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22 사사로운 한 해 목표

글 입력 2022.01.1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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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이면 한 해의 목표를 메모장에 정리한다. 계획성이 영 꽝인 나조차도,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1월 앞에선 매번 막무가내가 된다. 그 어떤 달보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을 수 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생기니까. 매년 설레는 마음과 기대감을 안고 지난 12월부터 곰곰이 생각해오던 목표를 차근차근 적어 내려간다. 오랜만에 작년의 한 해 목표를 적어둔 메모장에 들어가 보았다. 달성한 것보다 이루지 못한 목표가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는 탓이겠지. 그래도 연초까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값진 일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온 덕에 큰 미련은 없다.

 

미련.. 그런데 정말 미련이 없나? 가슴에 손을 얹고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속으로 여러 번 되묻다 보니 아무래도 이 ‘미련 없음’이란 말은 2021년이 그 어느 해보다 형편없었다는 걸 포장하기 위한 거짓말처럼 들렸다.


작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나? 1월이 되자마자 ‘책 몇 권 이상 읽기 ‘무슨 무슨 자격증 따기’ ‘꾸준히 글쓰기’와 같은 (다소 뻔하디뻔한) 목표를 정해두지 않았나. 그러나 연초 계획을 모두 이룰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 찬 것도 잠시였다. 3월에 본격적인 학기가 시작되자 불과 몇 개월 전 과거의 내가 무리해서 한 학기 시간표를 짰다는 걸 깨달았다. 교양과목 없이 오로지 전공과목으로만 초과 학점을 꽉꽉 채워 넣다니. 당시엔 무슨 패기로 그런 패기로운 시간표를 짰는지 모르겠다만. 학기가 끝날 때쯤엔 완전히 번 아웃(burnout)이 와버렸다.

 

1학기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번 아웃의 기세는 2학기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어쩌면 1학기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학업에 대한 집중도가 날이 갈수록 떨어지니 점차 취미 생활의 영역으로 현실 도피를 했다. 매주 노트북 언저리에 쌓여가는 과제와 강의 수만큼 영화를 보아댔다. 영화제 자원봉사를 하고, 시험 준비 기간임을 애써 무시한 채 영화제 기간 내내 미친 듯이 영화만 보러 다녔다. 한 해에만 300편에 달하는 영화를 보다니. 무언가에 단단히 홀린 것 마냥, 나의 일상은 그렇게 영화, 영화, 또 영화로 잠식되어갔다. 매 시험 기간에 행해졌던 얕은 벼락치기 수법은 학기 말 최악의 학점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렇다고 마냥 영화 본 시간을 후회하느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거니와 공교롭게도 작년부터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면서 영화에 대한 폭넓은 식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에디터 활동의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을 준 수많은 영화 인사이트가 없었다면, 분명 초기만큼 만족스러운 글이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2021 한 해로만 놓고 보자면, 딱히 이렇다 내세울 만한 대단한 성취가 있는 것도 아니니. 내게 2021년은 그 어느 해보다 영화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해이자 동시에 현실에서 외면한 것들에 대한 기억을 애써 묻어두고 싶은 해이기도 하다. 작년 초부터 학업으로 인한 번 아웃을 겪은 탓에 더는 무리한 계획이나 추상적인 목표로 한 해를 시작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올해만큼은 욕심을 덜어내고, 예년과는 다르게 분기별로 목표를 잡아보았다. 월 단위로 적은 세부 목표도 있지만, 분기를 통합해 올해 달성하고자 하는 큼지막한 목표 3가지를 적어본다.


 

 

1. 책 50권 이상 읽기



얼마 전 브런치에서 ‘10년 동안 책 670권을 읽으면 일어나는 일’이라는 글을 보았다. 작가님은 글 초입부에 ‘솔직히 670권을 다 읽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했다. 비록 모든 책을 꼼꼼히 읽어보진 못했을지언정 그 수많은 책을 향해 일일이 손을 뻗은 작가님의 열정이 더 빛나 보였다. 지난 10년간 누군가는 끊임없이 독서 생활을 이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무척 감명 깊게 와닿았다. 해당 글에서 유수진 작가님은 꾸준한 독서를 통해 얻게 된 삶의 변화와 통찰을 제시한다. 글을 읽으며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오랜만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현재의 독서 자극제가 되어준 해당 글과 유수진 작가님께 감사를 드린다.


독서 목표를 잡기에 앞서 인터넷에 ‘평균 독서량’을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에 따르면 2021년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는 13세 이상을 기준으로 7권이란다. 2011년 평균 12.8권에 비하면 2배 언저리로 떨어진 수치이다. 해가 갈수록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 현실 하며 불과 10년 사이에 반 토막 난 독서량 그래프가 마치 나의 독서 상황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가만 보자. 내가 작년에 7권 이상을 읽었었나? 필요한 부분만 드문드문 찾아 읽은 전공 서적을 제외하면 딱 작년 평균치만큼 읽은 것 같다. ‘평균 미만은 겨우 면했군’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근데 이것밖에 안 읽었다고?’라는 자괴감이 쏟아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니 주말마다 공립도서관을 찾았던 초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연간 독서량의 몇 배는 가뿐히 해치웠던 것 같은데 말이다. 10권도 채 읽지 못한 작년 독서량과 비교하면 올해는 과연 ‘책 50권 읽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최근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금 깨닫는 중이니 ‘올해의 나’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2. 제2외국어 자격증


 

중고등학교 때부터 제2외국어에 관심이 많았다. 좋아하는 과목이 무엇이냐 물으면 1초 고민도 없이 ‘영어’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일상처럼 사용하는 자국어의 틀을 벗어나 타국 언어를 익히고, 공부하고, 입으로 직접 내뱉는 행위가 늘 새롭고 즐거웠다. 비록 학창 시절에는 시험 기간마다 몇십 개의 영어 지문을 무의미하게/기계적으로 외울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영어를 공부하는 시간이 좋았다. 영어도 그런 나의 관심과 애정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매번 내게 만족스러운 성적을 쥐여주었다. 영어를 향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제2외국어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 가을 무렵에는 시험이 끝나고 직접 제2외국어 과외를 찾아 친구와 함께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생겨난 제2외국어에 대한 관심은 대학 입시가 끝나고서까지 이어졌다. 고3 수능이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으로 곧장 강남의 어학원으로 달려갔다.


아침부터 강남으로 부지런히 출근 도장을 찍으며 스페인어 학원에 다니고, 독일어 학원을 등록하고, 이후에는 프랑스어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기도 했다. 몇 달간의 짧은 경험을 통해 마주한 유럽 언어는 무척 낯설었다. 그러나 각 언어만이 지닌 독특한 분위기와 발음은 나를 한순간에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학업 생활과 아르바이트로 더는 학원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지만, 제2외국어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은 여전하다. 그래서 올해는 관련 자격증을 따고 싶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저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라는 일념을 가지고서 말이다. 기초 수준의 외국어 역량을 인정하는 초급 자격증일지라도 올해 내로는 제2외국어 자격증을 하나 따보리라 다짐해본다.

 

 

 

3. 새로운 취미



현재 취미를 되돌아보자. 영화 감상과 (근래 시작한) 독서, 간헐적인 운동, 그리고 공연 보러 다니기 정도가 될 것이다. 사실 ‘공연 관람’은 영화만큼이나 좋아하고 오랜 나의 취미이기도 하다. 수많은 공연 중에서도 나는 해외 가수가 한국에 방문하여 무대를 펼치는 내한 공연을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코로나 발발로 인해 근 2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페스티벌이나 콘서트 한번을 가지 못했다. 2020년을 기점으로 해외 팝가수의 한국 방문이 뚝 끊기게 되었으니 상황은 더욱 암담할 수밖에 없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부터 내게 콘서트는 당해 분위기를 좌우하는 가장 큰 행사나 다름없었다.

 

매 분기 (심지어는 수능이 끝나지 않은 고3 시절에도) 부지런히 콘서트 갈 채비를 하고, 몇 달간 가사를 외우고, 공연 당일에는 스탠딩(서서 콘서트를 보는 좌석) 입장을 위해 밖에서 덜덜 떨며 몇 시간을 기다리던 것이 도대체 언제 적인지! 설렘과 활기로 가득 찼던, 몹시 아쉽고 그리운 나날들이다. 부디 공연장에서 목청껏 소리 지르고 방방 뛸 수 있는 날이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회복되기를 바란다. 언젠가는 코로나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보며 올해는 공연 관람을 대체할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서고 열심히 발굴해낼 예정이다.


현재 가장 눈독 들이고 있는 활동은 단연 전시 관람과 악기 배우기다. 얼마 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한 ‘살바도르 달리전’을 방문했다. 이전부터 전시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해당 전시는 그런 나의 어림짐작이 틀렸다는 걸 여실히 증명해보였다. 발걸음을 멈추고 몇 분 동안이나 지긋이 쳐다보게 만드는 작품이 있었는가 하면, 옆에서 전시를 관람하던 한 관람객분의 말을 듣고나서야 방금 지나친 작품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가의 예술적 표현을 알아차리기도 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욱 많은 전시를 찾아다니고 싶다. 혹은 예전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기타를 무작정 시작해보거나. 아니면 혹시 아나. 작년의 무기력을 벗어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달리기처럼 또 하나의 운동이 또 다른 취미가 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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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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