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대 뒤 진짜 이야기 - 언더스터디

글 입력 2022.01.2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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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스터디]-캐릭터-포스터_공유.jpg

 

 

브로드웨이의 한 공연장, 곧 리허설이 시작될 예정이다. 적막을 깨고 한 남자가 총을 들고 등장한다. 남자의 이름은 해리. 그는 제이크의 언더스터디(understudy), 즉 대역이다.

 

제이크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 출연하여 개봉 첫 주에 9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꽤 인기 있는 스타이다. 해리는 그런 제이크가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섬세한 감정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폭발음이 가득한 할리우드의 액션 영화에서 하는 대사라곤 고작 '트럭에 타'가 전부인 그를 과연 진정 배우라고 할 수 있을까?

 

사라진 소품 총을 가지고 있던 얼빵한 쟤가 내 언더스터디라고? 제이크는 자신의 언더스터디로 이름 모를 무명 배우 해리가 캐스팅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불쾌하다. 아니, 할리우드에서 개봉 첫 주에 9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나 같은 대배우의 언더스터디가 고작 저런 녀석이라니! 이 위대한 카프카의 작품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저런 녀석이 무슨 연기를 안다고.

 

아, 잠깐! 제이크도 사실 언더스터디이다. 실제 공연의 주인공, 스타 중의 스타 브루스의 언더스터디. 그러니 지금은 언더스터디들의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바쁜 스케줄로 혹여 공연에 불참하게 될지 모르는 브루스를 위해. 그리고 이 모두를 지켜보며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록산느가 있다. 한때 배우였던, 지금은 무대 감독인 록산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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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더스터디> 공식 스틸컷

 

 

해리, 제이크, 그리고 록산느.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 사람 모두 연기를 향한 타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배우이다.

 

무명이지만, 나름의 연기 철학을 가지고 인기를 위한 연기가 아닌 연기를 위한 연기를 고심하고 또 고심하는 해리. 할리우드 상업 영화의 덕을 톡톡히 본 액션 스타이지만, 실은 마음속에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작품에 대한 갈망을 감추고 있는 제이크. 비록 생계를 위해 무대 감독이 되었지만, 여성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언제든 펼쳐 보일 준비가 되어있는 록산느.

 

이들을 한데 모은 카프카의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갈등을 촉발하는 자극제이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세 사람이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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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더스터디> 공식 스틸컷

 

 

개인적으로 제이크의 서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할리우드 스타라는 간판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에 굉장히 자랑스러움을 느끼지만, 그 누구보다 카프카의 작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모습. 이깟 브로드웨이의 공연장은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이 연극은 좋은 연극'이라 목청 높여 소리치는 모습. 짝이 안 맞는 양말처럼 말과 행동이 다른 그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은 누구보다 순수 예술을 사랑하는 배우이면서... 언제부터 세상이 정한 성공의 기준에 자신을 욱여넣게 된 것일까? 작품 이전에 스타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일까? 천상 배우인 그의 눈을 멀게 한 그것이 무엇인지, 모두가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그것이 참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안다. 이 또한 이상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사회의 잣대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닥쳐올 현실에 대해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순수하게 표현하는 해리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한편으로 무책임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무책임은 때로 자신을 넘어 타인의 삶까지 아프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본능에 충실한 삶이 그리 멋있지 않은 이유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제이크는 이 점에서 적절한 타협을 한 사람이었다. 예술을 사랑하지만, 예술이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사회의 기준에 맞춰 어느 정도의 성공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해리를 제치고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

 

비록 성공의 맛에 취해 스스로를 속이는 우를 범하긴 했지만, 적어도 이상에 빠져 현실을 등한시하진 않았다. 이것이 대본의 디테일에 지독하게 집착하는 그를 나무랄 수 없다는 이유, 그의 예술에는 현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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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언더스터디> 공식 스틸컷

 

 

모든 것이 끝난 후,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제이크를 나는 꼭 안아주고 싶었다. 생에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있는 그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작품에 대한 애정을 목놓아 울부짖었던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이제는 홀로 설 수 있는 배우가 되기를. 세상이 말하는 훌륭한 작품이 아닌 제이크 본인에게 훌륭한 작품을 자신 있게 선택하고 그 안에서 마음껏 연기할 수 있다면, 주인공이든 누군가의 언더스터디이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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