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진으로 꿰뚫는 역사: 게티이미지 사진전

글 입력 2022.02.0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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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언젠가부터 우리 모두에게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특히 글 쓰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다. 글에서 이미지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어느 문단 끝에 어떤 사진을 넣느냐에 따라 글 전체의 몰입감이 달라지곤 한다. 평소 찍는 사진은 소재가 한정적이니, 대체로 로열티 프리 웹사이트를 뒤적이며 빈자리를 채웠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자료로 쓸 사진을 서칭 해본 사람이라면, 아주 손쉽게 그 이름을 접했겠다. ‘게티이미지’. 아직은 무료 소스로도 충분한지라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어도 꽤 익숙한 브랜드다. 스톡 사진 비즈니스의 시초 격인 게티 이미지는 생각보다 시작점이 느지막하다. 1995년,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이니 말이다. 하지만 플랫폼을 온라인으로 완전히 이동한 시기이지, 그 무렵부터 사진을 모은 게 아니다. 그리하여 현재 4억 1,500만 개가 넘는 사진, 비디오, 음악 등 디지털 콘텐츠가 게티이미지의 로고인 ‘g’를 달고 온라인을 부유한다.


디지털 자료를 수치화하는 작업은 다소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숫자는 단위를 정리하는 용도이지 실질적으로 보이는 부피가 있어야 우리는 크고 작음을 가늠한다. 그렇다면 막대한 이미지의 압도감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무작정 많은 이미지를 인화하여 벽면을 가득 메운다고 한들 관람자가 그 의도를 알아차릴까. 되레 정신없는 전시회쯤으로 각인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구성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힘과 그 사진을 한데 모은 게티이미지가 써내려 간 발자취를 우리의 역사와 연결 지어 순차적으로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섹션 구분이 명확하면서도 섹션 간 연결이 유기적이다. 그건 전시의 프롤로그에서부터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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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암실에서 In the Darkroom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 때문인가 하니, 소소한 체험 때문이다. 몇 개의 사진-정확히는 사진을 인쇄한 A4 용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 게티이미지의 로고를 새긴다. 도장을 찍는 것과 비슷한데, 그 섹션에 게티이미지가 내러티브 필름을 현상하고, 복원하고, 로고를 새기는 과정이 적혀있어 적절하고도 간단한 체험이라고 느꼈다.



섹션 1: 아키비스트의 저장고

 

기나긴 창고처럼 생긴 구조물 안으로 들어서면 섹션 1의 시작이다. ‘아키비스트의 저장고.’ 숫자가 지닌 압도적인 크기를 비좁은 전시장에서는 한 번에 보여주기 어렵다. 대신 몇몇 사진작가 혹은 언론을 소주제로 두어 그들이 찍은 사진을 차례차례 보여준다. 이로써 관람자는 느낀다. 아, 참 다양한 사람들을 사진으로 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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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튼 아카이브, 픽처포스트 등에서 선보인 사진들과 유명 사진작가들의 사진 몇 점으로 '저장고'라는 명칭에 걸맞은 구성을 보여준다. 흑백으로 가득 찬 초반부를 지나서 노랗고, 희고, 푸르고, 밝은 '수영장 가십'에 이르기까지. 단숨에 20세기를 눈에 담은 기분이었다.



섹션 2: 현대르포의 세계 The Latest News

 

그리고 섹션 2, 현대르포의 세계다. 영제인 ‘The Latest News’가 좀 더 직접적인 표현이겠다. 보도사진전을 수차례 수상한 게티이미지 소속 베테랑 기자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세계의 사건/사고를 조명한다. 여전히 문제에 문제를 겪는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로 도망친 난민 등 먼 나라의 이야기를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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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 남는 건 아마 이 사진이겠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어딘가를 응시하는 시선이 불안한 눈. 그리고 적혀있던 제목은 '절박함으로 분신자살을 시도한 헤라트 여성'이었다. 신체의 70%가 화상으로 뒤덮였다고. 그의 입가를 가린 손이 그제야 보였다. 잿더미를 떠올리게 하는 거뭇거뭇한 그을림. 제 마음을 불로 표현하는 건 얼마나 깊은 절박함인가.

 

 

섹션 3: 기록의 시대 The Age of Records


기록의 시대는 현대 르포의 확장처럼 이어지는 섹션이다. 양쪽에 아이들이 자신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가운데에 있는 어머니는 인상 쓴 얼굴로 턱 언저리를 만지는 사진을 많이들 기억할 것이다.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의 이름을 널리 알린 ‘이주노동자의 어머니’다. 다만 이 사진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기록 매체로서 미국 대공황 시기의 고난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동시에 그 사진의 주인공은 정작 아무런 수혜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사진 모델이 되었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싫어하는 사진이 전 세계를 떠돌게 되었으니, 이 또한 참혹한 실상이지 않은가.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은 현시대에 더욱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되레 자극적인 것만 추구하는 진흙탕 싸움이기도 하듯이.



섹션 4: 연대의 연대기 History Repeats Itself

 

사진은 전쟁, 고난 등 세상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연대와 혁명 등 밝은 면 또한 비춘다. 최초로 마라톤을 달리는 여성을 저지하는 심판과 심판을 저지하려는 다른 선수, ‘참정권’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시위를 펼친 에밀리. 이 섹션도 ‘History Repeats Itself’라는 영어 제목이 훨씬 섬세한 표현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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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사진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일 거다. 다른 시기, 다른 지역, 다른 환경에서 벌어진 일이 패턴을 공유하는 것처럼 생겨났다. 인간은 제각각이면서도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존재이기에 변화 또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섹션 5: 일상으로 초대 An Invitation to Everyday Life

 

천장이 넓고 한쪽 벽면이 사진과 비디오로 가득한, 마치 19세기 살롱 같은 '연대' 섹션을 지나 백남준의 '다다익선' 같은 공간에 이르렀다. 자그마한 액자에 담긴 층층의 사진들. 해변, 놀이기구, 서핑, 길, 그리고 우리의 또 다른 일상이 된 마스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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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마스크는 역사의 반복을 떠올리게 한다. 독감이 심하게 유행하던 1930년대의 사진이 지금 우리 눈엔 다른 이유로 읽힌다. 끔찍한 일은 역사의 한 대목에만 존재하길 바라지만,  손 쓸 수 없는 일들은 다시금 찾아온다.


흑백으로 물든 기나긴 역사를 보다가 컬러로 가득한 마지막 전시 공간을 보자니 기분이 아연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이 색색으로 물든 것 같아서. 이미지로 들끓는 세상에서 오래간만에 그 너머에 깃든 의미에 집중한 시간이었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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