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생명을 보듬는다는 것 [동물]

평범한 대학생의 좌충우돌 세 번의 임시보호 이야기
글 입력 2021.12.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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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할 희대의 연쇄 동물 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오로지 푸들만을 입양하여 잔인하게 학대 후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동물의 사체는 근무하는 사택의 앞 화단에 묻었다. 발견한 동물의 사체는 8마리이며, 붙잡힌 범인의 휴대폰 속에는 총 19마리의 푸들 사진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동물 학대와 관련한 사건은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토록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특정 품종인 푸들만을 골라서 잔인하게 학대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생이 끊어지는 과정에서 그 가여운 동물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랑을 나누고, 애정을 나누고, 보듬기에도 모자란 그 아이들은 무슨 잘못이 있을까.

 

동물을 학대하는 이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적어도 나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살아 숨 쉬는 순간순간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이들이다. 가정에서 지내는 반려동물이던, 야생에서, 거리에서 지내는 아이들이던.

 

나는 강아지와 아기 길고양이의 임시보호를 세 번 정도 했었다. 물론 입양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 사건을 접하고 그 아이들은 잘 지내는가 하는 걱정이 든다. 한 아이는 최근까지도 SNS 게시물로 잘 지내고 있음을 알지만 다른 두 아이는 연락이 되지 않아 잘 모르겠다. 그저 잘 지냈으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임시보호 이야기를 끄적여볼까 한다. 동물은, 생명은, 괴롭힘당하고 상처받아야 할 이유가 하등 없으며 조건 없는 사랑으로 보듬어주어야 할 존재라는 나의 생각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말이다. 그리고 이 글은, 하나의 오피니언이라기보다는 '나의 아이들, 그 추억 반추하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입양은 정말로 준비된 사람이 해야 한다.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더라.)

 

 

 

경솔했던 나, 미안함만이 남은 '우주'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보내며 한 숨 돌리고 있던 때였다. 워낙 동물을 좋아했던 나는 유튜브에서 강아지나 고양이 채널들을 구독하며 보았고 '포인핸드'라는 유기동물 입양&실종동물 찾기 앱을 자주 드나들며 도와줄 수 있는 아이가 있는지 관심을 가지며 찾았다. 그러던 7월의 어느 날, 소심하지만 해맑은 아이 '우주'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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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서울 강동구의 한 반려동물 문화교실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였다. 입양 전제 임시보호가 가능한 분을 찾는다고 해서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 당시 현실적인 문제로 입양은 힘들다고 생각해서 단기간 임시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도와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지만 나는 어려울 거야'라며 창을 닫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 그 공고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며칠간 나는 자기 합리화를 해버린다. 주위의 단독가구들도 반려동물과 잘 살고 있는 것 같고, 가능한 시간 모두를 집에서 보낸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그런 합리화 후에 연락을 했고, 춘천에서 직접 강동구로 찾아가 직접 우주를 만나보았다. 대표님과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가능할지, 과연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직접 문화교실 앞의 공원을 산책해 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대표님과 같이 있었기에 소심하다고 한 우주는 생각보다 활발했다. 그렇게 그날, '입양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임시보호를 하며 어느 정도 지내보고 결정해 주셔도 괜찮다'라는 말과 함께 우주와의 임시보호가 결정되었다.

 

춘천까지는 대표님께서 차로 우주와 오신다는 말에 급하게 반려동물 용품들을 사러 매장을 찾았다. 물그릇과 밥그릇, 배변패드, 목줄과 장난감, 발톱깎이, 산책 나갔을 때 용변을 치울 비닐주머니 등을 구매하고 우주를 기다렸다. 그렇게, 우주는 집으로 왔다.

 

대표님이 떠나기 전까지 우주는 해맑았다. 생각과는 달리 겁을 전혀 먹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분명 소심한 아이라고 들었는데,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표님이 떠나고 난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우주의 소심한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불안한 눈빛으로 거실 한 쪽 구석에 누워 꼼짝하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처음엔 그럴 것이라 예상했기에, 첫날에는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은 채 놀라지 않을 어조로 우주라는 이름만 불렀던 것 같다. 그렇게 밤이 되고,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우주는 내가 깨 있는 시간 동안 긴장해서 참았던 배변을 밤 사이에 몰아서 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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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일이 지나자 다행스럽게도 꼼짝 않던 우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정말 조심스럽게 집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능성이 보였다. 기뻤다. '이렇게만 간다면'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은 내가 움직이거나,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급하게 구석으로 도망갔다. 나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내부에서 라디오를 조금 크게 틀어놓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대표님의 말을 기억해 내고 거실 냉장고 위에 라디오를 배치해서 틀어놓았다.

 

며칠이 지났다. 아직도 우주는 내가 만지거나 가까이 가면 무서워하다 으레 으르렁거리고 물으려 했다. 그래도 우주는 내 책상 밑 나의 다리 옆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은, 우주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예민하고 소심하며, 나는 내 생각보다 그걸 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우주는 집과 밖에서 나는 모든 소리를 두려워했다. 집에서는 청소하는 소리와 비닐을 뜯는 소리, 의자가 삐거덕거리는 소리에, 밖에서는 옆집이 문을 여는 소리와 고양이들이 다투는 소리에. (유난히 집 앞에 길고양이가 많다. 신경 쓰지 않을 때에는 몰랐는데 신경 쓰기 시작하자 상상 이상으로 많이 울더라.)

 

밖의 상황에 익숙해지면 조금 덜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산책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주는 문밖으로 나가는 것에 아직 거부감을 보였고, 목줄을 메려는 내 손길을 격하게 거부했다. (사실 한 번 물렸다.) 밤중 내가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눈을 뜨고 잠을 자지 못하는 우주의 모습을 보고, 적막이 깔린 시간이 아니면 구석에서 하루를 보내는 우주의 모습을 보고, 최대한 집에 있으려 했지만 그럼에도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고, 나갔다가 늦은 시간에 들어온 나의 모습을 보고,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이 아이에게 내가 또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감당할 자신도 없으면서 경솔하게 입양 전제 임시보호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죄책감과 절망감, 그리고 수치심이 나를 좀먹었다.

 

며칠을 더 고민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 조금 더 유대가 쌓이기 전에 대표님에게 자신이 없다고 말씀드려야 할까? 우주는 나에게 마음을 열까? 나는 우주에게 마음을 연 걸까? 그저 우주의 귀여운 모습에 꽂혀서 이런 걸까, 진심으로 우주의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다른 생을 보듬을 자격이나 있을까?

 

고민 끝에 더 늦기 전에 대표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죄송하다고. 자신이 없다고. 너무 성급하고 경솔한 치기 어린 결정이었던 것 같다고. 우주에게 행복한 삶을 선물할 자신이 없다고. 대표님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며 이해해 주셨다. 그렇게 우주와 나의 짧은 만남은 끝이 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나는 그때 우주를 임시보호하기로 결정해선 안됐다. 애정만으로는 생을 보듬을 수 없다. 누가 나의 10년 뒤를 상상해 보라고 하면, 나는 반려견 반려묘 여러 마리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으레 말했는데, 그럴 자신이 없어졌다. 생명을 보듬는다는 건, 정말 깊은 심사숙고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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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같은 해 9월 입양되었다.)

 

 

 

눈 오는 겨울날,  갑작스레 찾아온 '총이'


 

이후 반 년 정도 포인핸드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또 경솔한 판단을 할 수도 있기에. 그렇게 2학기가 다 지나갈 무렵. 정확히 기억난다. 12월 6일 저녁이었다.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었다. 늦게까지 공부하면서 쉴 때마다 '에브리타임' 에 들어가 '나만 이렇게 신세한탄하는 게 아니구나'하며 자위할 때, 하나의 글을 보게 되었다. '학교 앞 중식집 앞에서 눈을 뜨지 못한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아기 고양이가 있다. 몇 시간이 지나도 어미는 오지 않고 아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곧 죽을 것만 같은 상태여서 급하게 구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오늘이 지나면 본인은 임시보호가 불가능하다. 임시보호자를 찾는다' 정도의 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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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당시 총이의 모습

 

 

글을 보고 안타깝긴 하지만, 같은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 댓글을 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이랑 똑같이, 공부해야 할 시간에 그 글을 붙잡고 댓글들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시작되는 자기합리화. '이건 입양 전제가 아니잖아. 보호하면서 좋은 입양자를 찾으면 되지 않을까?', '지금 당장 내일이 되면 구조자분이 보호할 수가 없다는데, 댓글들을 봐도 당장 나서는 사람이 없잖아'. 확실히,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다. 그날 밤 나는 구조자에게 쪽지를 보냈다. 다음날 눈 오는 아침, 나는, '총이'를 만났다.

 

'총이'는 구조자분이 붙인 이름이다. '이렇게 추운데 몽총하게. 바보.'라는 의미라나. 구조 당시 눈곱이 많이 껴있는 상태여서 동물 병원에서 안약을 처방받았다. 생후 1달이 조금 넘은 아이이고, 그 외에 이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추워서 그랬는지, 기력이 없어서 그랬는지 반나절 내지 하루 정도는 움직임이 없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아픈 것이 아닌가 걱정도 했다. 다행스럽게 밤이 되자 따뜻해진 방에서 기력을 차린 것인지 이곳저곳 돌아보기 시작했다.

 

총이와 만난 날부터 바로 입양처를 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입양한다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우주와의 일에서 느꼈듯이 나는 아직 준비가 부족하기에, 자격이 모자라기에 최대한 빨리 애정으로 보살펴줄 입양자를 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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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는 호기심이 정말 많은 아이였다. 집 안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탐험했다. 자고 일어나면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옷장의 코트를 에베레스트처럼 등산하고, 높은 곳이 있으면 어떻게든 올라가 보려고 애썼다. 최대한 애정으로 돌보지만, 모순적이게 정은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분명 침대 아래의 보금자리에서 자는 것을 확인했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내 머리맡에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거나, 눈을 떴는데 이불 속 내 옆자리에서 꼬물거리며 털을 비비고 있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부모의 미소(?)가 지어졌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 당시 시험 기간이었다. 그렇기에 밤을 새워서 공부하는 날이 많았는데, 이 녀석 때문에 공부는 거의 망하지 않았었나 싶다. 거실 책상에서 공부하다가도 생각이 나서 총이가 있는 곳을 보면, 바닥에 떨어진 병뚜껑으로 10분도 넘게 장난치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공부를 멈추고 총이가 하는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원래는 학교 앞 카페나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울 생각이었지만, 총이가 있기에 집에서 거의 나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총이는 배변을 잘 가리지 못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고양이 보호에 무지했던 내가 배변 모래가 아닌 배변패드를 준비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놈은 배변을 처리하기 곤란한 곳에서만 배변을 보더라. 침대와 옷걸이 사이 빈 공간이라던가, 옷장 맨 아래 손이 겨우 닿는 공간이라던가...(고양이 오줌은 정말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총이는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진 않았다. 5일 정도 후에 입양처가 구해져 입양 갔기 때문이다(다행스럽게 시험은 잘 봤다). 그럼에도, 그러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정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임시보호를 더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그간 가지고 있던 용품들을 입양자분에게 전부 드렸다. 아직, 울적한 날에 총이의 맹랑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고 있자면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지금은 '몽총하게' 말고 '늘어지게' 살고 있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생명을 보듬으면, 그 체온이 스며든다. 그 작은 체구에서 흘러든 체온이 제법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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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2월 12일, 입양가는 총이의 모습

 

 

 

오래 살자구, '덮밥'아


 

1년 여가 지난 2021년 3월 1일. 이때도 눈이 오는 날이었다. 역시나 학교 인근 덮밥집 앞에서 홀로 눈을 맞으며 죽어가는 아기 고양이를 구조했다는 글이 에브리타임에 올라왔다. 정말로 심각한 상황으로 보여 우선 구조하였으나, 사정 상 집에서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며 임시보호자분을 애타게 찾고 있었는데, 역시나 처음에는 안타깝지만 무시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여러분도 알 것이다) 시작된 자기합리화. 이럴 땐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맞는 것인지, 유명한 만화 대사인 '역시 인간은 재밌어'라는 말이 맞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래도 21년은 1년 동안 휴학을 결정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보낼 수 있었기에 조금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임시보호를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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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의 임시 이름은 구조자분께서 덮밥집 앞에서 구조했다고 하여 '덮밥'이가 되었다. 역시 대학생들의 네이밍 센스는 거기서 거기다(비하하는 게 아니다. 귀엽다는 말이다!). 덮밥이는 몸 상태가 좋지 못해 임시보호 전 구조자분께서 병원에 데려간 결과 심각한 영양실조와 허피스, 곰팡이 등의 소견이 있었고, 병원에서 3일 정도 입원 후에 임시보호를 하게 되었다. (이때 병원비는 구조자분께서 부담하셨고, 나는 차를 렌트해서 병원에 방문하실 때마다 같이 갔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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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자분께서는 덮밥이를 위해 준비했던 사료 샘플, 간식, 울타리, 배변 통, 장난감 등을 미리 준비해서 덮밥이가 집에 올 때 나에게 주셨다. 나로서는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 전 총이가 입양 갈 때 모든 용품을 그분께 드렸기에 다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덮밥이를 만났다.

 

덮밥이는 집에 온 후에도 이틀 정도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차차 좋아질 거라고 했지만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 온종일 거실의 울타리 안, 담요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덮밥이 옆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다행스럽게도 3일째부터 덮밥이는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 가지 문제라면 기운을 차리면서부터 약을 먹이기 힘들어졌다는 것?

 

덮밥이가 기운을 차리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참아왔던 배변활동을 몰아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지린내가 집 안에 진동했던 때가 있다. 지금이야 고약했던 냄새만 기억나지만, 그때에는 그런 건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기운 차리고 있는 덮밥이가 대견하고 고마웠지 않았을까.

 

총이는 혼자서도 잘 놀았던 것 같은데, 덮밥이는 내가 열과 성을 다해서 놀아줘야 했었다. 소리 나는 공보다는 낚싯대처럼 생긴 잠자리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다가 이상하게 덮밥이가 조용해서 돌아보면 가만히 의자 옆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놀아달란 신호. 그러면 나는 영화를 멈추고 덮밥이의 흥미가 식을 때까지 장난감으로 놀아주는 나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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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밥이의 첫 '야옹'소리와 '골골송'을 부를 때가 기억난다. 기력이 없을 때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더니 기운을 차리고선 배고프다며 야옹거리고, 사료 소리만 나면 난리가 났다. 근처에 다가가면 배를 까뒤집고 골골대는 덮밥이를 보며 다가올 이별이 늦게 찾아왔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헀다.

 

진지하게 입양도 고민했다. 부모님과도 상담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께서는 '네가 정말 그 아이와 함께 하고 싶다면 경제적인 부분은 내가 해결해 주겠노라'하셨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지 않은가.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외로움을 덜 느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것은 '덜' 느낀다는 것이지 '안'느낀다는 것이 아니니까. 대학생 신분인 나는, 그리고 혼자 사는 나는 부득이하게 집을 떠나 있을 때가 있고, 본가로 가서 하룻밤을 보내고 올 때도 있었다. 물론 덮밥이를 보호하는 동안에는 가지 않았지만. 또한 나보다 더 절실하게, 더 큰 사랑으로 덮밥이를 돌봐줄 입양자가 있을 것이란 걸 알기에 차마 결심을 하지 못했다. 생명을 보듬는다는 것은, 그간의 경험으로 애정만으로 '만사 오케이'가 아니라는 걸 아니까.

 

알고 보니 덮밥이와 덮밥이의 어미는 덮밥집 사장님께서 종종 밥을 주던 아이였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어미는 안 보이고 아이만 남겨져서 걱정했는데, 좋은 일 해줘서 고맙다며 자신도 입양자분을 찾는 걸 도와주겠다 하셨다. 그렇게 사장님과 구조자 님, 그리고 나 셋이서 본격적으로 입양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늦어진 것은, 1차 접종을 완료하고 입양 보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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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부턴 담요가 아니라 침대로 올라오기 시작한 덮밥이. 항상 저 자리에서 잠을 자거나, 내가 무엇을 하는지 바라본다. 손을 가까이 대면 골골대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머리를 비비댄다. 사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그 순간 꽤나 울컥했다. 그리고 느꼈다. '아, 나는 앞으로도 이 아픈 짓을 계속하겠구나'. 나는 언젠가 반려동물을과 생을 함께하기 전까지, 혹은 계속,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듬고 체온을 나누지 않을까.

 

덮밥이는 3월 17일 저녁 아주 좋은 곳으로 입양 갔다. 내심 환경이 좋지 않으면 입양을 거절하고 조금 더 덮밥이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입양자분의 집을 방문하며 생각으로 끝났다. 넓은 집, 성격 좋으신 부부, 이전부터 길고양이들을 좋아해 먹이를 줘 오신 성품 등, 모든 것이 나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그리고 덮밥이는 '살구'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오래 살자구', '살구'. 참 좋은 이름이 아닌가. 살구의 인스타그램 계정도 생겼다. 질투 나게, 나보다 팔로워가 많다.(웃음) 살구의 모습은 3월부터 지금까지 쭉 보고 있다. 살판났더라. 살이 통통하게 올라선, '냥 팔자가 상팔자다'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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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간 집에서 어리둥절한 덮밥이(살구).

이때에도 용품들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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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보듬는다는 것. 한 생명과 함께 한다는 것.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애정과 관심, 그리고 결심 정도면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부분들도 해결해야 하겠지만.

 

이 아이들은 학대받을 이유가 없다. 죽임당할 이유가 없다. 사랑과 애정만 주기에도 바쁜 아름다운 생명들이다.

 

생명을 보듬는다는 것. 체온을 나눈다는 것. 그렇게 동물과 우리는, 시나브로 같은 체온을 가지고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가슴 아픈 이야기가 더 들려오지 않았으면 한다.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왔으면 한다. 잘 지내, 나의 우주, 나의 총이, 나의 덮밥아, 나의 아이들아.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늙어서 죽었으면.

 

 

 

 아트 인사이트 에디터 테그.jpg

 

 

[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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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김**
    • 엄연히 한 생명으로 태어난 것들인데 사랑받으면서 죽어도 모자랄 판에 학대하고 못살게 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질 뿐입니다. 길고양이 문제 등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존재하고 결국 자연의 차가움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이 있는 것도 당연하지만 최소한 한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각오도 없이 동물을 기르는 이는 없었으면 합니다.
    • 1 0
  •  
  • 김미연
    • 한 권의 책을 읽는 기분으로 읽어 내려갔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귀여운 사진에 오늘 저녁 노곤함이 스르르 사라지더이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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