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세게 넘어지기 [영화]

십 대의 나를 일으켜 세운 사람들, 영화 '미드 90'
글 입력 2022.01.0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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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없이 가슴을 뛰게 만드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영화가 있다. 영화 [미드 90] 속 소년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린다. 통 큰 청바지에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운동화를 신고, 머리에는 비니를 쓰고 90년대의 힙합을 배경음악으로 한 채.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지 않는가. 90년대 스트릿 컬쳐가 하나의 트렌드로 떠올라 버린 지금, [미드 90]은 분명히 “쿨”한 영화다. 뉴트로(new+retro)를 표방한 콘텐츠들은 많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콘텐츠만큼 90년대라는 시대에 대한 이해 없이, 시대의 피상적인 면만을 가져오는 콘텐츠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미드 90]은 90년대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졌다.

 

“90년대”에 왜 현대의 젊은이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90년대의 패션 스타일, 90년대의 음악, 스케이트보드 등 90년대를 이끌었던 스트릿 컬쳐는 그 시대의 십 대로 살아본 적 없는 현세대의 젊은이들에 의해 다시 향유된다. 유독 “90년대”의 복고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90년대의 문화가 상징하는 것들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90년대의 문화를 소비함으로써 세기말 90년대 청춘들이 가지고 있었던 조금은 불안하지만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소비하고자 한다. [미드 90]은 1990년대 LA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스티비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그의 친구들, 스티비와 그의 형의 일상을 VHS 카메라로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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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90]은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머니볼” 등으로 유명한 배우 “조나 힐”의 영화감독 데뷔작으로, 조나 힐이 감독과 각본을 맡고 A24에서 제작했다. 90년대를 직접 피부로 느꼈던 조나 힐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세상을 만났고, 영화를 만들며 마주하기 싫었던 10대의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스케이트보드를 탔기 때문에 평생 갇혀 살 수도 있었던 인종 및 사회경제적 버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의 세계가 정말로 넓어졌다”라며 [미드 90]을 이끌어가는 소재가 되는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본인의 애정을 말한다.


조나 힐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한 [미드 90]을 실제 95년도 카메라와 16mm 필름으로, 4:3 화면비로 촬영했다. [미드 90]은 90년대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영화다. [미드 90]의 등장인물들에 유독 정이 가는 것은 이들이 유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바탕으로 창작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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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90]의 등장인물들은 우리의 유년기를 스쳐 지나간 누군가와 닮아 있다. 주인공 스티비는 유난히 체구가 작은 소년이다. 유독 순수해 타인마저 무장해제 시켜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스티비는 그런 부류의 소년이다.

 

어머니와 형과 함께 사는 스티비는 자신에게 차갑게 대하는 형에게 형이 가지고 있지 않은 음반 CD를 선물해주기도 하며 형과 가까워지려고 하지만, 형은 여전히 스티비를 찬밥 취급한다. 스케이트보드 가게에서 마주친 소위 “쿨”한 무리와 친해진 스티비는 의도치 않은 순수함과 엉뚱함으로 형과 비슷한 나이대의 소년들과 금세 가까워진다.


소년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소년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스티비의 친구가 된 소년들은 각각의 개성과 캐릭터 성이 넘친다. 무리에서 가장 스케이트보드를 잘 타는 “레이”는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준다. 레이는 스티비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무리에서 가장 쿨하고, 마냥 노는 것만 좋아할 것 같았던 레이는 스케이트보드를 진심으로 좋아해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며, 진지한 자세로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형과 사이가 좋지 않은 스티비에게 레이는 새로이 등장한 우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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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는 필요한 시기에 스티비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며 스티비가 너무 비뚤어진 길을 가지 않도록 잡아준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지만, 막연히 잘 살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사람이 있다.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더라도, 분명 멋지게 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 있다. 레이는 우리 삶을 스쳐 간 그러한 존재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를 가장 많이 성장 시켜 준 가장 고마운 사람들은 레이를 닮아있다.


긴 곱슬머리에 비니를 쓰고 다니며, 여자에게 가장 인기가 많지만, 항상 술과 약에 취해있는 Fuck shit, 항상 캠코더를 들고 무언가를 찍으며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말수 적은 4학년, 그리고 무리에서 유일하게 스티비의 또래이자 스티비에게 먼저 다가와 준 로빈. 하지만 로빈은 무리의 형들이 스티비와 더욱 친해지는 것 같아 보이자 어린 마음에 스티비를 질투하기도 한다.


형과 싸우다가 얼굴이 얻어터지기도 하고, 로빈과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세게 넘어져 이마가 깨지기도 하고, 술을 마시고 파티에 가며 여자와 자고, 술에 취한 Fuck shit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하며 스티비는 90년대의 여름을 보낸다.

 

극 중 레이는 보드를 타다가 넘어져 다친 스티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처럼 세게 넘어지는 사람은 처음 봤어.” 유독 세게 부딪치고 넘어지며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미드 90]에서의 스티비는 그런 존재다. 남들보다 더 순수하고 작은 소년은 전력을 다해 부딪치며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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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고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꼈던 스티비는 사실 모두의 삶에는 아픔과 성장통이 있음을 알게 된다. 엄마와 싸우고 부루퉁해 있는 스티비에게 레이는 무리에 속한 친구들의 삶에 대해 말해준다. 싸우기만 했던 형은 형이 어릴 때 엄마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이해해준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런 나를 다시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사람이다. 이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소년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더웠던 90년 LA의 여름, 성장한 것은 스티비 뿐만이 아니다. 술을 마시고 취한 채 들어와 형과 싸운 스티비를 본 후 스케이트보드 가게를 찾아와 친구들을 윽박지르던 엄마는, 이들이 사고를 당한 스티비를 병원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본 후 10대들의 우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스티비를 무시하고 때렸던 형은 차 사고를 당하고 병실에 누워있는 스티비에게 오렌지 주스 한 병을 건넨다. 또래 집단 사이에 감도는 질투심과 패배감, 사춘기의 미묘한 감정 갈등들로 인해 사이가 틀어져 가던 소년들은 스티비의 사고를 계기로 그동안의 묵은 감정이 부질없었음을 깨닫고, 다시 하나로 뭉친다.


영화는 4학년이 찍은 등장인물들의 필름 편집본을 보여주며 끝맺는다. 저화질 카메라와 서툰 편집으로 구성된 이 영상을 끝으로 영화는 마지막까지 그때 그 시절 향수를 추억한다. [미드 90] 속 보드를 타는 소년들을 보다 보면 그들의 우정과 젊음이 영원하기를 바라게 된다. 이미 지나가 버린 90년대처럼, 아마 영화 속 소년들도 이제는 훌쩍 자라버렸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 울적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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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90]은 배경이 되는 90년대의 세기말 어딘가 어수선하고 경계에 놓인듯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해 향수를 극대화한다. 특정한 시기에만 형성할 수 있는 관계가 있고,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영화 속 소년들의 크레딧이 올라간 후 이야기를 알 방법은 없다. 소년들은 우정을 유지하며 어른이 되었을 수도 있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삶이 바빠져 자연스레 멀어져 서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만 하는 사이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소년들은 자신들의 십 대와 90년대를 떠올릴 때, 이를 함께 나눈 사람들을 추억할 것이다. 소년들의 기억 속에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영원히 살아있다.


세 번 정도 [미드 90]을 연달아 다시 보았고, 나는 한 손에 오렌지주스를 든 채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싶어졌다. 타지도 못하는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어딘가 어색한 비니를 쓴 채로 스티비와 레이, 4학년 그리고 로빈의 무리와 친구가 되고 싶어졌다.

 

삶은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넘어지고 부딪히는 과정의 연속이다. 깨지고 넘어지는 우리를 다시 보드 위에 세우는 것은 사람들이다. 문득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나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미드90] 속 등장인물들 같았던 십대들은 다들 자라서 무엇이 되었나. 우리는 모두 가슴 속에 한 편의 VHS 필름 같은 추억을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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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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