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새 해니까, 1월 동안 읽은 책들을 태블릿에 적어본다면?

일년동안 함께 할 내 무의식 찾아나서기
글 입력 2022.02.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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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라도 실천하면 소원이 없겠네!



1월 1일은 결심의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결심의 대단원을 올리는 첫 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인생은 온라인과 달리 리셋 혹은 삭제 버튼이 없다. 이 때, ‘날짜’는 관념적으로 리부팅을 할 수 있도록 정도의 객관성을 가진 도구가 되어준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도 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성공적인 리부팅을 매 년 거쳐온 소수의 인간들과는 다르게 대다수의 사람들은 설 즈음이면 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조상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다. 왜 연말연시만 되면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의 다이어리를 찾아 나서는 길에 반도 채우지 못한 지난 다이어리를 재활용 쓰레기통에 넣겠는가? 미래의 자기에 대한 기대와 매년 실패한 결심들에 대한 망각의 콜라보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권고되곤 하는 ‘작은 일부터 성취하기’는 사실 누구나에게 권장하는 삶의 태도이다. 거창한 목표를 이루려는 결심은 보다 세부적인 계획이 따라붙는다. 목표 설정 과정에서 이미 에너지는 소진되고 있다는 말이다. 또 그 목표에는 마음의 총량 중 꽤나 큰 부분을 내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3일만에 바닷물이 바로 들이닥친 모래 위에 쌓은 모래성처럼 바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절망감이 이후의 추진력까지 저하시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순서의 도치가 올 해 계획의 성취율을 높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나오게 된 생각의 경로를 이야기했다. 새 해의 가장 거대한 목표로의 한 걸음 전에 연초에 짧고 굵게 성취감을 먼저 부여해보는 실험을 게시했다. 동시에 현재의 자신이 어떤 마음인지 들여다 볼 수 있으면 더더욱 좋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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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셜록'

 

 

각자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은 개개인마다 다르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생각의 물질화’를 철저하게 활용한다. 대표적으로 영국 B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셜록> 시리즈의 주인공 셜록 홈즈의 경우, ‘기억의 궁전’을 이용한다. 즉 기억이나 생각을 제목이 달린 파일철, 사진 등 현실에 있는 물건들이지만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상상의 물질에 기록하고 다시 상상의 창고 혹은 도서관 등의 장소에 정리해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물질화하지 않는 대표적인 인간임과 동시에 내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무의식 수준까지 유추하고 감정을 치료하고 예방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심리학과 출신의 인간이다. 심리학과와 떼고싶다 한들 뗄 수 없는 프로이트가 의식 수준을 설명하는 빙산구조에 따르면 인간 의식은 지각할 수 있는 ‘의식 수준’과 기억과 지식이 저장되어 있는 ‘전의식 수준’과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 욕구가 포함되어 있는 ‘무의식 수준’으로 구분된다. 생각이 물질화되었다한들 절대 모를 ‘나’에 대해서 알기 위해 프로이트는 꿈을 분석했고, 행동을 관찰했다.


건축학자 유현준은 자신의 생각의 흐름을 인지하기 위해 책을 읽은 순서대로 선반에 올려둔다. 내가 1월간 내가 관찰한 나의 행동은 바로 이것이다. 일 년 간 업무와 관계 없는 책을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겠다는 예상불가의 긴 기간의 결심을 분철했다. 1월 간 최대한의 휴가를 받아 5권 이상의 책을 읽고 지난 1년 간 소진되었을 나의 정신 상태를 파악하고, 나의 무의식 욕구를 알아주고, 이 짧은 계획을 성취한 자신감을 기반으로 그 이후에 올해의 계획을 세워보자. 그럼 2022년의 이 몸을 한 층 더 잘 운영할 수 있을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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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차이나는 클라스'

 

 

 

한 달 동안 읽은 책들을 태블릿으로 기록해두면 보이는 것들



우리가 누구인가? 마케팅 대상으로 용이하게 묶이곤 하는 MZ세대 아닌가? 포노사피엔스(Phone 핸드폰 + Homo Sapiens 호모 사피엔스)로서 도구의 발전에 적응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실제 선반은 물론 태블릿도 이용해보기로 했다. (휴가를 간 장소에서는 책장을 이용했지만 집에 돌아가 읽었던 책들을 정리하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사실 내 거주공간에 있는 책장의 컨셉은 책을 마구잡이로 꽂아 스스로의 너드미에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창 포트폴리오를 위해 라이프 로깅(Life-logging, 일상의 정보를 디지털 기기에 기록하는 것)에 대한 의무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던 불쌍한 N포 세대의 잠재적 취준생인 대학생 시절에 생긴 습관이 있다. 한 번이라도 본 영화와 책들에서 인상깊었던 구절은 모조리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적어두고 블로그에 전체 공개로 기록해 두었다.


안타깝게도 자기PR 시대에 내 예술적 경험들을 활용하기에 내 기억력은 좋지 않았다. 위의 과정을 거치면 같은 구절을 세 번 이상 보게 되므로 최소한 한 문장은 기억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기록 또한 나의 알찬 삶의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작년에 엉망이 된 생활 리듬 덕분에 이 노예 생활을 거의 청산했는데 최소한의 교양 있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도의 스마트폰 메모 습관만은 남았다. 이 습관과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인 ‘필사’가 1월의 성공적 경험을 위해 결합했다.


내 블로그 기록에 있던 한 가지의 문제점은 500타 이상을 가진 나에게 문장들을 곱씹을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 땐 기록이 중요했고 지금은 아니었다. 외적인 PR 요인보다 내적인 성장 동기 요인이 더 절실했고 손글씨를 통해 의미를 새기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에 초점을 두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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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손글씨를 쓰는 매 순간 매 초 그 문장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럴 수도 없을 뿐더러 글씨를 쓰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면 결국 기계적인 순간이 온다. 나는 항상 기계적이고 단순한 일들을 즐겼다. 사람은 생각보다 아무 생각이 없는 순간이 없다. 자기 전까지도 오늘의 일을 정리하는 사람들마저 있는데, 생각을 멈추는 방법을 찾는다면 기계적인 일을 찾아보기를 추천한다. 괜히 “이별 후에 일로 잊었다”는 이들의 증언이 많은 것이 아니다. 아무튼, 필사는 한시간에서 두시간 가량 걸리는데 모든 집중력을 총동원할 의무는 당연히 없음을 말하고 싶었으며, 그 모든 과정이 ‘의미 있는 문장 적어보기’에 포함되고 오히려 ‘효과’라고 일컫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찾은 의미 있는 구절은 아주 짧을 수도, 매우 길 수도, 아주 평범할 수도, 문장이 아닐 수도, 문장의 중간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작가나 번역가를 존중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의 목적은 ‘나의 무의식 찾기’이므로 오히려 그런 특성들이 드러난 글들이 더 높은 수준의 표상화가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필사 작업이 완료되면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스마트폰 메모장을 보는 것과는 다르게 매 글귀가 애착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그리드 누네즈가 쓴 책을 읽은 뒤의 감상물의 나열임에도 아예 새로운 글이 하나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는 시한부를 통보받고 스스로 생을 마감할 날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친구의 곁을 지키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서술되었다. 그러나 나의 필사물을 보면 죽음에 관련한 내용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오해와 상처, 용서 따위가 주로 기술되어 있다. 내가 최근 이별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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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이별에 대한 집중도는 굉장히 낮아진 편이다. 지난 한 달 간 읽은 책들과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시간 순서로 배치해보았다. (포노사피엔스이기 때문에 책장 사진이 아닌 태블릿 작업물을 첨부했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오후의 이자벨’은 연애소설이며, “과거를 회상하지 말자.”라는 말을 제목 밑에 적어두었다. 상단의 책들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다. 자아 등과 관련된 내용일 뿐만 아니라 충돌을 두려워하는 문구들을 ‘인상 깊었다’고 메모해 둔 것을 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후 가장 최근에 읽은 카르스텐 드세의 ‘명상살인’, 로베르트 제탈러의 ‘들판’,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까지 넘어오면 평소 가장 흥미로워 하는 죽음과 관련된 책들임이 보인다. 완전히 이별에 대한 생각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사건을 받아들이고 전진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꽤나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 인지치료(심리적 치료 기법의 하나로 환자가 스스로 상황을 인지하도록 하는 방법)에서도 회복과 성장의 과정을 되짚어 보도록 권장하는 만큼 아주 좋은 시각화 도구로 꾸준하게 활용해 볼 생각이다.

 

 

 

기록, 그리고 그 후?


 

최초의 목표로 돌아가보자. 나의 정신 회복 상태를 파악하고, 무의식 욕구를 찾고, 짧은 계획의 성취감으로 올해의 계획을 세워보자. 이별의 여파는 잔여물로 남아있으며, 내적인 성장을 욕구하며, 상황에 따라 더욱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싶어한다(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차승민의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르베르트 제탈러의 ‘들판’ 메모 문구 기반하여 유추). 선택을 해야 할 때임을 인지하고 있다.(파울로 코엘료의 ‘브리다’, 카르스텐 드세의 ‘명상살인’, 시그리드 누네즈 ‘어떻게 지내요’ 메모 문구 기반하여 유추.)


이후 실제로 올해 마무리 해야 하는 대형 작업물이 3개 이상이며, 내적 성장까지 하고 싶은 욕심을 정리해 세부 계획이 마무리되었다. 무의식에 대한 인지는 한층 더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으며 성취감과 한 데 잘 버무려졌다. ‘생각의 물질화’ 이후의 무의식 탐구가 아닌 무의식 탐구 이후의 ‘생각의 물질화’를 진행한 이 큰 실험 또한 좋은 마무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올해 연말에 또다시 좋은 시각화였다고, 유지하고 싶은 연 단위의 습관이었음을 회상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적어도 이 길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일 테니까.


12월 31일은 마무리의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시간을 정리하는 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월 1일과 단 몇 시간 차이 난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는 날이다. 리셋을 기대하는 날이다. 그러나, 인생은 온라인과 달리 리셋 혹은 삭제 버튼이 없다는 것을, 올해의 내가 해 온 것을 기반으로 1월 1일의 나와 대화하게 됨을 다시금 알게 되는 날이다. 적은 양이면 그것대로,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면 그것대로, 누적량 위에 쌓아나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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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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