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ge를 따라서] 청량한 상큼함, 시트러스(Citrus)

시트러스에 관하여
글 입력 2022.01.3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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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고 돌아다니다 잔향 맡아보고 결정하세요”. 향수를 시향하러 가면 자주 듣는 말이다. 뿌린 직후의 향과 마지막에 길게 남는 잔향의 분위기가 전혀 다를 수 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맡아본 후 결정해야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향을 뿌렸을 때 가장 긴 시간 맴도는 향은 마지막에 느껴지는 베이스노트(Base note), 즉 잔향이다. 그렇다면 첫 향은 어떨까? 짧게 스치는 첫 향은 향기에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 아닐까?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시작이 반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많은 이야기들이 처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처음은 모든 것들의 시작이자 기초다. 그 만큼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은 것이 첫 시작인데, 이는 향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탑노트(Top note)라고 불리는 첫 향은 제품을 뿌린 직후부터 약 10분 이내까지 느낄 수 있는 향을 의미한다. 향의 지속 전체를 100 이라고 볼 때 10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즉각적으로 느끼는 향의 첫인상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향의 후기를 읽다 보면 종종 보이는 상황이 바로 탑노트에 관한 문제이다. 잔향은 너무나 마음에 드는데 첫 향이 취향에 맞지 않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첫 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향 전체의 인상이 나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기에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호불호 적은 향을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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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노트에 쓰이는 향은 주로 가볍고 싱그럽고 자연스럽다. 그런 향들이 휘발성이 강하기도 하고 호불호도 적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자주 쓰이는 노트는 바로 시트러스(Citrus)다. 감귤류를 지칭하는 뜻의 시트러스는 가벼운 향을 지녔지만 그 역할만은 전혀 가볍지 않다. 없어서는 안 될 축을 담당하고 있는 시트러스에 대해 알아보자.

 

시트러스 계열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레몬과 오렌지부터 라임, 베르가못, 자몽, 귤, 유자 등이 있다. 공통적으로 새콤달콤한 향을 지녔지만 하나하나 각자의 개성을 지녔다. 그만큼 향에 적용되었을 때도 섬세한 차이에 따라 아주 다른 분위기를 내곤 한다.

 

예를 들면, 레몬은 가장 상큼하고 깨끗한 향을 지녔지만 의외로 다른 시트러스 계열보다 연하고 달지않은 수분감이 가득하다. 향의 사이사이에 뿌연 물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오렌지는 시트러스 계열 임에도 레몬과 비교해 두드러지게 따뜻하고 달콤한 향을 지녔다. 레몬이 화사하고 깨끗하다면 오렌지는 좀 더 따뜻하고 적은 수분감으로 끈적인다. 베르가못은 시트러스 특유의 상쾌함과 함께 풀 내음이 섞여 초록빛의 상큼 쌉쌀한 느낌을 준다.

 

이를 적용해 젊고 에너지 넘치는 향에는 오렌지나 자몽을, 시트러스의 상쾌함은 원하지만 과육의 달콤함은 없길 원하면 베르가못을 사용할 수 있다. 혹은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결 같은 향에는 레몬을, 뜨거운 햇살 같은 향에는 오렌지를 적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다채롭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주방세제에는 시트러스 향을 자주 사용하는데, 시트러스 특유의 깨끗하고 상쾌한 느낌의 향취가 세정이 잘 되는 듯한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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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소개한 가죽이나 장미도 일상에서 전혀 접하지 못하는 생소한 향은 아니다. 그러나 이름을 듣자마자 향이 곧바로 떠오르진 않는다. 아주 익숙한 향이 아닌 이상 상상만으로 선명하게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들은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익숙한 향들이 머리 속에 떠오르고 코에 스친다. 그만큼 자주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접하고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함께해 온 재료로 향의 역사에서도 빠질 수 없다.

 

향을 섞어 만든 최초의 향수는 ‘헝가리 워터(Hungary water)’라고 한다. 신선한 로즈마리와 타임, 브랜디와 라임 등으로 이루어진 이 향수는 약 14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정확한 기록이 없다 보니 그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헝가리의 여왕 엘리자베스의 두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궁정 연금술사가 만들었다는 설부터 흑사병의 유행에 약으로써 개발되었다는 설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만 당시의 헝가리 워터는 치장하고 꾸미는 용도의 향보다는 약재의 역할로 쓰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들어간 재료들을 보면 허브나 시트러스로 상쾌하고 자연스러운 향들이 나쁜 기운을 몰아준다 여겼던 것이다. 최초의 향수에도 역시나 시트러스는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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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18세기에 또 한번 시트러스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인 향이 탄생한다. 바로 ‘오 드 코롱(Eau de Cologne)’이다. 지금은 향수의 부향률을 뜻하는 바로 그 단어가 맞다. 부향률이란 향수에서 알코올이 아닌 향료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데, 그 중 오 드 코롱은 대략 부향률 3-5%정도의 가볍고 연한 향수를 지칭한다.

 

하지만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오 드 코롱은 부향률과 관계없는 제품명으로 시작되었다. 오 드 코롱은 ‘쾰른의 물’이라는 뜻으로 이탈리아의 조향사 지오반니가 그가 머물던 독일의 퀼른 지역 이름을 따 지었다. 지오반니는 처음 향을 만들고는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나는 이탈리아 봄의 아침과 산속의 수선화 그리고 비 온 뒤의 오렌지 꽃을 떠올리게 하는 향기를 발견했다>.

 

오 드 코롱은 레몬, 오렌지, 베르가못, 라임, 자몽 등 많은 종류의 시트러스들로 만들어진 향이었다. 이 상쾌하고 깨끗한 향은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많은 유럽의 왕가에 납품되기도 했다. 나폴레옹은 이 향을 한달에 50병씩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레시피의 계승에 관한 논란은 있지만 여전히 오 드 코롱의 이름을 달고 출시되는 향과 브랜드가 있는 만큼 긴 역사를 지닌 향 임에는 틀림없다.

 

이처럼 향의 역사에서 시트러스는 빠질 수 없는 재료이다. 다른 향보다 적은 호불호도 큰 몫을 한다. 휘발성이 강하기에 탑노트에 사용되고 지속력이 짧아 오래 즐길 수는 없지만 향기의 기분 좋은 시작을 알리기에는 시트러스가 제격인 것이다. 호불호 적은 첫 향은 향의 구매로 이어지기도 쉽다. 또한 어떠한 향과도 잘 어우러지기 때문에 향과 향 사이의 빈 공간을 이어준다. 향을 만들 때 시트러스를 사용하면 안전하게 좋은 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도 친숙한 향이자 탑노트에 가장 많이 쓰이는 향, 시트러스. 일상 제품들 속 시트러스를 찾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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