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고래 - 한때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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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에 큰 소란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외부인들의 차에 삼삼오오 모여 타고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계절마다 이 마을의 앞바다를 한 바퀴 휘젓고 다시 먼바다로 나가버리는 고래마냥. 그리고 달이 5번이나 차오르고 비어지기를 반복하였지만 떠난 사람들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돌아온 길을 까먹은 것이려나. 그 덕에 마을엔 오직 노인들과 여자. 그리고 아직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뿐이었다.
소년은 때가 낀 흰 책보를 둘러매고 긴 해안가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해가 하늘 꼭대기에 걸리지도 않았건만, 벌써 하굣길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떠나간 사람들 중에는 교사들도 더러 있었으니까. 두 여교사와 이제는 거동조차 불편한 늙은 교장이 말 많은 아이들 50명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건넛마을 아이들도 가르침을 받고자 몰려오는 판이니 그들의 노고가 커지는 만큼, 학교는 점점 더 빨리 끝났다. 하지만 아이들은 철없이 그러면 그런대로 놀 시간이 늘어나니, 이러한 기현상을 반겼다.
“빨리 물을 뿌려요!”
또렷한 서울 말씨였다. 보건소 독토올 김이 한바탕 소란스러운 일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소년이 해변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돌담 집 순이와 최영감 댁 손자 찬수도 거기에 있었다. 호기심이 동한 소년은 책보를 부여잡고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냉큼 달려갔다. 헐레벌떡 달려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어른들의 가는 다리를 비집고 고개를 내밀어보니 대뜸 철썩거리는 소리가 소년을 반겼다.
“에이씨! 거긴 건들지 말라니까!”
날이 선 서울말이 터져 나왔다. 독토올 김이 최영감에게 삿대질을 퍼붓고 있었다. 웃어른에게는 저렇게 하는 게 아닌데. 학교에서는 분명 그렇게 가르쳤다. 독토올 김은 저기 바다 건너에서 학교를 다녔다던데, 거기서는 어른들에게 저렇게 대하라고 가르치는 걸까. 독토올 김의 호통을 고스란히 받아낸 최영감은 떨어지는 낙엽마냥 시들거리며, 찬오의 곁으로 물러나버렸다.
‘고래다!’
최영감에게서 시선을 돌려 모두를 해변에 모으게 한 장본인을 쳐다본 소년이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마음속의 이 외침을 실제로 내뱉었다면 독토올 김의 벼락같은 불호령이 다시 한번 떨어졌을 것이다. 소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거대한 잿빛, 그러니까 큰 고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선을 찬찬히 옮겼다. 이 거대한 생명체는 종종 어른들이 잡아오던 그런 돌고래 같은 게 아니었다. 훨씬 커다랬으며, 가끔씩 움직이는 지느러미도 돌고래보다는 훨씬 더 부드러웠고, 압도적이었다. 해변에 비스듬히 그 거대한 몸을 뉘어 고래는 처연한 눈길로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슬픈 것인가, 아님 체념하는 것인가. 고래의 까맣고 깊은 눈은 심연보다 더 깊어, 들여다볼수록 오묘했다.
“빨리 좀 가져와요!”
강선장에게서 물을 받아 든 독토올 김은 고래의 등짝에 시원하게 뿌렸다. 몸이 물에 젖자 고래는 다시 한번 크게 지느러미를 휘둘렀다. 파도와 만난 지느러미는 물보라를 튀겼고, 애어른 할 거 없이, 모두 몸을 사렸다. 단 한 사람, 독토올 김만 제외하고.
‘고래의 좌초란다.’
소년은 난리에 마을을 떠나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선생님에게 종종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독토올 김처럼 서울 말씨를 썼지만, 그와는 달리 동네 사람들에게 유약했던 선생님은 언젠가 해변에서 죽어가는 고래의 그림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선 이걸 두고 스트랜딩(Stranding)이라고 한다더구나. 하지만 나는 좌초가 좋아. 이유는 모르지만 좌초가 더 정감 있고 멋지지 않니? 고래는 일생을 그 큰 몸으로 저보다 더 큰 바다를 여행한단다. 마치 거대한 배처럼 말야. 어쩌면 그래서 고래의 좌초라고 하는 건지도 몰라. 뭍에서는 배가 나아가지 못하듯 고래는 헤엄을 치지 못하니까 말야.’
신화처럼 사라진다. 생명을 구걸하지 않고. 자존적이고 아름답게. 그게 고래의 좌초다. 선생님은 마지막엔 그 말을 오랫동안 반복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소년의 앞의 고래도 묵묵히 몰려오는 파도에 지느러미만 흔들 뿐 수십 톤이 넘는 자신의 온몸이 내장을 짓누르는 고통에게 어떠한 비명도 내어주지 않았다. 묵묵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듯, 그저 이 모든 게 하늘의 뜻이라는 듯.
“물! 물! 물! 물!”
독토올 김은 계속해서 물을 외쳤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서로 눈치만 볼 뿐 움직임은 더뎠다. 심지어 슬그머니 이 거대한 고래의 곁을 하나둘씩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어쩌면 그들의 눈은 이 거대한 고래가 해변으로 올라왔을 때부터 다른 것을 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물'을 외치는 독토올 김과 달리, 그들은 먼저 자신들의 '삶'을 외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젊은이가 없는 마을이었다. 다른 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배를 타기에 노인들은 늙었고, 여자와 아이들은 약했다. 섬의 모두가 가난했다. 어쩌면 고래의 좌초와 마찬가지로 고래가 이곳을 자신의 마지막 여정지로 선택한 것도 운명이었을까. 철썩철썩. 밀려오는 파도에 고래는 다시 한번 크게 지느러미를 두들겼다. 서서히 사그라져 들어가는 신화를 지켜보던 소년은 슬며시 해안가 길을 향해 발을 돌렸다. 머지않아 남아 있는 다른 이들도 소년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해변 위의 고래 대신 집에 있을 어미를 생각하며 소년은 다시 바쁜 그 걸음을 놓았다.
그리고 그날 밤, 마을에는 커다란 잔치가 열렸다.
2.
터벅터벅. 집으로 오르는 길은 언제나 무거웠다. 마을에서 제일 높이 있는 집. 구멍 송송 뚫린 현무암으로 담을 쌓고, 바다에 절은 소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짚을 섞은 황토로 벽을 세우고, 수숫단을 얼기설기 엮어 지붕에 얹은 조그만 집. 그렇지만 솜씨 좋은 아비 덕에 빨랫줄에는 빨래보다 고기가 더 많이 걸려 있던 집.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 혼자 지키는 일이 더 많은, 고요한 외로움이 가득 찬 그런 곳. 아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외부인들의 차를 타고 떠나버린 후 빨랫줄엔 고기는커녕, 빨래가 걸리는 일조차도 드물었다.
소년은 고개를 숙여 이장님께 얻어온 고래 고기를 쳐다보았다. 그 위풍당당함은 어디 가고 속살만 남아, 만만하다 못해 맛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소년을 입맛을 다시며 저기 보이는 집을 바라보았다. 집에는 어머니가 계시겠지. 가는 귀를 먹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의 기억마저도 먹고사는 그런 어미가. 언젠가부터 무언가를 자주 잊어먹던 어미를 진찰한 독토올 김은 소년에게 말했다. 어미가 알츠 뭐시기에 걸렸다고. 툭 까놓고 말해 다 잊어버리는 병에 걸렸다고. 처음엔 사소한 것들을 잊어버리다가, 사람들을 잊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밥 먹는 거, 똥 싸는 거, 심지어 말하는 것도 잊어버릴 거라고. 독토올 김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독토올 김의 말처럼 어미는 조금씩 잊어갔다. 처음엔 사소한 것들을.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을. 어미는 조금씩, 아니 점점 더 많이, 더 빠르게 잊고 있었다.
“어멍! 어멍!”
어미를 힘차게 부르며 소년이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가는 귀가 먹은 어미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미는 화들짝 놀라 안고 있던 아비의 누런 저고리를 감추며, 아들을 불안하게 쳐다보았다.
“거, 누구소?”
이제는 어미는 아들조차도 잊어버렸다. 벌써 몇 번이나 겪은 일이었지만 소년은 이번에도 힘이 빠져버렸다. 그래서 들고 있던 고래 고기도 놓쳐버렸다. 소년은 어미에게 다가가 맥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멍 아덜, 재필이오.”
“재, 재필이냐”
어미의 흔들리는 눈을 보며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미 품속에 숨은 누런 저고리를 바라보았다. 어망과 더불어 아비의 체취가 남아 있는 유일한 물건을 어미는 당신의 품에 저렇게 꼭 품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소년은 떨어뜨린 고기를 가져왔다.
“그러니까 으응, 이장님이 어망 잡수래.”
어쩌면 올해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고래 고기를 조심스레 받으며 어미는 참말이냐고 물었다. 소년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소년의 시선은 어느새 다시 어미의 품 속 저고리를 향했다.
“오늘도 아방 기다렸소?”
“으응, 그냥.......”
어미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고래 고기를 보더니 오랜만이라며 해맑게 웃기 시작했다. 소년은 그런 어미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다 잊어가는 마당에 어찌 아비만큼은 잊지 않고 있는 것일까. 곁에 있는 아들조차도 잊어버리는 당신은 왜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아비만 기억하고 그리워하실까. 소년은 입을 굳게 다물고 방으로 올라와 냅다 누워버렸다. 새로 들어낼 시기를 놓쳐, 멍석의 튀어나온 지푸라기가 등을 아프게 찔렀지만, 소년은 무시했다. 어미는 그런 아들을 잠시 바라보다 고기를 내려놓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미동도 않는 아들을 보며 어미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명색이 아들인데,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유일한 사람인데, 어미는 오늘도 너무나 쉽게 아들을 잊어버렸다.
“재필아.”
“......”
“재필아.”
“왜 그러오?”
“어멍이 미안하다.”
어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살짝 고개를 들여 뒤를 바라보니 어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엄지를 또 다른 엄지로 긁고 있었다. 소년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미워할 수는 없는 자신의 어미였다. 그리고 어찌 모르겠는가. 어미의 마음을. 강원도 산자락에서 태어난 어미는 장사를 하던 아비를 따라 여기, 제주까지 들어왔다. 아비가 여기서 고기잡이를 천직으로 삼고, 살아갈 때 섬에서 어미가 의지할 사람은 오직 아비뿐이었다. 소년이 태어나기까지, 3년간 그렇게 둘이서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어미에게 있어서 아비는 각별했다. 그렇기에 기억을 먹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아들 또한 삼키려 들면서 어미는 아비만큼은 품에 안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자신을 희생하기엔 소년도 아직은 어렸다. 몸을 일으켜 어미를 바라보고 앉은 소년은 어미의 손을 잡았다.
“어망이 그르케 기다리믄 아방이 돌아오나?”
소년이 물었지만 어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꿎은 자신의 엄지만 더욱 빨리 부대끼려 했다. 한숨을 쉰 소년은 어미의 손을 놓고 일어나 고기를 집어 들었다. 오늘도 아비만 기다리느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을 어미를 위해 오랜만에 고래를 맛 보여줄 참이었다. 그런 자신의 아들을 말없이 바라보던 어미는 아들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재필아.”
“말 하옵서.”
“바당 보러 가까나?”
마음을 풀어보려 어미가 애를 썼다. 소년이 옅게 웃었다.
“밤이오. 뵈지도 않을 바당, 뵈서 뭐하오? 밥이나 먹읍서.”
다음날도 별반 어제와 다를 건 없었다. 어제보다 더 불어난 아이들을 오늘도 감당 못한 학교는 어제보다 더 빨리 아이들을 하교 시켰다. 자기들끼리는 휴교를 이야기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아이들에게는 남의 일, 혹은 좋은 일이었다. 섬 아이들은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기를 쓰고 공부해 봤자 섬을 나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설령 나간다 해도 도시에서 타자기를 두드리기는커녕, 떠돌이 장사치나 품팔이가 전부였으니. 차라리 부모의 뒤를 이어 물질을 하는 것이 더 편했다.
마을의 당산나무까지 이어지는 해안가 길을 걸으며 소년을 바다를 바라보았다. 슬슬 고래가 돌아갈 철이다. 그러나 바다는 배 한 척도 없이 그저 바람만. 고요하고 고독했다. 올해의 고래잡이도, 일 년 중 유일하게 모든 배가 봉죽을 떠받을 시기는 허무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면 정말로 고래 고기의 맛은 어제가 끝이 되는 거였다. 아쉬움에 느릿한 휘파람을 부르며 소년은 조금 더 빠르게 걸음을 놓았다. 그때였다. 비명소리와 함께 별안간 해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더니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해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또 고래가 밀려온 것일까. 어제 먹었던 고래의 살맛을 되새기며 소년은 마음이 설레어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러나 이번엔 어제와 다르게 지느러미가 파도를 때리는 소리가 아닌 누군가의 통곡이 소년의 귀를 먼저 맞이했다.
“이거이 무신 일이냐!”
“아이구, 호성아!”
소년은 순간 가슴이 순간 섬뜩하여 멈칫했다. 어른들은 끔찍하다는 듯 눈살을 잔뜩 찌푸리거나 서로서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고래가 아니라 혹 다른 게 밀려온 것일까. 다리를 비집고 고개를 내민 소년은 이내 경악했다.
‘호성이 형?’
호성이었다. 마을에서 조그만 점포를 운영하던 배영감 댁 둘째 아들이자, 마을에서는 아비보다 더 고기잡이로 이름을 날렸고, 동네 처자들 마음을 뒤흔들고 다녔던. 그리고 5달 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마을을 떠나버린. 지금 그는 창백한 모습으로 배영감의 품에 안겨 있었다. 바닷물에 상했는지 그가 떠나던 당시 입고 있던 맵시 있는 양복은 빛을 잃었고, 군데군데가 찢어져 누더기 같았다. 머리는 예전과 다르게 아주 짧게 깎여 있었고, 상처투성이였다.
“이리 오라게.”
이장이 침착하게 말했다. 찬수 아범이 호성을 모래밭에 반듯이 눕혔다.
“벗겨 보아.”
찬수 아범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심스레 셔츠의 단추를 풀어보았다. 그러자 아직도 피가 맺힌 날카로운 상처와 함께 몸 곳곳에 난 처음 보는 구멍들이 드러났다. 그 상처들을 보자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라 이장이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찬수 아범에게 일렀다.
“독토올 김 좀 데려오라게.”
찬수 아방이 독토올 김을 데리러 가고, 가만히 그 옆에서 내내 호성의 육신을 보고 있던 강선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 그때 간 생이들 다 이리 되븐 것이오?”
“총 든 군인들이 데려간 마당에 숨 붙어 있는 거이 용하겠네.”
이장의 처연한 말에 해변의 사람들 중 몇몇이 주저앉았다. 김영감부터 시작해서, 손씨할매, 수동이 어멈, 순이 할매와 순이 어멈도. 모두가 그때 떠난 사람들의 가족이었다.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소년은 주저앉기보다는 어미가 먼저 생각이 났다. 어미도 알고 있을까. 그 걱정이 먼저 앞섰다. 찬수 아범이 데려온 독토올 김이 호성을 살펴보다가 ‘죽었네.’를 말함과 동시에 소년은 집을 향해 달려갔다. 밭을 지나고, 개울을 넘고, 돌담길을 달려 자신의 집이 있는 언덕으로. 그러나 발 없는 말은 소년의 발보다 훨씬 빨랐다. 마을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호성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되었을 거라는 불안도 함께 있었다.
“어망!”
집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소년이 어미를 불렀다. 아침과 변함없이 벽만 바라보던 어미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누, 누구시오?”
“어망 아덜 재필이오.”
“으응, 재필이냐.....?”
아들이란 말에 경계를 누그러뜨리며 어미가 답했다. 어미의 품에는 여전히 아비의 옷이 안겨 있었다. 아직 듣지 않은 것일까. 걱정에 아들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어, 어망이 안고 있는 게 무엇이오?”
“으응? 이거 말이냐? 으응......”
들었다. 어미는 호성의 소식을 들었다. 대답하지 않는 어미를 보며 소년은 직감했고 확신했다. 소년의 흔들리는 시선으로, 평소와는 다르게 흐트러져 있는 어미의 짚신이 들어왔다. 군데군데 끼어있는 까만 흙들을 바라보며,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일러 주었다.
“잊었소? 아방 옷이잖소.”
“아방 옷 말이냐?”
소년의 말에 눈을 끔뻑거리며 어미는 아비의 옷을 바라보았다. 낯설어진 어미의 눈동자에 소년이 불안함이 솟아나 어미를 불러보았다. 그러나 불러도 어미는 대답이 없었다. 이제는 저고리 대신 우두커니 벽을 응시했다. 잠시 후, 어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년을 불렀다.
“재필아.”
“왜 그러오.”
“우리 바당 보러 가까나? 아니 바당 보러 가자.”
어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집을 나섰다. 천천히 어미와 함께 소년은 집 뒤로 난 길을 걸었다. 어미는 아비와 바다를 보러 갈 때면 항상 이 길로 오르고는 했다. 날씨가 좋으면 저 건너 육지까지 볼 수 있다면서. 어쩌면 그래서 아비는 이곳에 집을 지었는지도 몰랐다. 정상에 심어진 넙떡바위 옆 소나무까지 오르고서야 어미는 급한 발을 멈추었다. 소년보다 늙은 몸으로 어미는 잘도 이 길을 올랐다. 반면 소년은 지쳐서 바위에 몸을 잠시 맡겼다. 어미는 나무를 짚고 서서 언젠가 아비와 함께 그러했던 것처럼 그렇게 바다를 보고 있었다.
“재필아.”
어미가 소년을 불렀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소년이 대꾸했다.
“왜 그러오?”
“아싯날에 보름달이 뜨었느냐?”
“뜨었소.”
“그르면 고래가 떠나겠구나.”
“......”
“아직 아방이 오지 않았는데.......”
“어멍.”
“아방이 오지 않았는데......”
주문처럼 어미는 아비가 오지 않았다는 말을 되뇌었다. 소년은 그런 어미에게 말을 걸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어차피 아비도 곧 잊혀 질 것이었다. 자신처럼. 그리움은 본디 만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어야 했다. 돌아오지 않을 대상에게 품는 그리움은 그저 고문에 가까운 헛된 바람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이제는 고문이기에 어미는 스스로 아비를 잊을 것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소년은 입을 다물기로 하였다. 어미는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필아.”
어미가 다시 소년을 불렀다. 대답 않고 소년은 어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미는 먼바다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소년에게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며 바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고래가 가는구나.”
어미의 말에 소년은 일어나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미의 말대로 고래가 떠나고 있었다. 이 맘때면 깊은 곳으로 모여드는 물을 따라 고래는 이 섬을 떠나고 있었다. 반달 모양의 존재들이 잇달아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물보라가 일어 햇빛과 부딪혀 반짝거렸다. 자신들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그래도 고래라는 이름으로 묶인 어제 스스로 자초가 된 고래의 혼을 뒤로하고 떠나가는 존재들. 저렇게 미련 없이 가는 건 그것이 다른 종류이기 때문인가, 아님 바다가 간직한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인가. 그들의 물질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재필아.”
“왜 그러오.”
어미의 부름에 소년이 무뚝뚝하게 답했다. 잠시간의 정적 후 다시 어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재필아.”
“왜 그러오, 어멍?”
“재필아. 재필아, 재필아......!”
정작 할 말은 않고, 자신의 이름만 불러대는 어미에게 소년이 신경질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소년이 마주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어미의 헤진 짚신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잠시 정신이 얼떨떨해진 소년이 천천히 절벽으로 다가갔다. 거친 파도가 이 밑에는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보았다. 아직 공중에 남아 있는, 어미가 간직하고 있던 아비의 누런 저고리를. 빛바랜 몸으로 바람을 타던 그것은 천천히 하얀 물살 위로 자신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한 마리의 누런 고래가 되어 천천히 다른 고래들을 따라 물질을 시작했다.
저 고래의 아래에는 기억을 먹고 살던 어미가 있는 것일까. 뭍에서 살 수 없는 고래가 뭍으로 올라오고, 물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 물로 뛰어들고. ‘인간의 좌초.’ 순간 이 말이 소년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구체적인 이유는 없었다. 다만 소년은 어미와 고래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우우우우우!”
울음소리가 바람에 묻혀 어렴풋이 들려왔다. 고래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어미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소년이 고개를 들어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고래들은 소년의 눈에서 보이지 않았다.
PS. 고등학생 시절,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며 썼던 습작 소설입니다. 그때 이후로 벌써 1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어쩌다 이런 걸 쓰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신이 나서 쓰던 건 기억합니다. 멋모르던 그때의 열의와 즐거움이 퍽 반가워서 오랜만에 이렇게 한번 꺼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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