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는 모두 해석되지 않는 언어를 사이에 두고 있기에

김초엽 저 《행성어 서점》
글 입력 2021.12.0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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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책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행복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각종 지표에서 나타나는 불행을 노력이 부족한 탓으로 떠넘기곤 했던 여론에 대한 반발과 함께 성과주의와 집단주의에 근거한 성공보다 개인의 행복을 더욱 중요시하는 흐름이 보편화되었고, 그것은 실제로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던 내적 건강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대두된 행복이라는 개념이 또다시 성과주의와 집단주의로 수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행복에 관한 질문은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게 아니라 타인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지를 재는 일률적인 척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나아가 그것을 방해하는 존재를 배제하는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무결한 행복을 위해 나와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을 가차 없이 ‘손절’하고, 조직이 겪는 불행의 원인을 개인의 이질성에서 찾으며 그것을 심판하는 ‘참교육’의 서사를 시원한 ‘사이다’에 빗댄다.

 

우리는 그것이 곧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무심코 배제했던 그가 곧 나 자신이 되기도 하고, 타인보다 높아야 하는 행복의 계단에 올라선 순간 또 다른 타인보다 낮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행복이 종종 강박처럼 요구된다는 것을 알았고, 매 순간 행복할 수도 없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삶을 사는 다른 개체이므로 모두가 행복할 수도 없다. 행복이라고 해서 그것이 곧 불행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끊어내고 싶으나 끈질기게 연결되는 관계에서 이해를 배울 수 있으며 답답한 ‘고구마’ 같은 사고방식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이 복잡다단한 삶을 조금 더 널찍하게 긍정할 수 있다.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며 일궈온 현재들이 남겨놓은 눈부신 기록을 본다. 우리는 언제나 행복과 불행, 같음과 다름이 얼기설기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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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SF적 구성과 따뜻한 작가적 시선으로 다양한 존재와 세계를 무한히 상상하는 소설가 김초엽의 소설집 《행성어 서점》은, 특유의 기발한 소재와 정감이 깃든 열네 개의 짧은 소설들을 두 가지의 묶음으로 나누어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알아가는 존재의 삶의 방식을 통찰한다. 인간뿐 아니라 인간의 복제물, 식물, 균사체, 기계, 이름 모를 행성에서 날아온 외계 생물체 등 갖가지의 생명과 물체를 포괄하는 이야기들이 낯설지만은 않은 이유는, 다양한 존재와 계획에 없던 사건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곧 세상의 노래를 구성한다는 메시지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맞닥뜨리게 되는 삶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모인 공간이 지니는 당연한 성질이기에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하고, 그래서 대부분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짧은 이야기들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살아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개체가 말을 건네고 사고를 하는 다채로운 세계가 무려 열네 가지의 형태로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서 한 줄기로 흐르는 맥락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다. 등장하는 인물도, 사건도 다르지만 소설들은 모두 유약한 개인과 불행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뜻밖의 가치를 드러내는 순간을 펼쳐 보이고 인간이 행복 너머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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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접촉 통증을 느끼는 건축가 파히라의 이야기인 「선인장 끌어안기」를 시작으로 이러한 질문을 구체화한다. 그 어느 것도 만질 수 없는 파히라가 마찬가지로 접촉 통증을 느끼는 아이와 진심 어린 소통을 하며 그러했듯이 선인장을 끌어안는 장면은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상대를 받아들이고 느끼는, 결코 행복하거나 기쁘지만은 않은 것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아프지 않도록 서로에게 닿지 않게 조심하다가도 그 아픔마저도 견뎌낼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때로는 그것을 행복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게 되는 알 수 없는 삶의 모순은 우리의 시선이 완전하고 무결한 상태 그 이상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이보그를 다룬 소설 「#cyborg_positive」에서 기계 눈을 이식받은 리지는 아름답고 정밀한 사이보그 신체가 예찬받는 시대에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그것이 인체와 일으키는 부조화의 현실을 잘 알기에 모든 사이보그는 아름답다는 말에 회의감을 가진다. 기쁘고 즐거우며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무언의 요구는 결코 완전히 실현할 수 없으며 종종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를 경험한다는 것을 두 소설은 너머에 대한 상상과 함께 피력한다.

 

들려오는 말을 기계를 통해 글자로 바꿔 읽는 데이지와 낯선 이의 대화를 실은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의 순간이 결국 삶을 이룬다는 책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굳이 상대방의 말을 변환하여 받아들이는 데이지를 이해할 수 없던 낯선 이는 모두가 각자의 현실의 결을 가지며 그중 우세하거나 열등한 것은 없다는 데이지의 말을 듣고 그의 소통 방식을 긍정하게 된다. 그리고 기계를 통해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의 현실의 결을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개체가 자기만의 결을 가지고 그것이 서로 부딪치는 현실은 맑고 깨끗하기만 하진 않다. 그러나 그것을 끌어안기까지 하면서 사랑하고 싶은 존재를 우리는 마주친다. 그 과정에서 미처 몰랐던 자신의 결을 발견하고, 나아가 타인의 결을 지켜주기도 한다.

 

동명의 소설 「행성어 서점」은 이러한 현실의 결을 더욱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모두가 통역 모듈이 있는 전자뇌를 장착한 미래, 통역을 방해하는 패턴이 새겨진 글자로 인쇄된 책만을 판매하는 행성어 서점에 전자뇌 통역을 하지 않고 행성어를 배워 쓰는 고객이 등장한다. 그는 전자뇌 통역 모듈 부적응자로 본래 모두가 읽지 못해 이국적 정서를 느끼게 하는 관광 상품으로 기능했던 행성어 책을 유일하게 독해할 수 있는 고객이다. 작가는 느릿하고 비효율적이며 쓰임이 많지 않은 이러한 소통 방식에서 ‘수만 개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조차 읽지 못한 책(72p)’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한다. 스마트폰과 키오스크가 여전히 대화와 편지에만 담을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듯이 우리에겐 특정 방식으로 해석되지 않아도 어엿이 존재하는 현실의 결, 즉 행성어 서점 같은 공간이 있다.

 

이러한 공간은 자신이 지구인과 다른 미각을 가진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식당 사장의 이야기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에서도 비유된다. 맛없는 음식이 사실은 다른 미각을 가진 외계인의 음식일지도 모른다는 재치 있는 발상을 제시하는 이 소설은 열등하게 여겨지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유일한 선택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며, 그 비효율적인 영역이 지켜지고 있어 누구나 우열 없이 존재 자체로도 이 세계에 포함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발라드 노래가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원인을 찾으러 과거로 떠난 연구자의 이야기 「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은 인간이 사랑을 표현하거나 기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명확하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도 시대를 초월하여 강력하게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시간 여행이라는 기발한 소재로 풀어내고, 행성 여행자를 찍어주는 사진가의 이야기 「포착되지 않는 풍경」은 촬영할 수 없는 일시적인 기상 현상을 그럼에도 자기 방식대로 기록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묘사한다. 작가는 소년이 노래방에서 좋아하는 친구에게 발라드를 부르는 평범한 순간부터 어려운 이름의 행성에 신비로운 안개가 끼는 환상적 순간까지,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찰나의 전율이 삶의 의미를 더해나가는 놀라운 지점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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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의 소년」과 「오염 구역」, 「가장자리 너머」 등의 세 소설에 걸쳐 소개되는 세계관은 인간의 모순을 외부에서 관찰하는 물체를 등장시켜 인간과 삶을 보는 확장된 시야를 제공한다. 생물을 집어삼키며 생존하는 늪의 균사체들은 필요에 의해 복제되었다가 처분되어 늪에 떨어진 소년을 삼키려고 하지만, 결코 먹히지 않는 소년의 끈질긴 의지에 이를 포기하고 그의 생존을 돕는다. 균사체들은 저들의 안락하고 광대한 연결망에 흡수되지 않고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자기만의 개체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인 우리는 그 알 수 없음으로 삶이 완성된다는 것을 안다. 자신의 결을 고집하고 다른 결과 충돌하는 과정이 결국 늪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로운 곳으로 향하게 한다는 것을 안다. 가끔은 너무도 모호하게 느껴지는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이러한 지점에서 체감된다.

 


…늪이 없으면 소년은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소년은, 우리의 완전한 일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그런 모순을 품고 있다.

(119p)

 

 

균사체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묘사하는 인간의 모습은 흡수되지 않을지라도 결코 고립할 수도 없는 인간의 모순 또한 드러낸다. 「늪지의 소년」의 서술자였던 균사체는 「오염 구역」에서 인간의 몸에 자라나는 버섯으로 추정되는 형태로 등장하는데, 끔찍한 생김새이지만 인간이 버섯에 주도권을 넘긴 마을이 지구를 점령한 외계 생물체로부터 유일하게 안전한 곳이었기에 이곳을 방문한 파견자 라트나는 버섯을 없앨지, 그대로 둘지 고민한다. 작가는 내내 인간성의 가치를 포착하면서도 인간이기에 주어진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며, 인간은 한계로 인해 아름다우나 동시에 한계를 뛰어넘는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 수긍하고 그것과 공존해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3부작의 마무리이자 책을 맺는 「가장자리 너머」는 라트나에게 또 다른 ‘불동조 파견자’가 보낸 서신이다. 서신에 의하면 라트나는 마을의 주민들이 버섯의 숙주가 되어 뇌를 넘겨주고 외계 생물체와 타협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마을은 안전한 곳일까, 위험한 곳일까? 생존의 방식은 어디까지 긍정할 수 있으며 공생의 범주는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인간의 기준에서 이를 고민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면서도, 지구에 온 외계 미생물이 애틋한 반려 생물이 되는 과정을 담은 「우리 집 코코」에서 그러했듯 ‘그 오염이 우리를 살아가게(151p)’ 하기도 한다는 것을 밝히며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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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순간을 해소함으로써 행복의 상태로 대체하지 않고, 불행을 보는 시각을 전환하여 더욱 역동적이고 휘황하게 세상을 직시하는 작가의 이야기는 그리하여 약함을 긍정하면서도 강한 힘을 내고 있다. SF적 상상력은 배경이나 소재뿐 아니라 존재를 보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통해서도 드러나기에 이야기는 여태 누락되었던 수많은 순간의 조각을 모두 삶의 성취로서 존중하고 지나쳤던 지점을 되짚게 한다. 여러 현실의 결이 책장을 이루고 있는 이 책은 동시에 서로 다른 작가와 독자의 현실의 결이 부딪치고, 어떤 이는 그에 비친 자신의 결을 대면하기도 하는 행성어 서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들이 그려내는 인간은 유약하고, 복잡하며, 알 수 없고, 분명한 한계를 가지기까지 한 존재다. 그러나 작가의 세계에 압도되고 난 후엔 매번 무력감보다 희망을 느낀다. 지금도 알 수 없고 때론 밉기도 한 사건과 존재가 나의 우주를 이루는 행성임을 깨닫는 것은 매일의 바깥을 꿈꾸게 하는 무한한 원동력이 된다. 끝내 해석되지도, 포착되지도 않을 풍경이 전해주는 잠깐의 전율을 느끼며 유일한 하루를 유일한 결로 채워나간다. 영원히 알 수 없지만 알아가고 싶은 것,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끌어안고 싶은 것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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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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