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展

만화, 캔버스 위에서 예술이 되다
글 입력 2021.12.2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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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을 처음 만났던 건 중학생 즈음이었다. 당시 나는 힙합 음악에 푹 빠져 있었고 작곡가 겸 프로듀서 프라이머리는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반가운 그의 신곡 '씨스루'가 발매됐다. 개코와 자이언티가 함께한 그루비한 음악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화려한 앨범 커버가 음악에 세련됨을 더했다.

 

알고 보니 앨범 커버는 앤디 워홀과 더불어 팝아트의 거장으로 꼽히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패러디였다. 원작은 1963년도 작품임에도 촌스러움 하나 없이 새것 같은 신선함을 뽐냈다.

 

 

 

만화, 캔버스 위에서 예술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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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예술은

어떤 면에서 다른 예술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 예술이 만화가 될 수도 있다."

 

All my art is in some way about other art,

even if the other art is cartoons.

 

- Roy Lichtenstein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활동하던 시기는 한창 추상주의가 주류였으나 그는 추상주의 그림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미키마우스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그림을 한 점 그려준다. 만화의 한 장면을 그린 <이것 좀 봐 미키 Look Mickey>는 순식간에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그를 무명의 예술가에서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올려놓는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예술로서의 만화가 회화보다 강렬하고 짙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모두가 사랑하는 만화 속 장면을 캔버스 위로 꺼내어 자신만의 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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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스페인 아트 컬렉터 Jose Luiz Ruperez의 컬렉션으로, 그의 대표작 <절망 Hopeless>, 부터 피카소와 몬드리안 등 당대 유명한 예술가의 그림을 재해석한 작품을 포함한 130여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료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랑과 전쟁은 작품의 주요 주제로, 진부하고 통속적이지만 인간의 원초적 감성을 건드린다.

 

관객은 기쁨 또는 절망의 눈물을 흘리는 그림 속 주인공을 보며 인물의 감정에 이입하고, 비행기가 폭발하는 장면을 볼 땐 전쟁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는 무거운 주제마저 만화적 형식을 빌려 표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전쟁을 비판했다.

 

 

 

전통 회화 주의에 반기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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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 뚜렷하고 직관적이다. 그는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과 굵은 검정 윤곽선, 그리고 일정하고 균일한 벤데이 점(Benday Dot)을 주로 사용했다.

 

벤데이 점은 흔히 말하는 '땡땡이' 모양으로, 직접 그리지 않고 구멍이 여러 개 뚫린 판을 색칠하는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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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표현주의를 희화화하는 <붓 자국 회화> 연작은 기존 전통 회화에 던지는 과감한 도전장이자 새로운 팝아트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지표다. 즉 그는 화가 개인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거친 붓 자국을 만화적 기호로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당시 화가들의 과장된 표현 방법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작가로서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단 기계로 찍어낸 듯 대량 복제 시대에 걸맞은 작품을 만들었다. 이러한 중립적인 표현 방식은 오히려 그의 개성이자 정체성이 되었고, 시대와 취향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열광하는 그림을 만들어냈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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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은 대중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1960년대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상업 매체가 발달하던 시기로, 팝아트가 본격적으로 부흥하던 때였다. 그는 잡지부터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러브콜을 받으며 여러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샴페인 병이나 그릇, 자동차 등 시각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전시장에선 미국의 전 법무장관 바비 케네디가 그려진 미국의 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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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뉴욕 타임즈의 비평가로부터 '미국 최악의 예술가'로 꼽히기도 했고, 기존에 존재하던 그림을 단순히 베낀 것뿐이라며 조롱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문 혁신가였다. 소수만 즐기는 고급 미술과 저급하다고 여겨지는 대중문화 간의 경계를 허물며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그림을 추구했다.

 

뉴욕에서 태어나 엘리트 미술 교육 과정을 밟고 교수로 활동하며 누구보다 미술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던 그이지만, 특권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미술을 대중화시키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나는 항상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알고 싶어 했다."

 

I'd always wanted to know the difference

between a mark that was art and one that wasn't.

 

- Roy Lichtenstein

  

  

그는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라고 말하며 예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탐색했던 사람이었다. 전시장을 나오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정의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누군가에게 스며들어 작은 울림을 남기고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예술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길가에 핀 조그마한 들꽃도, 늦은 밤 버스 차창을 통해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도 어쩌면 예술이 될 수 있을 테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작품이 여전히 낯설고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세상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고 했던 그의 기민한 시선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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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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