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다이어리 기록 [사람]

글 입력 2022.02.02 14:4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22년의 한 달도 훅 지나갔다. 이십 대 중반을 지나는 시점에서 되돌아보니, 체감상의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나이를 먹을수록 지수함수 개형으로 빨라지는 듯하다. 2022년 야심 차게 새해 인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국식 새해 인사를 다시 주고받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올해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는 다이어리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쓰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덜렁거리는 성격을 가졌으며, 무언가를 시작하는 추진력은 좋아도 뒷심이 부족해 매듭짓는 일은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다이어리 쓰기라는 활동도 예외는 없었다. 실제로 다이어리를 예쁘게 꾸미면서 자신만의 소확행을 누리는 친구들이 많았고, 문화예술이든 시각적으로 '예쁜 것'에는 뭐든 관심 있었던 나는 언제나 흥미롭게 바라보긴 했다. 매년 말마다 예쁜 다이어리가 한가득 진열된 큰 문구점을 구경하면서 이번에는 다이어리를 한 번 열심히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매년마다 하나쯤은 산 것 같긴 하다. 그런데 기록은 언제나 일주일도 가지 않았다. 하긴 수험생 때도 공부를 잘했던 편이었지만 스터디플래너도 쓰지 않았다. (일을 하는 지금 되돌아보니 도대체 어떻게 플래너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수험생활을 보냈나 싶다.) 공부가 전부였던 생활을 할 때에도 스터디플래너를 쓰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특별한 일 없이 다이어리를 써 나가는 것이 손에 안 익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올해 들어서는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과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다. 작년 12월 말에 생애 첫 인턴으로 입사를 한 후, 기록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업무 하면서 마주한 모든 것들이 상상 그 이상으로 새로웠고, 어딘가에 적고 적은 것들을 보면서 끊임없이 복습하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매일매일 기록하는 공간이 없으면 그대로 일하는 것들이 휘발되어 다이어리를 '필수적인 목적'으로 구하기 시작했다. 1년을 쭉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인턴십을 수행하는 3개월 동안은 꾸준히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바로 괜찮은 다이어리를 찾아 나섰다. 적어도 3개월은 쭉 쓸 다이어리니 아무 종류나 대충 구입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좋아하는 가수의 2022년을 알리는 시즌 그리팅 예약 구매 소식을 들었던 참이었다. 아티스트의 다이어리를 직접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다이어리에 아티스트의 사진을 붙여놓으면 매일 보는 행복감을 자주 느낄 수 있다는 친구의 말도 구매에 힘을 실었다. 시즌 그리팅 콘셉트를 활용한 자체 콘텐츠도 유튜브에 공개됐는데, 역시 잘 만든 콘텐츠의 힘은 위대했다. 가격 때문에 망설였던 나는 콘텐츠 시청 후 바로 예약 구매를 했다.

 

업무 2주 차 때 예약한 시즌 그리팅이 도착했다. 요일별로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존재하는 다이어리에 할 일을 기록하는 것은 꽤나 짜릿했고 기분도 정말 좋았다. 그런데 쓰다 보니 다이어리는 하루하루의 감정을 기록하고 꾸미는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할 일을 쓰는 용도로만 끝나버리니 아쉬웠다. 시즌 그리팅 다이어리가 단순히 큼지막한 분리된 칸들로만 구성되어있어 이 다이어리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용 다이어리로 쓰고, 스케줄을 정리하는 다이어리를 새로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턴 입사 초기라 굉장히 정신이 없었고 연말 시즌이라 북적거리는 거리에 나가기도 싫어서, 인터넷 서핑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 년 동안 볼 만큼 나의 취향을 충족시키는 표지와 구성을 찾아다녔고, 수많은 후보들을 추리고 소거한 끝에 핑크빛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이렇게 두 개의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둘 다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던 중, 나의 생각이 한창 많아 두 번째 다이어리에 모두 담지 못하는 상황이 많음을 느꼈다. 조금 더 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다이어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엔 연희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직접 눈을 보고 표지의 질감을 파악하여 종이질이 괜찮고 표지에 나만의 각인을 새길 수 있는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이렇게 세 개의 다이어리에 꾸준히 기록 중이다. 첫 번째 다이어리는 할 일 기록용, 두 번째 다이어리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간단한 데일리용, 세 번째 다이어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다이어리에서 차마 담지 못했던 모든 내용을 다루는 종합용으로. 이렇게 다이어리를 구매할 때부터 한 권 한 권에 나의 생각과 손길이 닿았고, 까다롭게 구매한 만큼 아주 잘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131.jpg


 

첫 번째 다이어리 -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 - 내가 지금 수행 중인 인턴은 전면 재택근무라 출퇴근 시간이 소요되지 않아 시간 관리를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주변 정리를 하는 등 여유롭게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 출근 시간도 늦어서 기상 시간에 전혀 부담이 없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오늘의 할 일을 리스트업 하는 일부터 업무는 시작된다. 고심 끝에 고른 다이어리에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검은색 볼펜으로 할 일을 깔끔하게 정리한 다음 할 일을 마칠 때마다 유색 볼펜으로 체크 표시를 해 주는데, 완료된 일과 남은 일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업무 효율을 따져 일의 순서를 결정하기도 한다.

 

두 번째 다이어리 -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 퇴근을 하면 하루가 어느 정도 끝났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이 인턴이기에, 그날그날 업무를 하면서 느낀 점이나 깨달았던 점들을 기록 중이다. 매번 반복되는 업무에 쓸 말이 없어질 만도 한데, 어찌 1달 반을 근무한 지금도 매번 다른 느낀 점이 계속 생긴다. 입사 초기에는 퇴근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 자리에서 그대로 누워 넷플릭스를 보기 바빴다. 그래도 자기 전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으로 두 번째 다이어리에 기록을 남기는 걸 절대로 빼먹진 않았다.

 

한 달 동안 남긴 기록을 다시 되돌아보는데, 글씨가 점점 작아지는 게 흥미롭다. 느끼는 점도 많고, 기록하는 방식 또한 점점 요령을 터득하는 모습이 보였다. 글씨를 최대한 줄여도 내가 평소에 느끼는 생각들을 다 담지 못한다는 생각에, 세 번째 다이어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다이어리 - 복잡한 생각들을 뱉어내고 정리한다. - 행동과 생각의 총량은 어느 정도 보존돼서 행동이 많으면 생각이 적어진다는데,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시기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고 있는 인턴십은 굉장히 재밌다. 일이 일 같지도 않고, 업무도 잘 맞는 듯하다. 재밌어서 생각이 많아지기도 한다. 인턴십을 수행하며 좀 더 넓어진 시야에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것들이 보이고, 그동안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이 모든 복잡한 감정들을 세 번째 다이어리에 쏟아놓아 정리한다. 두 번째 다이어리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칸에 차마 담을 수 없을 만큼 장황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어놓을 때 이 다이어리를 꺼내 든다. 꽤나 긴 분량인데 금방 채워진다.

 

나는 내 기록을 스스로 곱씹는 경향이 있다. 가장 재밌는 콘텐츠는 나 자신이 잘 만든 콘텐츠인 것 같다. 음 이런 생각을 했었군! 하고 스스로 대견해하기도 한다. 복습하고 음미하여 괜찮은 문장들, 핵심이 되는 문장들엔 형광펜도 치는 중이다. 내 생각을 글과 말로 표현하고 나의 사유를 깊게 다지는데 도움이 되어준다.

 

아무 데나 적어놓았는데 보관하고 싶은 종이들, 전시회나 공연 티켓들도 모두 세 번째 다이어리에 모으고 꾸미기와 부연 설명까지 덧붙인다. 이렇게 세 번째 다이어리는 종류 불문 내 취향의 집합소가 되었다.

 

*

 

다이어리를 쓰고 생긴 소소한 변화들이 있다.


문구류에 갑자기 손이 많이 가기 시작했다. - 쓰기 굉장히 애매했던 스티커들이 이제는 손이 많이 가기 시작했고, 오히려 일부러 예쁜 스티커들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여러 경험으로 속된 말로 '아끼면 X 된다'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생일을 축하하는 카페에 방문하여 얻었던 스티커들을 적극 활용 중이다. 형형색색 세트로 구성된 펜들을 구매했고, 마스킹 테이프나 떡메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


풀을 필통 속에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 덜렁거리는 성격 탓에 그동안 전시회나 콘서트에 다녀온 적은 많아도, 그 티켓을 한데 모으지는 않았다. 모아도 언제 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티켓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세 번째 다이어리에 붙이고 그때 느꼈던 감상을 기록한다. 몇 시간 내로 감상이 가능한 문화들은 그때 기억을 되살리지 않으면 빠르게 휘발되기 마련인데 덕분에 순차적으로 내가 방문했던 전시와 공연들을 나중에 확인해볼 수도 있다. 또한 나는 커피를 굉장히 좋아한다. 특별한 커피를 구매하면 원두의 특징을 기록해놓은 종이를 주는 경우가 꽤 많은데,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 또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이렇게 세 번째 다이어리는 종류 불문 내 취향이 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삶이 정돈이 된 느낌이다. - 다이어리를 쓰지 않았을 때는 필요할 때 그때그때 간단한 노트나 휴대전화 메모장을 활용해왔다. 그러나 이 또한 한데 모아지지 않다보니 기록을 하더라도 한눈에 파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놓치는 일들이 생기곤 했다. 다이어리는 세 권으로 나눠 기록하고 있지만, 용도가 뚜렷하게 나뉘고 주별, 월별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해야하는 일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체계적으로 계획을 짤 수 있게 되었다.

 

다이어리를 하나도 채우지 않던 내가 어느덧 세 권이나 쓰고 있고, 이 세 개를 모두 꾸준히 적극 활용 중이다. 31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첫 번째 다이어리와 두 번째 다이어리를 꾸준히 써냈다. 다이어리를 쓰는 시간이 기대되고 취미가 하나 더 생겼다. 이렇게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꾸미다 보면 가끔은 무얼 하면서 보내야 할지 모르던 나의 흘러가는 시간을 또 다른 방법으로 채울 수 있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풍요로운 사유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겉부터 속까지 나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는 올해를 그대로 기록할 세 권의(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도 다분한) 다이어리는 평생 동안 보관할 예정이고, 내 모든 순간을 소중한 영원으로 남게 할 것이다.

 

빠짐없이 알차게 채워지는 하루하루를 보면서 일종의 성취감을 얻기도 하고 이는 삶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이십 년 넘는 동안 처음 한 달 동안 해 본 일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고, 이 일은 내게 좋은 영향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생각이 더 깊은 사람이 되어서 다이어리를 미래에 보기만 해도 상황이 선명하게 떠오르도록 글을 잘 쓰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생겼다. 다이어리와 함께 성장하고 싶다. 또한 나의 성장 기록을 다이어리에 그대로 기록하여 미래의 나 자신에게 소중한 선물을 주고 싶다.



[김승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2.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