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시절, 그 노래들. [음악]

아빠의 시절은 노래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글 입력 2022.01.0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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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 취향은 지극히 예스럽다.

 

누군가와 헤어짐을 얘기한 날은 김광석 노래를 들었고, 무더운 여름에서 쌀쌀해진 저녁 공기를 자랑하는 가을로 넘어가면 어김없이 이문세 노래를 들었다. 창문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면 유재하 노래를 꺼내 듣기도 했다.

 

비가 매섭게 쏟아지던 어느 해의 장마철이었다. 오래된 노래를 선호하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와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우리는 집 안에서 쏟아지는 비를 함께 바라보며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비 오는 날과 옛날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던 우리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각자의 감상에 빠졌다. 빗소리와 노랫소리가 절묘하게 섞여 어쩐지 조금 슬퍼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비가 올 때마다 ‘비처럼 음악처럼’을 꺼내 들으며, 그 해의 여름을 그 노래로 물들였다.

 


 

아빠의 통화 연결음


 

사실 옛날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아빠다.

 

내가 8살 혹은 9살이던 시절, 아빠의 통화 연결음은 늘 ‘Don mclean’의 ‘Vincent’였다. 아빠는 이 오래된 팝송을 굉장히 좋아하셨고, 통화 연결음으로 설정해둔 탓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노래를 자주 들어야 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 노래의 첫 소절만 들어도 약 18년 전 유선 전화기를 붙든 한 어린아이가 퇴근하고 올 때 과자 사 와, 한 마디 하기 위해 아빠에게 전화를 걸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당시 '명곡'이라는 단어의 뜻조차 몰랐던 나는 만화 ‘달빛 천사’ ost가 훨씬 좋다고 얘기했고, 아빠가 얼른 이 촌스러운 통화 연결음을 다른 노래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빠의 노래 취향은 이해할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머릿속에 촌스러운 노래로 각인된 채 까맣게 잊고 있던 이 노래를 최근에 우연히 다시 듣게 되었다.

 

몇 달 전 즈음, 친한 언니와 사이좋게 이어폰을 나눠 끼고선 함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좋아하는 건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우리는 번갈아 가며 각자 플레이리스트에 보관해둔 노래들을 꺼냈다.

 

언니가 노래를 틀 차례에, 너는 나와 취향이 비슷하니 너도 이 노래를 좋아할 것 같아,라는 말과 함께 다음 노래로 넘어갔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소복이 먼지 쌓인 어릴 적 앨범을 우연히 발견해 꺼내 볼 때처럼, 기억 저편에 있던 희미한 추억이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릴 적 우리 아빠 통화 연결음이라며 들뜬 얼굴로 얘기하다가,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노래에 집중했다. 아빠 통화 연결음 별로라고 완강하게 불호를 표하던 내게, 좋기만 하다며 장난스럽게 대답하고는 노래의 첫 소절을 흥얼거리던 젊은 날의 아빠가 떠올랐다. 분명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노래인데, 신기하게도 그날은 마음 깊숙이 노래가 스며 들었다.

 

 

 

 

 

 

웨딩 케익


 

3일 정도 본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었다.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아빠와 단둘이 차를 타고 김해 공항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라디오에서 종종 내가 아는 옛날 노래가 흘러나오면 아빠와 함께 따라 부르곤 했는데, 그날은 전인권의 ‘그것만이 내 세상’ 노래를 함께 불렀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으니 우리는 음 이탈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열창했다. 다음 노래는 뭘까, 기대하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대로 김이 새 버렸지만 아빠는 상기된 표정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트윈폴리오’의 ‘웨딩 케익’이라는 노래인데, 아빠가 옛날에 이 노래를 부르는 엄마를 보고 반했었다며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같은 직장을 다녔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사내연애를 우리 엄마 아빠가 했었다는 사실은 내게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기에, 두 분의 연애 시절 이야기를 자주 묻곤 했다.

 
회사에서 고속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산악회를 가던 날이었다고 한다. 일명 ‘고속버스 춤’이라는 것이 생겨날 정도로, 그 당시 고속버스에서는 앞에 나와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는데, 그날도 그랬다며 아빠는 기억을 더듬었다.
 
한참을 도로 위 버스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누가 나와서 노래를 하겠냐는 물음에 버스 안은 잠시 조용해졌고, 그 침묵 속에서 제가 하겠다며 손을 번쩍 들고선 당당하게 마이크를 잡던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였다고 한다. 당차게 앞으로 나온 모습과는 다르게 수줍고 잔잔하게 노래를 부르던 엄마의 모습에 아빠는 반해버렸고, 그날 이후로 아빠의 노력 끝에 둘은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날의 추억에 잠겨 한껏 신난 얼굴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하는 아빠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을 엄마의 소녀 같은 모습과, 사랑에 빠진 젊은 날의 아빠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비록 이 노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와 아빠 둘만의 시간 속에서 특별하게 존재하겠지만, 함께 노래를 듣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아빠의 과거와 나의 현재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 노래가 아니었다면 지금 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려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빠에게서 거둔 시선을 창밖 풍경으로 옮겼다. 차 안에는 흥얼거리는 아빠의 목소리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윈폴리오의 목소리가 겹쳐 울려 퍼졌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내가 어릴 때 아빠가 즐겨 듣던 노래가 하나 더 있다.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라는 노래다. 아빠는 여전히 강산에 노래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 친척들끼리 노래방을 갈 때마다 이 노래를 신나게 부르던 아빠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 또한 몇 년 전부터 이 노래를 즐겨 듣기 시작했다. 희망찬 가사로 이루어진 이 노래를 다 듣고 나면, 왠지 한층 더 씩씩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번은, 조깅을 하면서 이 노래를 들었다. 우렁찬 목소리와 힘찬 멜로디가 망설임 없이 내달리고 싶게 만들었다.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한참을 달리는데 문득, 아빠는 젊은 날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들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가 맨 처음 나왔을 당시는 1998년도였다. 내가 세상에 나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고, 아빠는 젊은 30대였다. 세상의 많은 아빠들이 그렇듯, 주어지는 여러 역할을 감당해 내기 버거울 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직장에서는 사회인으로, 집에서는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살아오며 때로는 지쳤을 아빠가 이 노래로 쉼을 얻었을 모습을 그려 본다.

 

몇 년 전, 아빠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빠가 지금 내 나이였을 때 힘든 순간이 오면 어떻게 헤쳐나갔느냐고. 아빠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답을 대신했는데,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아빠의 젊은 시절이 멀게만 느껴졌다.

 

노래를 들을 때는 조금 달랐다. 아빠의 시절을 함께 지나온 옛날 노래들을 들을 때면,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 시절을 상상하며 아득한 과거를 짐작해보곤 한다. 그러면 그의 과거와 나의 현재가 기나긴 실로 이어져있다는 것을 감각할 수 있다.

 

앞으로 얼마나 걸어가야 할지 알 수 없어도, 계속 힘차게 걸어가다 보면 그 모든 일들이 축복이 될 것이라는 희망찬 다짐으로 똘똘 뭉쳐 있는 이 노래로 위안을 얻던 젊은 날의 아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용감해지는 것을 느낀다.

 

 

 

 

여러 갈래길중 만약에 이 길이 내가 걸어 가고 있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는 꼬부라진 길 일지라도

딱딱 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수 있겠지

 


 

최유정.jpg

 

 

[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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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코듀스
    • 그시절 그노래들 이라는 제목만 보아도 코끝이 웬지 찡해오네요
      마음이 힘들었던 순간이나 기뻤던 순간에 들었던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느꼈던 감정, 공기와 감촉 냄새들까지 다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때가 좋았든 아팠든 잘 담아두고 지나왔기에 그렇게 마음에 남은 노래들은 계속 계속 다시 찾아 듣는 것 같아요.
      아버지의 시절이 노래에 고스란히 담겨있듯 우리가 함께 듣는 노래들에도 우리의 시절이 고스란히 담기고 있기에 훗날 같이 들었을때  또 어떤 감정들이 들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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