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인생 드라마에 대하여 [드라마]

글 입력 2021.12.1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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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마다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바로 100문 100답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다양한 질문들로 구성된 100문 100답을 찾을 수 있는데 매년 12월이 되면 그에 관한 답을 천천히 적어내는 시간을 갖는다. 신기하게도 나의 취향과 생각은 해를 더해갈 때마다 바뀌어 가고, 100개의 질문을 통해 그 변화의 흐름을 찾아가는 과정은 매번 새롭게 느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100문 100답을 적어 보는데 몇년째 바뀌지 않는 답이 하나 있다.


“당신의 인생 드라마는?”


인생 노래, 인생 영화를 묻는 말에는 고심을 더해가며 결코 하나의 답을 내리지 못하는 내가, 이 질문에 거침없이 적어내는 하나의 답은 ‘동백꽃 필 무렵’.


인물들 개개인의 스토리, 부모와 자식 간의 애증, 시골 동네의 텃세와 그 적응기, 유쾌 발랄한 로맨스 그리고 스릴러까지 모든 걸 다 담아내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드라마다. 따뜻하면서도 서글픈 대사들로 어김없이 나를 울리는 이 드라마.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서로를 살린다는 의미를 가득 전달하며, 단단하고 따뜻한 힘을 뿜어내는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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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멜리아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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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쉬지도 않고 달려드는데 발밑에 움켜쥘 흙도, 팔을 뻗어 기댈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이제 내 옆에 사람들이 돋아나고 그들과 뿌리를 섞었을 뿐인데, 이토록 발밑이 단단해지다니. 이제야 곁에서 항상 꼼틀댔을 바닷바람, 모래알.


 

주어진 일상과 곁에 있는 이들에게 마음을 다하는 동백이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 일곱 살에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가 다시 얼굴을 비췄을 때도, 미혼모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괴롭힐 때도, 계속해서 자신을 예의주시하는 살인마가 등장했을 때도 동백이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꿋꿋하게 지켜낸다.


버려졌던 기억으로 자신의 삶이 억척같다고만 느끼는 동백이지만 그런 삶을 이겨내는 동백이의 힘은 주변 인물에게 큰 울림을 전한다. 미혼모가 시골까지 들어와서 술집을 차렸다며 견제해대던 마을 상인들도, 다들 동백이만 좋아한다고 질투하던 알바생 향미도, 현실에 눈이 멀어 동백이를 저버렸던 필구의 아빠도 억척같은 삶을 악착같이 살아내는 동백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 없는 사람은 바로 동백이 같은 사람 아닐까? 주어진 것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 진심으로 자신을 내비치는 사람의 따뜻한 힘은 절대 이길 수 없다. 결국 동백이를 모질게 대하던 주변 인물들은 동백이의 따뜻함 안에 함께 녹아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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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어.

버림받은 7살로 남아있지 마.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 말고 훨훨 살아 훨훨.

 

 

동백이는 음침한 고아도, 버려진 일곱 살도, 팔자가 기가 막히게 센 여자도 아닌 모두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향미를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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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했던 캐릭터 향미. 나를 너무 아프게 했던 향미의 죽음.

 

동백이와 닮아있지만 동백이의 삶을 동경했던 향미는 나의 아픈 손가락이다. 절대 나를 잊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배달을 떠나는 향미의 뒷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드라마 초반에 강에서 게르마늄 팔찌를 한 시체가 발견된다. 그 게르마늄 팔찌의 주인은 다름 아닌 동백이. 철없는 까멜리아의 알바생인 향미는 손님들의 물건(아주 작은 것들, 라이터와 같은)을 훔치곤 했다.

 

때 묻지 않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 젊은 여자, 동백이와 동년배이자 신체적 특징이 같은 사람. 라이터나 훔치는 하찮은 인물로 비치는 인물. 동백이와 비슷한 환경에 처했음에도 동백이는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향미는 연쇄 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했다. 향미는 동백이를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남게 하는 장치였던 걸까?

 

매번 자신과 동백이의 삶을 비교하며, 자신을 1등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되뇌던 향미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철없고 삶에 대해 미숙한, 악착같이 이겨내는 게 아니라 쿨하게 버리고 해맑게 웃고 마는 향미를 나는 아주 몹시 사랑했다. 그런 향미의 죽음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아파해야 할지 모르겠을 만큼 아렸다.

 

유독 향미에게만 불공평했던 삶에 그렇게 동백이를 질투했건만, 결국엔 향미마저 동백이를 완전히 사랑하게 되었을 때 향미는 사라져버렸다. 향미가 자신에게도 자신을 1등으로 생각해주는 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애석하게도 세상은 향미를 빼앗아갔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우리의 물망초, 향미.

 

향미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마음이 따끔거린다.

 

 

“뭐야, 내 팔찌? 게르마늄, 돈도 안 돼. 다 끊어지려는 걸”

 

“너 기억하려구. 그놈의 동백이 까먹고 살기 싫어서 가져갔다. 너 가게 이름 드럽게 잘 지었어. 동백꽃 꽃말 덕에 네 팔자는 필 거야.”

 

“꽃말이야 뭐, 다 좋지”

 

“드럽게 박복한 꽃말도 있어. 너 물망초 꽃말은 뭔지 알아? 나를 잊지 말아요. 너도 나 잊지 마. 엄마니, 동생이니 다들 나 재끼고 잘 사는데, 너 하나는 그냥 나 좀 기억해주라. 그래야 나도 세상에 살다 온 거 같지.”

 

- 동백이와 향미의 마지막 대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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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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