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만의 색이 묻어나는 글쓰기 -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글 입력 2021.12.22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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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_표지.jpg

 


단편은 쉽지 않다. 분량을 생각하면 장편 소설에 비해 월등히 가벼운 볼륨이나, 반대로 생각하면 짧은 호흡 속에 모든 것을 짜임새 있게 끌어가야만 한다.

 

단편을 끌어가기 어렵다면 장편을 쓰기란 더 어려운 일일 터. 물론 순전히 단편이 장편을 쓰기 위한 습작의 역할만을 맡진 않는다. 단편은 단편만의 매력이 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 글에 흥미를 더해주는 극적 장치,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당겨오는 문장력 등 완성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각종 요소의 촘촘한 안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장편보다 단편을 읽었을 때 더 묵직한 여운에 허덕이게 된다. 오히려 극적 긴장감이 높기도 하며 쉬이 잊을 수 없는, 짧지만 굵은 인상적인 이야기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파리 리뷰>가 주목한 단편 모음집인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확고한 포지션이 인상적인 책이다. 일반적인 단편집에 비해 출판사의 아이덴티티가 더욱 명료하게 드러나며, 흥미로운 이야기 모음집이자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교과서로 역할하기 때문이다.

 

<파리 리뷰>는 '작가들의 꿈의 무대'로 알려진 미국의 문학 계간지로, <타임>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고 부른 바 있다. 1953년 창간한 이래 70여 년 동안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어주었으며 새로운 스타일을 탐구하는 문학의 실험실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왔다. 실험실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작가의 경력, 출신국, 성별, 장르 등 어떤 한계에도 얽매이지 않고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책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일반 독자에게도 작가에게도 그냥 스쳐지나갈 수 없는 매혹적인 단편집이 된다. 흥미진진한 장르 단편 모음일 뿐 아니라 <파리 리뷰>와 세계적인 작가들의 안목을 엿볼 수 있으며 소설마다 해제를 곁들여 조금 더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다.

 

이번 단편집을 출간하기 위해 <파리 리뷰>는 세계적인 작가들에게 지난 반세기 동안 발표한 단편 소설 중 좋아하는 작품을 고르고 이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전했다. 장르의 대가들이 고르고 고른 단편들은 그들의 캐릭터만큼 다채로운 모음을 결과물로 낳았다.

 

사계절 4부작 <가을>, <겨울>, <봄>, <여름>으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가 된 앨리 스미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제프리 유제니디스, 맨부커 국제상 수상자인 리디아 데이비스,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 각본가이자 에세이스트 알렉산다르 헤몬 등이 참여해 때로는 고전, 때로는 완전히 실험적인 소설을 고르며 풍성한 모음집을 도출해냈다.

 

*

 

사실 <파리 리뷰>와 참여 작가의 명성을 뒤로 하고도, 책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에는 한번 마주해보기만 한다면 집어들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


 

나는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일어나기도 전에 모든 일을 감지했다.

차에 탄 가족의 다정한 목소리만 듣고도

우리가 폭풍우 속에서

사고를 당할 것을 알았다.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중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책 제목은 단편으로 수록된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의 문장을 발췌한 것이다. 제목에 홀려 책을 집어들어보면 뒷표지에 이어지는 문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얼마나 불길하고 아름다운 가슴 뛰는 문장인지.

 

그리고 이 문장에 홀려 책을 펼쳐보면 그 어느 곳을 읽더라도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멈출 수가 없게 된다.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총 15개의 단편을 모아두었는데, 작가마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글의 구성, 호흡, 주제 등이 다채로워 하얀 바탕에 검은 문자로 이루어진 글이 이렇게 컬러풀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놀라게 될 뿐이다.

 

여기에 세계적인 작가들의 해제 역시, 단순한 작품 설명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문학이 되어 다가오므로 이보다 더 알찰 수는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랬다. 이야기의 조각을 몇개 얹어 두고 글을 마무리한다.


 

맬은 기쁨 없는 삶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죽음은 어디에나 있으므로 꼭 시체가 있어야 애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복숭아씨에는 청산가리가 차오른다.

접은 냅킨에 수막염이, 젖은 샤워장에 소아마비가 있다.

영원은 저녁 공기 속에 있다.

 

<어렴풋한 시간> 중



방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는 생각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과거가 갑작스러운 밀물처럼 그를 휩쓸고 지나갔다.

과거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는 모습으로 지나갔다.

 

<방콕> 중


 

사실 우리는 미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루며 살아간다.

어쩌면 모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우리가 불멸이며

조만간 모든 인간이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알 수 있으리라고 믿는지도 모른다.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중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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