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독한 소설 외길 인생, 관종 창작자가 나가신다 [문화 전반]

아마추어 소설가의 텀블벅 출판 펀딩 도전기
글 입력 2021.12.2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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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73번째 신춘문예 투고를 앞두고


 

성취감에 목말랐다. 신춘문예 투고, 탈락을 몇 해째 반복하니 당연했다.

 

중학생 때부터 소설을 썼다. 모든 게 보통이었던 내가 유일하게 소설은 잘 썼다. 고등학생 시절 대산 청소년 문학상, 경희대 황순원 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받으며 소설 특기자로 대학에 입학했다. 나에게 글쓰기를 사용하는 모든 일은 순조로운 줄 알았다. 대학에 입학한 뒤 그게 아니라는 걸 너무 빨리 깨달았다.

 

조금 솔직해져 보자면 학생 때까지 나에게 글쓰기는 대학 입학을 위한 수단이었는지 모른다. 천생 예술가인 체하며, 본질을 위한 소설 쓰기를 한다고 우겨보기도 했으나 언젠가부터 나에게 대학이 절실해졌고, 치열하게 글을 썼다.

 

성인이 된 이후로도 3년, 나는 글쓰기에 몰입했다. 대학이라는 글쓰기 동력이 사라진 이후에도 창작욕은 식지 않았다.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힘은 어디서 올까. 내가 글쓰기만 잘하는 사람이라 그런 건지 궁금했다. 그나마 잘하는 게 글쓰기니까, 오기로, 끈기로, 뭐라도 이뤄보려 악을 쓰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그런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73번째 신춘문예 투고를 앞뒀다. 여기서 포기는 아니다. 그래도 이제 진짜 생을 준비해야 할 때가 왔다. 잠깐 소설 쓰기를 놓아주기 전에 몇 년간 소설 외길 인생을 걸으며 내가 이뤄낸 것들이 제 갈 길을 찾길 바랐다. 내 책이 외롭고, 슬프거나 불안하고, 우울한 어떤 독자에게 가닿아 즐거운 위로, 그만을 위한 편지가 되어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럼 몇 년간의 지독한 내 소설 쓰기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관종 창작자'다. 창작 이후 "내가 이렇게 좋은 걸 썼어요!", "자신 있으니 읽어주세요!" 외치고 다니는 과정이 즐겁다. 내가 좋아하는 대목을 콕 집어 홍보하고, 내 책에 딱 맞는 독자를 스스로 찾는 일, 그 과정이 창작만큼이나 의미 있고, 기쁘다.

 

그렇게 텀블벅 출판 펀딩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1. 장편소설 <화니단로 여행자들>


 

마침 소설 한 편의 원고를 마무리 지었다.

 

태국의 빠이, 한국의 이태원에서 여행자로 살던 시기 쓴 소설이다.

 

여행지에서는 이상하고, 사랑스러운 이들을 참 많이도 만났다. 일주일에 딱 한 번만 제대로된 식사를 하던 환, 하루에 세 번 이슬람 사원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던 케르티, 매일 게이 클럽에 모이곤 하던 퀴어 청소년들, 평범하고도 특별한 그들의 일상은 <화니단로 여행자들>의 원재료가 됐다.

 

하필 내가 여행을 온 이 시기에, 이 장소에 함께 여행을 온 낯설고, 친근한 타인들. 우리는 어떻게 지금 여기서 만났을까, 생각하면 그들의 면면이 너무도 특별하게 반짝거려서 그들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모인 우리가 다 운명 같으니까. 

 

여행지에서 나는 그들의 일생 중 한 조각을 볼 뿐이다. 그밖에 내가 모르는 무수한 영역은 애정을 담아 상상하곤 했다. 그 무한하고, 즐거운 상상으로 <화니단로 여행자들>을 썼다.

 

세계 각지의 요리로 매일 다른 메뉴를 선보여 팔던 활기찬 음식점 '메이창', 빠이 야시장에서 500원 남짓에 팟타이를 팔았던 뜨거운 공간 '루미콧', 여행하며 오래 머물렀던 게스트 하우스 304호. 이제는 익숙하고 그리운 여행지의 공간들도 <화니단로 여행자들>을 상상하는 배경이 되었다.

 

여행지 곳곳,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그 공간과 그 사람들은 선뜻 화니단로에서 생동하게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 되어 주었다.

 

덕분에 화니단로는 시끌벅적하고, 다채로운 공간으로 채워졌다.

 

 

 

2. 기묘하고, 유쾌한 여덟 빛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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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니단로 여행자들>은 1장부터 4장까지 장마다 5개에서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는 소설이다.

 

'온라인으로 고민 상담을 해주는 신당방', '공을 심으면 손가락이 자라나는 오렌지 나무', '체코에서 온 비디오 아티스트의 조금 이상한 작업물',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이 겹쳐지는 장소', '이상하고, 웃긴 사람들이 모여 하루를 마음껏 낭비하는 게이바 브리즈' 등 화니단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흥미롭게 전달한다.

 

<화니단로 여행자들>은 영진, 천우, 주몽, 해영 네 명의 방랑자들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이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공간을 관통하며 "칸"이라는 미지의 인물의 행적을 뒤쫓는데, 그 과정에서 화니단로에 일어났던 화재사건의 전말이 천천히 밝혀진다.

 

1장은 화니단의 여행자 영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열 살 무렵 기억을 잃고, '관점의 집'에서 유년기를 보낸 영진. 그녀가 열네 살이 되던 해, 영진을 자꾸만 찾아오던 사람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해영.

 

 

나는 해영을 언젠가부터 엄마라고 불렀다. 해영은 나보다 고작 여덟 살 많은 엄마가 되어주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싸웠다. 해영과 내가 모녀 사이라는 증명이 내게는 매 순간 필요했다. 싸움을 할 땐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했고, 감정의 밑바닥까지 보였다. 그런 순간마다 해영이 나의 진짜 엄마처럼 느껴졌다. 나는 해영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해영이 나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래서 나를 버리게 된다면 그건 전부 해영의 죄라고 탓하려 했다.

 

- <화니단로 여행자들>, '우리에게는 증명이 필요했다' 중에서

 

 

영진은 해영의 부탁으로 "칸"을 찾기 위해 화니단로에 가게 된다. 화니단로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진의 목소리로 소설의 문이 열린다.

 

2장은 화니단의 여행자 천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화니단에서 운명처럼 달기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달기는 한순간 사라져 버리고, 그 상실감에 한참을 헤어나오지 못하는 천우. 달기는 "칸"을 찾기 위해 화니단로에 왔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에서 온 영진도 "칸"을 찾고 있다고 한다. 천우는 영진에게 달기가 쓰던 방을 선뜻 빌려준다. 달기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칸을 찾기 위해, 그리고 달기를 찾기 위해.

 

 

적당히 미지근한 온도로 몸을 깨끗이 씻었다. 한 달 만에 머리도 감았다. 두피 끝에 머리카락이 다 엉켜서 샴푸 거품을 낼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웅큼씩 뽑혔다. 머리를 몇 번이고 감아도 기름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바리깡을 가져와 한 달간 자란 머리를 밀었다. 민들거리는 민머리를 만져보았다.

(...)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삶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회복된 뒤 남은 삶. 그것이 너무 좋아 죽을 수조차 없었다.

 

- <화니단로 여행자들>, '천우' 중에서

 

 

3장은 화니단로의 여행자 주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달기의 온라인 신당방 단골인 주몽. 그는 일주일 만에 20kg이 찌기도 빠지기도 하는 사람이다. 20대의 찬란한 시절, 그는 체코에서 온 비디오 아티스트인 도피도바와 사랑에 빠져 한 시절을 낭비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3년이란 시간을 체코에서 그저 흘려보낸 주몽이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달기를 찾기 위하여.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내 몸이 이렇게 뚱뚱해진 건 내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어서일까. 이 이야기를 어쩌지 못해서 이렇게 살이 쪄 버린 건 아닐까. 내 몸에 품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 <화니단로 여행자들>, '주몽' 중에서

 

 

4장은 화니단의 여행자 해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해영은 필연적 이끌림으로 화니단에 갔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그리고 그녀는 오랫동안 화니단로에서의 시간을 잊지 못하고, 칸을 찾아 헤맨다.

 

 

나는 희미한 빛을 향해 헤엄친다. 버려진 우주선의 문을 열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람들은 부엌에 모여 둥근 볼에 부침가루와 부추를 넣고 섞은 뒤 휘젓고 있었다. 거대한 프라이팬 위에 식용유가 지글거리며 가열되고, 그 위로 부침개 반죽이 얇게 펼쳐졌다. 칸, 칸이다. 칸이 내 손을 잡고, 나를 식탁으로 이끈다.(...)

 

기름 냄새와 말소리가 텅 빈 공간을 메운다. 그들은 나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는 잠시 여행을 멈추고, 이곳에서 그냥 맛있는 걸 좀 먹기로 한다. 그래도 괜찮지? 그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 <화니단로 여행자들>, '이 고단한 여행을 멈추고' 중에서

 

 

칸에 대하여 독자들이 알 수 있는 사실은 그가 화니단로의 한 게스트 하우스 304호에 살았다는 것뿐이다.

 

칸은 304호를 304호일 수 있게 한 사람이다. 그이기도, 그녀이기도하다. 나이도 이름도, 공백투성이이다. 그는 시간을 초월해, 네 명의 여행자들을 화니단로에 초대한다. 그를 중심으로 <화니단로 여행자들>은 진행된다.

 

 

 

3. 넉넉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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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꾸리고 준비해 텀블벅 펀딩 사이트 '공개 예정' 프로젝트에 내 소설이 자리를 잡았다.

 

한 해가 끝날 무렵, <화니단로 여행자들>의 펀딩이 시작한다. 나는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한다. 펀딩이 진행되는 한 달, 나는 수도자의 마음으로 소설을 퇴고하고, 오탈자를 찾아내며 보낼 것 같다.

 

텀블벅 펀딩을 준비하는 동안 나에게 소소한 변화들이 있었다.

 

먼저, 도서출판 '유원지'의 사장이 됐다. 발품을 조금 팔고, 매년, 이 만원 남짓의 세금을 내면 출판사 사장이 될 수 있다. 폼에 죽고 폼에 사는 나에게 출판사 대표의 칭호를 이렇게나 쉽게 주는 한국은 생각보다 살만한 나라가 아닌가 생각했다.

 

처음으로 해본 일들이 많다. 처음으로 인쇄소에 출입했고, 처음으로 대대적으로 내가 쓴 소설을 홍보했으며, 처음으로 인디자인과 포토샵 툴을 다뤄봤고, 처음으로 디자이너를 모집하고, 그에게 임금을 지불했다.

 

결과물로 남은 처음들은 언젠가는 부끄러운 과거가 되더라도 지금의 나에게는 최선의 성취다.

 

 

 

 

소설의 오프닝 영상도 제작했다. 온갖 외국어가 난무하는 공간, 한참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다 못해 어딘가로 떠나가는 사람이 등장하는 이 영상이 <화니단로 여행자들>의 분위기를 적절히 담아내기를 바라며 제작했다. 마지막으로 책을 홍보하는 사이트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모든 과정을 거치며 여러 감정이 공존한다. 내 소설이 수많은 타인에게 가닿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공포와 설렘이 가장 크다. 텀블벅 준비를 막 시작했을 때는 조급했다. 짧기도, 길기도 했던 내 소설 세계를 책 한 권에 다 담아내야 할 것만 같았다. 책을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펀딩 준비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은 마음이 넉넉하다.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 쓰기 말고도 잘하는 것이 꽤 많다는 것. 소설 쓰기가 아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는데도 소설이 쓰고 싶다. 이 마음 덕에 이번에 펴내는 소설책이 마지막 책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나는 어디에서든 쓸 것이고, 아무튼 소설가로 살 것 같다.

 

지독한 소설 외길 인생, 관종 창작자가 나가신다. 길을 비킬 사람도, 긴장할 사람도 없다. 화니단로에 푹 빠져 즐겁게 웃고 울 독자님들만 있다.

 

마음속에만 품어둔 세계가 있나요? 그렇다면 낭만과 환상의 세계, 화니단로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기묘하고, 유쾌한 사건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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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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