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실의 순간 - 포르투갈의 높은 산 [도서]

글 입력 2021.12.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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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순간


 

사람은 언제 가장 큰 상실감을 느낄까? 하루하루 고단하게 모아온 재산을 잃었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훼손되었을 때? 우리는 살면서 우연과 실수, 오해가 뒤엉키면서 중요한 것을 잃고 슬픔에 잠기는 날을 마주하곤 한다. 그 배경에는 다양한 상황과 순간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상실은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냈을 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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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의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세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904년과 1939년, 1980년대, 가깝고도 먼 시대를 살아간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고,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받아들인다. 언뜻 슬픔을 극복하는 감동 스토리, 그래도 내일의 해는 뜬다 같은 이야기일 것 같지만 이야기는 전혀 예측할 수 없게 흐른다.


얀 마텔은 대표작 <파이 이야기>에서처럼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줬다. 신부의 일기장과 십자고상, 낯선 곳으로의 여행, 침팬지 같은 언뜻 연결되지 않는 소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상상 속을 함께 헤매다 보면 주인공들의 저릿한 마음에 깊이 공감하기도, 기묘한 극의 흐름에 불쾌하기도, 어쩐지 따뜻한 인물들에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한다. 다양한 감정의 흐름을 타볼 수 있는 책,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


 

책은 세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씩 천천히 등장한다. 서로 전혀 다른 인물과 이야기인 것 같지만, 후반부에 다다를수록 그들 사이 교차점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1904년을 살았던 토마스이다. 그는 고미술 박물관 학예 보조사로 일하며 사랑하는 가족과 살아간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일주일이라는 짧은 새에 아내와 아들, 아버지까지 하늘로 먼저 떠나보내는 믿기 힘든 일이 생긴다.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토마스는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장에 매료되어 그의 글만을 반복해 읽는다. 그 속에 등장하는 십자고상이 전에 없던 귀중한 것이라 확신하고, 이를 찾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길을 떠난다. 조사 끝에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있는 다섯 교회 중에 십자고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먼 길을 달려 나간다.


토마스는 당시 갓 등장한 자동차를 숙부에게 빌려 작은 마을들을 거쳐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자동차의 존재에 놀라 달려들고, 토마스를 경계한다. 그들을 헤치며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은 많은 체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일이다.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궂은 길과 자연은 자꾸만 토마스의 여정을 가로막는다.


토마스는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더 큰 고통으로, 반복되는 고통 속으로 뛰어들었다. 우연이 운이 좋지 않았다고 말하기에 그는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연과 사람들이 그에게 고통을 더할 때에도, 그는 거친 길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깊은 슬픔과 좌절에 빠진 사람, 살아갈 희망을 잃은 사람은 어쩌면 가만히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못하고 달리는 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험난한 여정에 마음이 아프지만, 고통의 불구덩이로 뛰어들면서 마침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꿈꾼 그일지도 모른다.


두 번째 주인공은 1939년을 산 병리학자 에우제비우다. 그는 긴 결혼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아내에 대한 애정이 잠들지 않았다. 아내는 그를 깊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들에겐 건강한 아이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정한 마음을 받는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내는 문학과 종교에 몰두하면서 불안과 공포를, 깊고 어두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사고로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슬픔에 잠긴 에우제비우에게 나타난 한 여성은 기묘한 부탁을 한다.


에우제비우의 이야기는 충격적인 소재와 묘사가 등장해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인물들의 요동치는 감정과 그들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불안하리만큼 빠르게 질주하는 토마스의 자동차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람을 사랑만으로 살릴 수 없다면, 우리는 타인에게 어떤 손길과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이 맴돌았다.


마지막 주인공은 1980년대 캐나다에서 살아가던 피터 토비다. 그는 상원 의원으로 명예로운 삶을 사는 듯 보이지만, 그 역시 아내를 잃고 극심한 우울에 빠진다. 피터는 동물을 좋아하던 아내를 떠올리며 영장류 연구소에 갔다가 침팬지 ‘오도’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많은 돈을 지불하고 오도를 사겠다고 말한 그는 캐나다에서의 삶을 모두 정리하고 그의 부모들이 살았고, 자신이 태어났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침팬지와의 동거를 시작하고, 그와의 삶에 적응해 나간다.


세 이야기 중 피터와 오도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전 이야기에서 느낀 공포를 잠재우고, 두 사람 사이의 교감, 언어도 존재도 낯설지만 서서히 가까워지는 이웃들을 보면서 따뜻함을 느꼈다. 존재의 상실로 느낀 고통을 또 다른 존재의 품에서 치유해가는 모습이었다. 작가가 전작 <파이 이야기>에서 보여준 것처럼 야생성과 공격성을 지닌 동물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교류하는 이야기가 지닌 매력이 있었다. 긴장감이 뾰족한 날을 세웠다가 이내 평온한 모습에 안도하기를 반복하는 이야기였다.

 

 

 

높은 산을 오르는 길에


 

<포르투갈의 높은 산>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얀 마텔의 다른 이야기도 찾아보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인물들의 고통에 마음이 불편해지면서도, 손쉬운 위로나 희망을 말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흐릿하고 미묘하게 각도를 바꾸면서 그들의 변화하는 감정과 그대로인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생은 그렇게 쉽게 반전되고, 한순간에 한 감정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감정이 마구 뒤섞이고, 잠시 마음을 다잡았다가도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는 것처럼. 어쩌면 소설보다도 진짜 삶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기억에 남은 다음의 구절을 공유하면서 책 소개를 마치려 한다. 피터의 말처럼 천천히 시간을 호흡하면서 읽어볼 수 있길 추천하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다.


 

“그래. 이따금 오도가 시간을 호흡한다는 생각이 들어,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난 오도 옆에 앉아서 그가 매분, 매시간으로 엮인 담요를 짜는 것을 지켜보지. 큰 바위 꼭대기에서 해넘이를 보면서 오도가 공중의 뭔가를 손짓하면, 장담컨대 내 눈에는 안 보이는 형상의 모서리를 조각하거나 표면을 다듬는 거야.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진 않아. 시간을 짜고 공간을 조각하는 존재와 함께 있는걸. 내게는 그걸로 충분해.”

 

- <포르투갈의 높은 산>, p366-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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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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