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역사 서술의 다양성을 찾아서 [도서]

『비단 버선은 흙먼지 속에 뒹굴고』를 읽고
글 입력 2022.02.0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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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녹산(安祿山)의 난은 당나라의 명운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이 안녹산의 난을 계기로 군사 국가였던 ‘당나라’가 경제 국가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책 『비단 버선은 흙먼지 속에 뒹굴고』는 그 변화의 중심인물, 안녹산과 양귀비(楊貴妃) 그리고 당 현종(玄宗) 세 사람이 만들고 간 역사를 흥미롭게 펼쳐 놓는다. 이외에도 저자는 당대 활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복잡하게 교차시키며 그들이 직조해낸 이야기를 충실히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역사’, 문학이 되다


『비단 버선은 흙먼지 속에 뒹굴고』는 기본적으로 역사서이지만, 문학적 성격이 책 곳곳에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약간의 소설적 형식을 빌려 역사를 이야기처럼 전달하는 것이 필자로 하여금 빠르게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럼 책의 내용을 좀 더 내밀히 살펴보도록 하자.
 

 

“천보 14 재 11월 9일, 안녹산에게 운명을 결정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날 아침 일찍이 그가 전폭적으로 신뢰하여 부자군이라 명명한 친위대 8천여 기마대를 중심으로, 한병과 번병을 합해 15만 또는 20만을 칭하는 대군이 오늘날의 북경 부근인 근거지 계성을 뒤로하고 장사를 이루며 일제히 남하하기 시작했다.” (p.11)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문학적인 표현으로 시작하며, 읽는 이의 이목을 끈다. 안녹산의 거병 모습을 비장미 있게 묘사하는 이런 방식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훌륭한 첫 문장’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저작의 문학적 감각이 묻어 있는 문장은 안녹산 난의 전개와 심화 그리고 마무리 과정에 이르기까지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해 역사 속으로 우리들을 몰입시키곤 한다.

더욱이 저자는 옛 문헌과 문학 작품들 속의 문장을 인용하며, 다채로운 표현의 형식을 끌어내고 있다. 『자치통감』을 비롯해 『구당서』, 『신당서』 등 안녹산과 관련한 다양한 사료들을 인용하여 문학적 감성을 역사 서술에 혼합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안녹산은 수레에 몸을 싣고, 앞뒤로 보병과 기병의 정예군을 당당하게 따르도록 명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래 먼지는 사방에 자욱하고 북소리는 천지를 진동했다.” (p.11)
 
 
저자는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저서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등장하는 난의 시작 묘사와 백낙천(白樂天)의 ‘장한가’(어양의 북소리가 땅을 울리며 들려 온다)를 통해 역사 서술의 문학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그 이후의 서술에도 찾아볼 수 있는데 몇 가지 사례를 짚어보자. (※여기서 짚은 것 이외에도 저자는 다양한 문학적 사료를 이용하고 있다.)
 
 
①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어원을 설명하며 한 무제 때의 궁정 시인 이언년이 미모의 여동생(훗날의 이부인)을 무제의 첩으로 천거하려는 속셈으로 시를 지은 것을 일려준 것(p.45쪽) 
② 개원 치세에 대해 칭송하는 두보의 시(p.83)
③ 이임보가 ‘롱장’의 경사에 대해 알지 못한 것을 『시경(詩經)』을 직접 인용해 설명해준 것(p.99)
④ 안녹산과 양귀비 그리고 당 현종 사이의 흥미로운 일화에 대해 『안녹산사적』을 바탕으로 소개(p.108~114)
⑤ 양귀비와 당 현종의 관계를 암시하는 이백의 시(p.126~127) 
⑥ 『안녹산사적』에 실린 반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불렸다는 동요(p.154)
⑦ 『양태전외전』을 바탕으로 양국충과 괵국 부인의 최후 묘사(p.187)
⑧ 『군담채여』에 수록된 ‘양비라말’(양귀비의 버선) (p.190)
 

이처럼 저자는 다양한 문학적 사료를 바탕으로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역사의 면면을 되살리는 시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렇듯 다양한 문학 사료를 활용해 자신의 역사 서술을 뒷받침하고자 노력했을까? 아마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추론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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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바로 이 책이 ‘인물사’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안녹산과 양귀비 그리고 당 현종이 중심이 되는 이 책은 저자와 옮긴 이가 밝혔듯, 인물의 행적이 중심 내용이다. 따라서 저자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대부분 정사(正史)에서 끌어오면서도, 문학 작품과 야사(野史)에 등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짚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역사 서술의 폭을 넓히는 좋은 선택이었다.

특히 양귀비와 안녹산 그리고 당 현종은 당대와 후대까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왔던 만큼 많은 문화(특히 문학 작품) 속에서 등장한다. 이러한 이채로운 문학 작품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저자의 의도처럼, 각 개인의 구체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개인사)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두 번째는 바로 고대사라는 특징 때문일 것이다. 필연적으로 사료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고대사 연구에선 합리적인 역사 연구자의 추론(상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사료와 사료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선 때론 역사가가 그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 『비단 버선은 흙먼지 속에 뒹굴고』의 저자 후지요시 마스미는 문학적 사료를 바탕으로 통찰이 돋보이는 새로운 역사 해석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인식이 독자들에게 상당 부분 합리적으로 들리는 까닭은 그 다양한 문학적 사료가 기반이 된 역사 인식이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공백의 기억을, 문학은 지금껏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전달해왔다. 후지요시 마스미는 이러한 문학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다시 말해, 역사적 사실의 전달에 있어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신선한 조미료를 첨가할 줄 아는 능숙한 면모를 뽐내고 있다.
 
 
 
‘역사가’의 적극적 해석

 

저자 후지요미 마스미는 책 여기저기에서 적극적인 자신의 해석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해석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자의 자세는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줄 뿐 아니라 비판적으로 바라볼 기회 역시 부여한다. 특히 양귀비와 안녹산의 출신에 대한 논쟁에 관해서 저자는 다양한 설들을 소개함과 동시에 자신이 생각하는 합리적인 결론까지 설명하고 있다.

 

“안녹산의 출생의 비밀을 전하는 근본 사료로는 세 가지가 있다......뒤에 소개하겠지만 얼핏 비굴하게 보이는 그의 언동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오만불손하게 여겨지는 것도 적지 않다. 그것은 안녹산이 이러한 가계를 배경으로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 그가 번병을 중심으로 하는 반당 집단을 만들어 당에 반기를 들게 되는 배경에는, 중국인에게 잡호라고 업신여김을 당하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 품고 있던 출신에 대한 자부심과 그가 북쪽 국경에서 기반을 쌓을 무렵 멸망하는 돌궐의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야망이 있었을 것이다.” (p.31~32)

 

 

“그렇다면 양현요와 양현염 중 누가 양귀비의 친아버지일까? 『개원천 유보사에도 양현염이 아버지라고 되어 있으니, 일단 양현염의 딸로 보자......양귀비는 원래 양현요의 장녀였는데 현종이 수왕으로부터 그녀를 빼앗아 후궁으로 맞이할 때 세간에 퍼지는 것을 꺼려하여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하여 양현염의 막내딸로 꾸몄다고 보는 견해이다......이 견해는 타당성이 있다. 이에 대해 오카모토 고이치는 참으로 기발한 견해를 내놓았다......양귀비는 원래 이름 없는 인도차이나계 집안에서 태어났고, 수왕의 비가 될 때 가계를 만들어 양귀비가 태어나기 직전에 죽은 생면부지의 양현염을 가공의 아버지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재미있는 만큼 지나치게 기발한 얘기라는 느낌이 든다.” (p.49~50)

 

 
이처럼 저자는 안녹산의 태생에 대해 가장 유력한 ‘풀리블랭크의 설’과 이와 다른 설들에 대해 다루며, 자신만의 해석을 밝히고 있다. 양귀비의 아버지에 관해서도 두 가지 설을 이야기하며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현종의 관대한 조치가 더 적절했다. 어떤 일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법을 적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어려우며 시점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그 평가도 달라지게 된다.” (p.80~81)

 


또한 저자는 안녹산이 한 번의 패전을 경험하자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것을 현종이 구해준 일에 대해 적절한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결과적으로만 보면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켜 현종을 위기로 빠뜨렸음에도, 저자는 그 당시의 판단이 합당했다고 말하며 반란과 이 사건에 대한 연결성을 차단해버린다. 이렇듯 역사적 사건에 적극적인 평가를 내리는 후지요시 마스미의 역사 해석론은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를 통한 메시지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다.
 
 

시각적 자료를 통한 역사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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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책의 사진 및 그림 자료 활용일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진과 그림을 적절히 사용하며, 읽는 이들을 위한 편의 역시 고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안녹산의 반란’(p.12), ‘양귀비가 현종에게 불려가다’(p.86), ‘안녹산의 죽음’(p.204) 등의 삽화는 독자로 하여금 당시의 모습이 어땠을지 짐작해볼 수 있게 하는 상상의 가늠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양귀비 가의 가계도, 각 지역의 모습과 유물을 담은 사진 그리고 안녹산과 현종의 이동 경로를 담은 지도 등도 선보이며 읽는 도중, 집중을 환기할 수 있게 해줬다. 이처럼 다양한 시각 자료를 활용하는 저자의 모습은 역사를 실감 나게 받아들이고 체감할 수 있는 특별한 ‘인지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책의 성격이 일반 대중을 위한 ‘계몽서’인지 아니면 ‘전문학술서’인지 그 구분이 모호하다. 그렇기에 일반 대중들이 읽기에는 난해한 용어들이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등장해 사전을 찾아보는 수고가 들었다. 한편, ‘전문학술서’의 관점에선, 그 내용이 충분히 담겨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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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필자는 책에서 안녹산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너무 차별적이라며, 그를 이해하는 다층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필자 역시 안녹산이 그의 배신 행적과 이민족 출신으로 인한 차별이 역사적 사료에 드러나 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필자는 안녹산의 난을 ‘민족투쟁’으로 바라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지 않으냐는 지적을 전하고 싶다. 안녹산이 난을 일으킨 가장 주요한 동기는 ‘양국충(楊國忠)’과의 갈등이었음은 확실하고, 그 반란의 동인을 추론함에서도 분명 이것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앞서 설명한 문학적 요소의 도입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올 위험도 존재한다. 주지하다시피, 역사 서술은 어느 정도 인정되는 객관적 사실이 기반이 돼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제목에서부터 각 장(章)에 이르기까지 문학적 요소를 곳곳에 포진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학적 감각과 저자의 적극적 해석론이 결합해 독자들에게 자칫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존재하는 듯하다.
 
 

더 나은 역사 서술을 위해서

 

『비단 버선은 흙먼지 속에 뒹굴고』는 문학적 요소, 저자의 적극적인 해석론 그리고 시각 자료가 조화롭게 결합해 역사를 바라보는 좋은 시선을 보여줬다. 비록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 후지요시 마스미의 역사관은 이후의 역사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한다. 또한, 필자 개인의 입장에서도 유물사관 뿐 아니라 인물사에 초점을 둔 이런 저서가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그가 본문에서 자신의 역사관을 드러낸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맺자.
 

 

“사료의 진위 여부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존의 사료를 반박하는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한 큰 모순이 없는 범위에서 현존 사료를 무리 없이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분적으로 픽션이 보인다고 하여, 사료 전체를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p.36)

 

 
궁극적으로 팩트 체크의 여하에만 천착해 역사 서술을 전개하기보다는, 큰 모순이 없다면 현 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을 펼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단순한 사료의 나열에서 한 걸음 나아간 역사 서술을 보여준 책 『비단 버선은 흙먼지 속에 뒹굴고』의 목소리는 필자에게 아직도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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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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