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예술 –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글 입력 2021.12.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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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



입김이 후후 나오던 날, 눈 쌓인 서울숲을 따라 전시장에 들어섰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그림에 관심이 많지 않아도 어딘지 익숙한 이름. 구글에서 작품을 검색해 보여주면 모두가 아! 외치게 만드는 유명인. 팝아트 분야에서 하나의 상징적인 이름이 된 사람.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단독 전시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가 국내 최초로 찾아왔다.

 

 

[크기변환]로이리히텐슈타인_포스터.jpg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작가에 대한 소개로 전시가 시작된다. 친구와 나란히 서서 가만히 소개 글을 읽다가, 동시에 외쳤다. ‘아! 저 인생 부러운데!’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유명해진 시작점엔 ‘이것 좀 봐 미키 Look Mickey’라는 그림이 있다. 미키 마우스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그려준 그림 하나가 미술계를 휩쓸고 그의 이름을 유명해지게 만든 것이다.

 

그 다음 해 곧바로 그는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 기회가 잡았고, 그의 작품은 개막도 전에 주요한 컬렉터들에게 완판되었다. 그야말로 예술가 인생 희망 편. 대체 어떤 그림들인지, 어떤 생각을 담았는지 하나씩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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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less, 1963

 

 

로이 리히텐슈타인 하면 만화의 장면들이 가장 먼저 연상된다. 종이 질감이 느껴지는 만화책에서 마음에 드는 한 컷을 쏙 뽑아 전시장으로 불러온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는 만화책이나 광고 이미지를 가져와 유화 그림으로 탄생시켰다. 큰 붓으로 깔끔하게 채색한 것 같지만, 실은 색점을 가득 찍는 방식을 사용했다.

 

당시 인쇄기술자였던 벤자민 데이의 이름에서 온 벤데이닷(Ben-Day dot) 기법으로, 마치 만화책이나 신문과 같이 대량생산된 사물을 만들듯, 기계적인 작업을 일부러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크기변환]로이 리히텐슈타인.jpg

 

 

그가 작품 안에 주로 담았던 주제는 전쟁 그리고 사랑이다. 당시 만화의 흔한 주제이기도 했던 전쟁과 사랑을 총과 폭탄, 인물 등의 소재를 통해 표현했다. 다양한 소재 사이사이 배치된 커다란 말풍선, 선명한 색감, 극적인 순간의 표현은 마치 눈앞에서 중요한 타이밍을 포착한 것과 같은 생동감을 전한다.


이러한 소재와 표현방식은 생생함, 역동성을 전하면서 동시에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말이다. 날서게 말한다면 기존에 다른 작가가 완성한 작품을 크게 변형하지 않고 가져온 것인데 그만의 예술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친숙한 만화를 작품으로 빚은 아이디어와 용기가 대단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왜 이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작품이라고 회자되는 걸까? 여기서 나는 문보영 시인이 그의 에세이 <일기시대>에서 인용한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떠올렸다.

 

 

바로 그 통상적인 짓을 하려고 누군가가 엄숙하게 격식을 차리고 나서는 어떤 진기함이 존재한다. 호두 한 개를 딱 소리 나게 깨뜨리는 것은 진실로 예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감히 관중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관중을 불러 모아 그들 앞에서 호두 까기를 할 엄두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만약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해서 자신의 의도를 실행에 옮기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물론 절대로 단순한 호두 까기의 문제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또는 문제가 되는 것은 호두 까기이고, 우리가 호두 까기 예술을 매끄럽게 잘해 냈기 때문에 그 예술을 못 본 척 무시해 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이 새로운 호두 까는 자가 비로소 우리에게 그 예술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 『세계문학 단편선 - 프란츠 카프카』 p.358

 

 

로이 리히텐슈타인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지만, 그가 만화의 한 장면을 예술이라 정의하고 표현하기로 선택, 호명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현대의 예술은 뛰어난 묘사 실력, 말 그대로 손재주만으로 그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작가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그의 작품에 부여한 의미와 철학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꾸미기][크기변환]체험.jpg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예술이라 말하기엔 어쩐지 너무나 일상의 것, 상업적인 것을 가져와 예술이라고 말했다. 일상에서 발견한 예술. 그 점에서 이번 전시에 마련된 체험 영역이 그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한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하나의 공간으로 주요 오브제와 함께 구성해 자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감상할 수 있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이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展: 눈물의 향기>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만화 작품뿐만 아니라 초기의 포스터, 잡지, 공예품 등을 다양하게 관람할 수 있다. 직접 그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 예술이란 무엇일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길을 걸어보길 추천한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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