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산중호걸과 고양이 [미술/전시]

김홍도의 맹호도에 담긴 고양이의 정신
글 입력 2022.01.0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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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로퍼를 뚫고 바람이 들어오던 아주 추운 날,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마냥 걷다 보니 인왕산이었다. 너무 배부르게 먹은 터라 인왕산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기 딱 좋은 상태라며 배를 두들기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우스갯소리였지만 진짜 호랑이가 있다면 우리는 꽤 매력적인 먹잇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 속담에 대단히 무서운 것을 ‘인왕산 호랑이’에 비유하곤 했다. 옛날부터 인왕산에 호랑이가 많이 살았고, 심지어 인왕산과 가까운 궁궐까지 내려와 가축이나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왕산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반면 설화나 구전 속 호랑이는 인자함, 효, 영리함, 어리숙함 등 인간적인 면모를 두루 갖춘 존재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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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김홍도金弘道(1745~1806년경), 조선, 18세기, 비단에 먹과 옅은 색, 90.3×43.8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이러한 호랑이의 복합적인 모습은 김홍도의 그림에 한꺼번에 담겨 있다. 풍속화로 유명한 단원 김홍도는 산수, 화조, 영모, 초상 등 다양한 방면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특히 호랑이 그림에서 세밀한 표현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김홍도가 묘사한 호랑이의 털, 자세, 표정 등은 상상력이나 즉흥적인 느낌에 의한 표현이 아닌 끈질긴 관찰의 결과였다.

 

화인열전2에서 유홍준은 김홍도의 맹호도를 다음과 같이 감상한다.

 

 

“호랑이는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듯 꼬리를 바싹 치켜 올리고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데 등을 한껏 굽어 올리고 앞발에 힘을 모으고 있는 자세가 금방이라도 이쪽을 향해 치달릴 것만 같다. 호랑이의 용맹스런 모습을 포착함에 있어 힘차게 치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동작을 예견케 하는 내공의 힘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이 그림에서 놀라운 것은 호랑이 몸에 있는 털의 표현이 다. 얼핏 보기에 호랑이 몸의 줄무늬를 검정색과 갈색으로 번갈아 칠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터럭 하나하나를 일일이 헤아리듯 그렸다. 그 붓질이 몇 만 번일지 몇 십만 번일지 모르는 끔찍스런 정성과 섬세함이 배어 있다. 바로 이런 치밀함 때문에 이 호랑이는 더욱 사실감과 생동감을 얻게 된 것이니, 이 그림을 위해 단원이 지불한 공력과 참을성은 가히 영웅적인 것이라 할 만하다.”

 

 

김홍도의 그림 속 호랑이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회화에서 빠질 수 없는 점이 있다. 바로 ‘전신사조(傳神寫照)’다. 전신(傳神)이란 대상 속에 숨겨져 있는 신(神), 즉 정신을 그려낸다는 것이며 사조(寫照)는 작가가 관조한 형상을 묘사하는 것을 말한다. 즉,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형에 정신을 담아낸다는 의미다. 이는 곧 작가가 대상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서 대상의 정신적 본질을 포착해야 하며, 이때 작품은 고도의 예술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대상의 정신은 어떻게 나타내는 것일까? 인물화에 뛰어났던 중국 동진의 화가 고개지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성패는 바로 눈동자에 달려 있다.”며 눈동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서 유심히 본 김홍도의 맹호도 속 호랑이의 눈은 일반적인 호랑이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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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 김홍도金弘道(1745~1806년경), 임희지林熙之(1765~1820년 이후), 조선, 19세기 초, 비단에 먹과 옅은 색, 91.0×34.0cm, 개인 소장

 

 

본래 호랑이의 동공은 둥근데 비해 김홍도의 호랑이는 타원형의 세로 동공, 즉 고양이의 동공 모양을 하고 있다. 두꺼운 몸통과 다리, 전체적인 자태는 분명 호랑이가 맞다. 하지만 김홍도는 그림의 품격을 담게 해준다는 눈동자를 왜 고양이처럼 표현한 것일까? 사나운 맹수의 상징인 호랑이에 담긴 고양이의 정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옛 시와 그림을 가르치시던 교수님께서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볼 때마다 논어의 ‘위이불맹(威而不猛)’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위이불맹’, “위엄 있으되 사납지 않다”는 뜻이다. 이 말은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자질 중 하나를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이를 떠올리며 맹호도 속 정신을 읽어봤다. 고양이는 옛날부터 인간 밀집 구역에 창궐하는 쥐들을 잡아먹으며 인간과 공생의 형태로 지내왔다. 공생과는 거리가 멀었던 호랑이와 대비된다. 사실주의 화론을 강조하던 당시 김홍도의 이러한 표현은 아마 맹수의 왕다운 기질과 위엄을 제시함과 동시에 사람들과 친숙하고 가까운 거리에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그림 한 폭에 담아내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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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같은 시대를 살던 문인인 박지원의 단편 소설 「호질」도 떠오른다. ‘호랑이가 꾸짖다’라는 뜻이다. 이야기 중에는 유학자 북곽 선생이 동리자라는 여인과 밀회를 하다 여인의 아들들에게 쫓겨 똥통에 빠지는 내용이 나온다. 이런 북곽 선생을 마주친 호랑이는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코를 감싸 쥐고는“어허, 유자여, 더럽다.”고 한다. 북곽 선생이 위선적인 사대부 계층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당시의 발언은 꽤나 도전적이다.

 

시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꼬집을 줄 알며 새 시대의 전망을 앞장서 제시하던 연암 박지원의 호랑이. 이에 친숙하게 사람들 곁을 지키며 공생하는 고양이의 정신을 담은 김홍도의 호랑이는 뛰어난 지혜와 리더십이 특징인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와 닮았다.

 

예로부터 호랑이에 대한 사람들의 정서는 공포와 동시에 경외의 대상인 양가적인 면을 갖고 있다. 용맹하고 기백이 뛰어나며 인간을 수호하고 권선징악을 판별하는 영물로 인식되는 한편 때로는 해학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의 친구로 생활문화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왔다. 한반도 산야를 힘차게 누비던 멋지고 강한 호랑이처럼 기백 넘치는 해가 되었으면 하고 2022년 1월 1일에 모두에게 덕담을 건넨다.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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