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햄버거 엔터테인먼트의 힘 -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 [영화]

1편 : 추억과 함께 아는 맛으로 돌아오다
글 입력 2021.12.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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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는 엔터테인먼트다!



나는 프랜차이즈 햄버거를 좋아한다. 맥도날드, 버거킹, 맘스터치, 롯데리아. 가리지 않고 다 먹는다. 혼자밖에 볼 일이 있어서 돌아다닌다거나, 약속 시간이 애매해서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지도 앱을 켜서 ‘햄버거’를 검색한다. 맥도날드나 버거킹이 있으면 땡큐, 둘 다 없다면 아쉬운 대로 롯데리아.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한 손을 꺼내 키오스크를 툭툭 누르다가 신메뉴가 있으면 그걸 먹고, 아니면 와퍼나 빅맥 같은 시그니쳐 메뉴를 시킨다. 집에서 뭘 시켜 먹을 때도 마땅히 당기는 게 없다면 햄버거. 오늘은 좀 거하게 시켜먹을까 싶으면 앞에 재료명이 와다다 붙은 와퍼를 시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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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햄버거에 진심이다.

 

 

왜 그렇게 햄버거를 좋아하냐면, 첫째는 입맛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는 맛이 일정하니까. 내 입맛은 부처님 손만큼이나 관대하다. 아예 못 먹을 음식이나 괴식이 아니라면 잘 먹는다. 심지어 맛없는 음식이라도 ‘먹어보면 맛있지 않을까’하고 꾸역꾸역 먹기도 한다.

 

자유분방한 입맛 덕에 하루에 메뉴만 겹치지 않는다면 3일 내리도 똑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햄버거의 가장 큰 매력은 ‘일정한 맛’이다. 재료가 상하거나, 주문이 밀려 햄버거가 식지 않는 이상 빅맥은 빅맥 맛이고, 와퍼는 와퍼 맛이다. (심지어 식어도 그 맛이다. 온도의 문제일 뿐) 외국 어디를 가던 햄버거의 맛은 기대를 충족한다. 과거의 먹었던 맛의 기준치를 엄청나게 뛰어넘거나, 미달하는 경우가 극히 적다는 뜻이다.

 

지인들에게 ‘햄버거는 완전식품이고, 엔터테인먼트다’라는 궤변을 늘여놓기는 한다. ‘완전식품’은 햄버거의 섭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나의 몸에 대한 변명이긴 하지만,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은 나름 진중한 생각 끝에 나온 결론이다.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고,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엔터테인먼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프렌차이즈화’라고 생각한다. 언제 내놓아도 고정 고객은 물론 잠재된 고객들도 소비할 수 있게 하는 것. 철저히 소비자들 중심으로 내놓되, 자기만의 강점을 지녀야 한다. 와퍼 맛이 다르고 빅맥 맛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시장을 너무 의식하거나 프랜차이즈의 결에서 벗어나게 되면 ‘밀리터리 버거’같은 괴식이 나올 수 있으니 늘 자사의 이미지를 고려해야 한다.

 

잘 만든 프랜차이즈는 햄버거여야 한다. 속 재료를 바꾸더라도, 자신들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부분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 그게 양상추건, 브리오쉬 번이건, 와퍼 패티이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과 <아케인>은 훌륭한 햄버거다.

 

 

 

우리가 늘 먹던 맛이 아니지만...


 

MCU는 영화 엔터테인먼트 계의 완벽한 햄버거로서 입지를 다졌다. <아이언 맨>으로부터 시작한 어벤져스 사가는 대중들에게 ‘믿고 보는 MCU’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일단 ‘MCU’ 딱지가 붙어있으면 망설임 없이 고를 수 있게 된 셈이다.

 

거기다가 각각의 작품들이 연속성이 있다 보니 어린이 세트 장난감을 모으듯이 하나하나 관람하게 된다. <어벤져스> 트릴로지의 성공은 MCU가 만든 최고의 햄버거 세트였다. 영화 관람료 하나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MCU는 자신들이 지금껏 낸 메뉴에서 최고의 재료들만 모아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최선의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줬다.

 

근데 곤란한 메뉴가 하나 있다. 바로 <스파이더맨>이다. 복잡한 어른들의 사정으로 <스파이더맨>은 MCU가 아닌 SONY에서 이미 두 번이나 프렌차이즈화 됐던 히어로다. 그것도 무려 20년 전에 말이다. 관객들이 기억하는 <스파이더맨>은 ‘짠 내 나고, 불행하지만, 심성은 착한’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이다.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이란 완벽한 프랜차이즈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입맛에 길든 고객층들에겐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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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하고 잔망스럽지만

내가 알던 스파이디가 아니야..

 

 

관객들이 스파이더맨에게 기대하는 맛은 무엇일까. 바로 ‘고난과 역경, 불행’이다. 스파이더맨은 짠 내 팍팍 나는 소시민적인 히어로다. 히어로 역할도 해야 하고, 학업에도 충실해야 하면서 월세도 내야 한다. 거기다가 연인과의 원만한 연애도 신경써야 하고. 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것으로 보였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엔드류 가필드도 연인인 그웬 스테이시를 구하지 못했다.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은 3편으로 어느 정도 고난과 회복의 서사를 완성했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흥행에 실패해 앤드류의 스파이더맨은 상처만 입은 채 시리즈가 끝나버렸다.

 

MCU의 스파이더맨은 ‘전통적인’ 스파이더맨에서 벗어나 있다. 앞선 두 명의 스파이더맨에 비해 가정도 화목한 것 같고, 대인관계도 완만하고, ‘토니 스타크’란 든든한 조력자도 있다. ‘친절한 이웃’이란 이명에 어울리지 않게 입에 물고 있는 수저들이 하나같이 번쩍번쩍 빛이 난다. ‘히어로’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고, 전작의 스파이더맨 들이 겪었던 깊은 고뇌도 없다. 철없는 어린애가 방방 뛰어다니는 느낌이고…. 내가 원한 맛은 이게 아닌데.

 

<어벤저스> 인피니트 사가의 중역을 맡았던 아이언 맨, 토르, 캡틴 아메리카 세 히어로는 모두 전통적인 영웅 서사를 통해 캐릭터 성이 단단해졌다. MCU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어벤저스>를 위해 스파이더맨의 캐릭터 성만 주목받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 보니 정체성이 모호했다. 히어로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스파이더맨도 아닌, 그저 토니 스타크의 아들과 같은 존재.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에서 나름 스파이더맨이 겪는 나름의 고충을 다뤘지만, 그것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아이언 맨과 엮여있었다는 점에서 ‘MCU 스파이더맨’이란 혹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번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의 주요 과제는 톰 홀랜드의 미성숙한 스파이더맨이 완벽한 홀로서기를 통해 진정한 히어로로 거듭나게끔 하는 것이었다.

 

 

 

잘 만든 영화의 맛이 아니라 익숙한 맛이라서


 

이것부터 말해야겠다.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스파이디를 비롯해 모든 인물이 평면적이고, 스파이더맨의 영웅적 극복을 위해 소비된다. 플롯은 어떠한가.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좋은 남자친구, 히어로, 친구, 조카가 되고 좋은 대학에도 가고 싶은 피터 파커의 순수한 이기심이 부른 대참사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넓은 아량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피터 파커가 지구를 구한 위인이 아니었다면? 기존 스파이더맨의 팬이거나 MCU 팬이 아닌 사람들이 보기엔 이기적인 주인공이 자신이 벌인 일에 합당한 책임을 치르는 것으로 보일 만한 영화다.

 

근데 누가 햄버거를 먹는데 재료 하나하나를 따지는가. 먹고 맛있으면 장땡이지. 재료보단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는 맛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은 MCU 프랜차이즈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스파이디 세트였다. 팬들이 원하는 것들로 꽉꽉 채워져 있고, 기존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대한 존중과 애정도 듬뿍 담겨 있다. 거기다가 MCU 스파이더맨에게 결핍되어 있던 영웅 서사까지 챙겼다. 이런 영화에 개연성과 완성도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프랜차이즈가 가져야 하는 건 팬서비스와 일정한 맛이다. <어벤저스> 트릴로지가 그랬듯이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은 MCU가 가장 잘하는 것들로만 버무려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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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의 표준이 되어버린 토비 맥과이어


 

개봉 직전부터 멀티버스를 예고하며 기존의 스파이더맨 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루머가 떠돌았다. 자연스레 팬들의 기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는데,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충분했다. 세 스파이디의 액션이 뇌리에 남지 않는 점은 아쉽지만, 실사 배우들이 직접 한 자리에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이전 시리즈에 대한 예우도 갖췄다. 세 명의 스파이디 중 가장 노련하고, 경력도 오래된 토비 맥과이어는 톰 홀랜드에게 스파이더맨의 신념과 같은 ‘불살 주의’에 큰 깨달음을 줬다. 불행한 채로 시리즈의 막을 내린 엔드류 가필드는 MJ를 구함으로써 불완전한 자신의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은 갈피를 못 잡고 달리는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있는 대로 벌려놨다. 욕심 많고 어린 스파이더맨의 선택이 나은 결과는 참담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그런 스파이더맨의 선택을 무조건 지지한다. 이 점에서 관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어벤져스> 선배님들과 토니 스타크로부터 보고 배운 것들은 어디 가고 자기 좋은 대로, 멋대로 행동해버린다.

 

 

 

모양도 냄새도 스파이더맨인데 그 맛이 아니라고요?

그럼 추억 특제소스를 부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프랜차이즈의 힘이 작동한다. 평면적이고, 직선밖에 모르는 이야기 흐름 속에서 과거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요소들이 하나하나 작동한다. 그 중심에는 영원한 스파이더맨의 숙적 윌리엄 데포의 그린 고블린이 있었다. 스파이더맨의 정의감을 시험하고,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인물. 20년 전 빌런을 데려와 스파이더맨의 내적 성장을 이룬다. 스파이더맨 주변 인물들만큼이나 평면적인 경력직 빌런들 중에서 그린 고블린은 단연코 독보적이다. 과거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을 도덕적 딜레마에 빠트린 것처럼, 톰 홀랜드의 메이 숙모를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스파이더맨에게 큰 시련을 안긴다.

   

근데 문제가 있다. 상영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톰 홀랜드가 내적 성장을 이루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여기서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 들이 등장한다. 그리운 얼굴들은 톰 홀랜드에게 그들이 겪은 시련들을 하나둘 얘기하며 위로해준다. 이 시리즈의 팬이라면 그때부터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의 단조롭고 조악한 플롯은 무의미해진다. MCU 스파이더맨이 가진 유일한 약점인 ‘스파이더맨스러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명제가 토비 맥과이어와 앤드류 가필드란 치트키로 완벽히 보완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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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쉬하고 멋졌지만 씁쓸히 퇴장했던 스파이더맨, 앤드류 가필드

 

 

결말에 이르러서 톰 홀랜드는 선배들과 비교도 안될 만큼 처참한 현실에 직면한다. 토비가 아무리 생활고에 시달리고,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애인이 속을 썩였어도 그런대로 꾸역꾸역 살만했다. 앤드류는 그웬이 죽었지만 시리즈 중 가장 유쾌하고 매력적인 스파이더맨인데다가 이번 노웨이홈을 통해 나름 마음의 짐도 덜었다.

 

그런데 톰 홀랜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 큰물에서 놀아보고, 나름 대기업의 지원도 받았으며 장래가 촉망하던 학생이었는데, 무일푼, 무자본으로, 인맥도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안타깝긴 한데, 이제야 좀 스파이더맨답다. 스타크 사의 최첨단 수트가 아닌 집에서 손수 재봉한 수트를 입고,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났다.

 

스파이더맨의 다중우주 설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은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가 있다. 스파이더맨의 탄생,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스파이더맨들과의 협동, 그로 인한 진정한 영웅으로의 각성.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의 플롯과 유사하다. 자, 이제 추억보정과 거대한 자본력, 스케일을 빼고 두 작품을 일대일로 비교해 본다면?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루기로 하고.

 

**

MCU의 스파이더맨이 과거의 맛을 되찾아 완벽히 프랜차이즈로서의 맛을 되살렸다면, 익숙한 맛을 다르게 만든 프랜차이즈도 있다. 게임을 바탕으로 게이머의 경험과 애정이 담긴 매력적인 캐릭터와 흥미로운 세계관이 있는 작품으로 살린다면? 고정된 팬층도 확보할 수 있고, 두 게임과 애니메이션, 두 매체를 오고 가며 새로운 잠재적 고객도 유치할 수 있다. 라이엇 게임즈의 <아케인>이 그랬다. 10년 넘은 게임이 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스토리텔링은 게이머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홀릴 만큼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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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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