼림칙해하는 모습이며, 목을 베는 행위조차 힘없고 연약해 보인다. 그녀의 옆에 서 있는 하녀 또한 매우 늙은 노인으로, 손에 끈을 쥐고 있을 뿐 살인에 가담하지 못할 인물로 그려졌다. 이는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유디트이다.

 

반대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그림 속 유디트는 강인하고 무덤덤한 모습으로 홀로페스네스의 얼굴을 누르고 목에 칼을 박아 넣고 있다. 카라바조의 그림과 달리 홀로페스네스는 저항하는 동작을 취하고 있고, 유디트의 하녀가 온 몸으로 그런 그를 제압하고 있다. 이는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유디트이다.

 

훌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으로 언급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이 중 젠틸레스키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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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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