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한 화가와 인류: 샤갈 특별전

민족과 세상에 느끼는 비애는 인류애로부터
글 입력 2021.12.29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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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오해와 정정


 

정작 작품을 잘 모르는데도, 샤갈이란 화가의 이름이 필자의 머릿속에 각인된 계기는 김춘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었다. 우연찮게 이 시를 배우게 되었는데, 대략 ‘회화적 요소를 통해 생명력을 드러낸 작품’ 쯤으로 여느 교과서 작품이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배웠으나, 배경 작품인 ‘눈의 마을’을 보고 꽤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이름이 독특하고 예쁘단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시 구절과 그림이 어땠는지 다 잊었지만, 그 이름만은 기억했다. 그러다 서점에서 샤갈의 시집을 보고는 보들레르, 릴케 등의 시인과 엮어 좋은 시를 썼던 작가 즈음으로 이름에 잘못된 정보를 덧씌웠다.

 

그리고 얼마 전,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에 가서야 잘못을 정정하고 원 정보를 되찾았다. 더 좋은 작품과 색채와 문학과 마음을 추가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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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샤갈, 그리고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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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1887.07.07.~1985.03.28.

 

 

샤갈이란 화가의 생애와 작품 경향을 설명하려 든다면 필자의 분수에 맞지도 않고, 그 내용이 방대해 피상적이거나 혹은 고루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특별전을 위해 소개할 법한 화가의 특징을 몇 개 뽑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중 하나가 민족이다. 민족은 전시 제목이 Chagall에서 그치지 않고, and the Bible까지 덧붙어 있는 이유다. 그의 삶과 그림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성서인 것은 ‘유대민족’이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1887년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그는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모세의 이름을 딴 모이셰 샤갈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의 이름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후 프랑스로 떠난 그는 새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현재 알려진 ‘마르크 샤갈’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에 모세의 모티프가 들어가 있을 만큼, 그는 유대민족의 테두리 안에서 길러졌다.

   

 

만약 제가 유대인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예술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샤갈의 말이다. 그가 말한 것처럼, 샤갈의 작품은 유대 민족과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될성싶다. 필자 또한 생명력으로 가득한 ‘눈의 마을’을 마주했듯, 샤갈은 따뜻하면서도 몽환적인 작품의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과 역사는 다면적이듯, 그의 작품이 늘 밝았던 것만은 아니다. 세계대전 전후로 유대민족이 나치에 탄압당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몇몇 작품에선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는 민족의 운명을 보여주듯 암울해지고 어두워지며 괴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2. and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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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별전은 이러한 샤갈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기회다. 분명 샤갈에게 유대민족과 유대교는 의미깊은 존재였고, 그들의 신앙과 생각이 담긴 성서 또한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성서를 재해석해 105점을 그려내기도 했을 정도다.

 

‘성서’만으로도 백여 점의 작품이 파생되었는데도, 여태 국내 전시에선 ‘성서’란 주제가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특별전에서 최초로 우리는 샤갈과 성서의 관계를 마주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일명 성서 시리즈는 이사악, 모세 등 성서 속 주요 인물들을 짚어주며 이야기별로 적게는 한 점, 많게는 열 점이 넘게 구성되어 있다. 장면별로 나뉜 듯한 느낌을 주기에 만화, 혹은 동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그림 사이에 연속성이 있다는 것은, 곧 그의 작품에 서사가 있음을 뜻한다.

 

김춘수의 시는 샤갈의 그림을 빌려 회화적 이미지를 창출해냈듯, 샤갈은 성서를 빌려 그림에 서사를 부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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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작품을 보던 와중에, 걸음을 멈춰선 곳이 있다. ‘예레미야의 애통’의 앞이었다. 전시회의 작품 중 찾아보기 힘든 유형의 작품이었다.

 

단 한 명이 그림 가득 차지하고, 그 표정이 작품 제목 그대로 애통해 보인다. 예레미야는 유대민족의 멸망을 예언했고, 그 멸망을 목도해야 함에 늘 슬퍼했다. 샤갈은 어쩌면 자신을 그 선지자에 투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작품이 그려진 시기는 나치의 치하에서 유대민족이 고통받던 즈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독 비통한 시대에 그려진 작품이 중심인 전시회라 해서 샤갈 본연의 밝고 따뜻함을 보기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샤갈은 성서에 시대적 상황을 투영하여 재해석했는데, 이는 결국 현재의 비극을 넘어, 신 아래서 평화를 되찾는 유대민족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음 또한 내포한다.

 

이를 더 확장해 인류에 대한 메세지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을 학살하는 시대에 애석해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시대를 고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샤갈의 그림을 통해 개인이 사랑하는 전체의 비극적 면모와 희극적 기대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꼭 성서와 유대민족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하는지가 의문일 수도 있겠다. 특히나 이번 전시에서 그 둘이 주 소재로 다뤄지니 말이다. 전시회에선 그런 관람객들을 위해 ‘내 귀의 미술관’을 준비했다. 성우 쓰복만이 작품에 해당하는 배경 이야기를 설명해주는데, 무료로 모두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전시회 곳곳에 필요한 설명들이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작품 감상에 큰 어려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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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특별전에서 오로지 주제인 성서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크게 네 섹션으로 나뉘어 있고, 그 중 두 번째 섹션에서 ‘성서의 백다섯가지 장면’을 주제로, 성서 중심 작품을 배치했다.

 

다른 섹션에선 샤갈이 프랑스에서 살며 애정담아 그린 작품 속 모티프를 찾아볼 수도 있고, 문학가이기도 했던 샤갈의 문학적 면모를 그림과 함께 엿볼 수 있다. 직접 판화를 만들어보는 체험장도 마련되어 있어 있다. 듣고, 만지고 모든 감각으로 샤갈의 작품을 만나 볼 기회다.

 

전시는 마이아트뮤지엄에서 21년 11월 25일부터 22년 4월 10일까지 개최된다. 작은 개인이 사랑하는 민족, 더 나아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추우면서도 들뜨는 연말연시, 차가움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샤갈의 작품을 한 번 마주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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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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